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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국교회의 실패, 신천지가 발호한 토양

표피적인 이벤트에 집착한데 회개하고 개혁해야

신천지
(Photo : ⓒ 이인기 기자)
▲한국기독교연합회관 맞은편 서울보증보험 건물 앞 마당에 진친 신천지 신도들. '한기총 해체!'를 외쳐댔다.

신천지가 지난 4월29일(금) CBS를 상대로 대대적인 세과시에 나섰다. 서울 목동은 물론 CBS지방계열사 앞에서 집단행동을 벌이며 CBS를 성토했다. 경찰 추산에 따르면 3만에서 5만의 신천지 성도가 몰려 들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

신천지의 세과시는 기독교계에 적지 않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사실 기독교계는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일찌감치 신천지를 이단으로 선언했다. 국내 최대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예장합동)와 통합총회(예장통합)가 신천지를 이미 1995년 이단으로 규정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간단히 신천지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건 지나친 단순화다. 그보다 신천지가 저토록 교세를 불리는데 성공했고, 급기야 언론사를 상대로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게 한 원인을 따져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신천지의 발호는 기존 기독교계의 실패가 가장 큰 요인이다. 기존 기독교계는 그럼 왜 실패했을까? 목사들의 성추행 때문에? 아니면 논문 표절이나 공금횡령, 정치판을 방불케 하는 총회 때문에?

불행하지만, 이런 부조리들은 이미 교회 ‘본연의' 모습이 된지 오래다. 신도들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단적인 사례로, 전병욱 전 삼일교회의 담임목사의 성추행 행각에 아무런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기독교인은 찾기 쉽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보자. 신천지가 발호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앞서 들었던 기성 교단의 실패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하는 기성교단의 실패는 교회에서 불거지는 부조리나 신도들의 도덕 불감증이 아니다.

신도들이 삶에서 제기하는 신학적인 의문에 교회가 응답하지 못했고, 바로 이런 실패가 신천지의 발호로 이어졌다. 각 교회에서는 신도들을 유치하기 위해 갖가지 이벤트를 벌인다. 신도현황을 보여주는 그래프는 회사 영업조직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참 신앙이 무엇인지, 교회가 가난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졌을 때 신앙인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등등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지난 세월호 참사 때 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아이들은 두 손 꼭 쥐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갈구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끝대 돌아오지 못했다. 기성 교단이 이 문제에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 고작 내놓은 답이 "돈 없는 아이들이 왜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서 물의를 일으켰느냐", 혹은 "이 나라에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는 하나님이 아이들을 물에 빠뜨렸다"는 망언에 가까운 언사에 그쳤다.

신천지는 이 지점을 제대로 공략했다. 지금 신천지 구성원들의 대부분은 청년층이다. 한 포털에서 신천지의 집단행동을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을 분석한 결과 신천지를 감싸는 댓글을 단 계층은 20대 여성인 것으로 드러났다. 젊은 층들은 삶의 근원적 문제에 목마르다. 각 교회가 ‘새벽이슬 같은' 청년을 유치하려 갖가지 이벤트를 벌일 때 신천지는 이들에게 나름의 정립된 신앙관을 제시했고, 결국 이들을 붙잡는데 성공한 것이다.

기독교계 자성이 시급하다

이 지점에서 CBS에 아쉬움을 표하고 싶다. CBS는 신천지의 이단성을 폭로하는데 역량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적극 지지하고 동참의 뜻을 표하고 싶다. 그러나 그만으로 부족하다고 본다. 신천지의 이단성을 폭로하면 할수록 신천지는 대응논리를 개발해 역공에 나설 공산이 크다. 또 CBS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과 일정 수준 거리를 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지난 해 3월 한기총은 CBS <관찰보고서 -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 방송이 나가기 무섭게 신천지 척결 포스터를 제작해 배포했다. 그리고 CBS는 이를 우호적으로 보도했다. 이에 대해 신천지의 역공이 만만치 않다. 신천지는 한기총의 치부를 들춰냈고, 여기에 CBS를 엮어 넣었다. 기독교계 밖 일반 여론이 한기총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기에, 신천지의 전략은 일정 수준 성과를 냈다.

만약 CBS가 한기총과 거리를 두면서 한기총을 비롯한 기독교계의 자성을 촉구했다면, 신천지는 대응전략 마련에 부심했을 것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신천지의 발호에 대해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건 지나친 단순화다. 그보다 기성 교회의 교단이 새신자 유치를 위해 표피적 프로그램에 집착하다 신학과 괴리된데 대해 반성하고 개혁해야 한다. 만약 이 같은 과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신천지는 더욱 기승을 부릴 개연성은 아주 높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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