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미국의 꿈'을 종종 특정한 생활양식을 취득하는 것과 관련하여 설명한다. 멋진 집, 고급 차, 매력적인 배우자, 사랑스런 자녀들.... 그리고 그런 생활양식에 일단 도달하면 그 꿈은 더 커진다. 아마 매년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나 골프클럽 회원권, 혹은 더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는 것 등으로.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우리가 생활양식에 기반한 표준만을 좇게 되면, 우리는 실제로 만족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꿈을 꾸어본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성경적으로 현명한 재정 설계의 창안자인 론 블루(Ron Blue)를 처음 만난 뒤 얼마 있지 않아서 나는 스스로 답을 해야만 한다고 느낀 중요한 질문에 직면했다: "얼마나 많아야 충분한 것일까?" 근본적인 질문이다. 비미국적인 질문으로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로 이 질문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돈과의 관계에 관한 한, 그릇된 전제를 갖고 있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더러 얼마나 많이 베풀기를 원하시는지를 깨닫고자 노력한다. 이것은 우리 어깨에 엄청난 책임의 부담을 지우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돈의 관할권이 우리 손에 굳건히 주어져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게 살다가 우리는 어느 순간에 그 노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채게 됐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더러 얼마나 많이 베풀기를 원하시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가 얼마나 갖기를 원하고 계신가?"가 제대로 된 질문인 것이다.
만일 아직도 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 앞에 어느 정도는 매우 좋지만 외견상 매우 좋지 않은 사실이 놓여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당신은 어느 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외견상 좋아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매우 기쁜 소식이다. 이 사실과 더불어 엄청난 자유가 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신을 하나님의 곳간을 맡은 청지기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을 멈추게 된다. 우리는 무의미한 무한경쟁으로부터 탈출하게 된다. 게다가 우리는 최종적인 의사결정의 도구를 얻게 된다: 기도라는 도구를.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두 젊은이가 이런 혁명적인 생각을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재학시절 존 콜틴스와 그레고리 보머는 소비자이자 저축가로부터 시작하여 종(servant)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시작했다.
그들은 이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님과 돈』(God and Money)이라는 저서에서 들려주고 있다. 일단 그들이 종으로서의 역할을 껴안게 되자 그들의 관심은 40세에 은퇴하려는 계획으로부터 그들의 평생에 걸쳐진 하나님의 재정적 결선지점을 발견하려는 계획으로 옮아갔다. 그리고 경영대학원 출신답게 그들은 그것을 숫자로 계량화하기 시작했다.
콜틴스와 보머는 평균적인 '미국의 꿈'을 이루는 데 실제로 얼마의 비용이 드는 지를 수량화했다. 그들은 200여 명의 하버드 경영학 석사(MBA) 출신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재산과 기부 상황을 조사했다. 그들은 그들이 입수할 수 있었던 모든 조사 자료들을 점검했다. 그리고 그 모든 자료들이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미국의 꿈'은 매년 15만 달러(현재 환율로 약 1억7천만 원)의 수입이 있으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조사 결과에 근거해서 그들은 15만 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해야 될 한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고 이론화했다. 그 사람들이 이제 자신들의 생활양식을 확장할 것인지, 아니면, 손 큰 기부자가 될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15만 달러 이하의 수입을 얻는 사람들이 손 큰 기부자로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콜틴스와 보머는 기독교인들이 15만 달러를 자신들의 재정적 결선지점으로 설정하고 이 평균적인 '미국의 꿈'을 이룰 연간 수입의 한도를 넘는 수입의 전액을 기부하기로 결정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를 계속 연구하고자 했다.
그들의 결론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15만 달러는 당신의 재정적 결선지점이 아닐 수 있다. 아마도 당신은 그보다 훨씬 더 적은 돈으로도 기꺼이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대학을 졸업시켜야 할 아이들이 14명이나 있을 수 있고 최소한 철마다 훨씬 더 많은 수입이 필요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요점은 당신의 재정적 결선지점이 얼마여야 하는지를 하나님께 여쭙고, 그런 뒤에 그 결선지점을 토대로 당신의 기부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게 될지를 고려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기부가 증가하면서 우리가 세상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꾸게 될 것인지를 그려보는 재미와는 별개로, 재정적 결선지점을 설정하는 일은 우리와 사회에 또 다른 이익을 주게 될 것이다. 재정적 결선지점을 설정하는 일은 마침내 우리 삶에 있어서 "물질"의 힘을 파괴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존 스타인벡이 1959년 전직 일리노이 주지사이자 대선주자이기도 했던 자신의 친구 아들라이 스티븐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우리는 이상한 종자다. 하나님과 자연이 우리에게 부어주는 것은 무엇이든지 잘 견디면서 풍족함은 견디질 못한다. 만일 내가 한 국가를 파괴하고 싶으면 나는 거기에 넘치도록 주고는 무릎을 꿇게 하여 비참하고 욕심 사나우며 병들게 만들어버릴 것이다"라고 썼다. 스타인벡은 우리 인간이 개인이든 집단이든 축적을 통해 스스로를 파괴할 잠재적 본능을 갖고 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어떤 종족이든지 재정적 결선지점이 없으면 경쟁자들 때문에 결국 망하고 말 것이다. 그들은 탈락하여 스스로를 실패자로 간주하든지, 아니면,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가 급기야 소진되거나 죽어버리게 될 것이다. 결선지점이 있으면 깃대를 꽂아야 되는 사람은 계속 가게 만들고 야심찬 사람은 건강할 때 멈추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마찬가지로 최종적인 결선지점은 하나님에게 인생의 설계를 맡긴 사람들에게 자유와 성취감을 제공한다.
콜틴스와 보머처럼 우리가 소비자이자 저축가로부터 하나님의 곳간의 청지기가 되는 여행을 할 때 너무나 많은 일이 가능해진다. 당신 자신을 위해 그 여행에 동참해보지 않으려는가? 당신은 이런 질문을 하면서 그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당신의 재정적 결선지점은 어디인가?"
기사출처:
http://www.christianpost.com/news/how-much-money-does-god-want-us-to-keep-162589/#iBOFJrXFm5mU6Vwd.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