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는 4월29일(금) 오전 소장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전날 저녁 행사가 무산된 것에 대해 책임질 사람들이 있다고 밝혔다.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이야기마당> 행사가 예정된 장소와 시간에 진행되지 못하고 장소를 옮겨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 데다 그마저도 무산된 사태가 동성애에 대한 "악의적 왜곡에 기초한 일부 반대자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가 "신앙적으로 참으로 야비하고 부끄러운 일일뿐 아니라 명백한 불법행위"이므로 "필요한 도덕적,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까지 공포했다. 입장문이 이처럼 적대적인 분노를 드러내는 데에는 이 사태의 책임 소재가 분명하다는 심중이 작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날선 용어를 사용하며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소위 인권센터라는 곳의 적절한 반응인지는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인권센터는 관점이 다른 진영끼리의 진리논쟁이 그 진리가 담보하는 외연이 클수록 얼마나 치열하며 때론 목숨도 불사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역사적으로도 공공연히 확인될 수 있는 일이지만, 인권센터의 입장문은 진리를 찾기보다 단순한 진영논리를 고수하려는 환영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세속적인 단체가 아닌 기독교 인권센터가 지향하는 진리라면 더더욱 힘의 논리로 증명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잘 아는 인권센터에서 이러한 자극적이며 공격적인 언사를 공식 문서에 거리낌 없이 사용한 것은 인권센터가 인권이나 진리에 대한 유보적인 탐색작업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여전히 진리논쟁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행사 안내 포스터에 인쇄된 "이제 대화를 시작하려 합니다"라는 선언의 인도주의적 포용성은 진영논리의 한계에 갇혀 결국 그 빛을 잃었다. 인권센터는 대화를 진영논리의 자가복제를 위한 과정으로만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정작 대화의 상대방이 되어야 할 "일부 반대자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과민반응을 보이고만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입장문에서 대담 장소를 옮긴 이유를 "최소한의 신변안전을 확보하고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려"는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는 표면적으로는 방청객을 잠재적 폭행자로 규정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며, 실질적으로는 행사 자체의 부적절성을 시인한 것이다. 행사가 있기 전에도 동성애 반대 단체들의 경고가 계속 됐었고 또한 행사당일에 그러한 갈등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더라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반대 단체들의 입장을 경청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계획된 바로 그곳에서 행사진행을 시도하는 것이 그 행사 취지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권센터는 이러한 진정성을 입증하지 못하게 된 책임을 방청객을 잠재적 위협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주최측의 잘못을 전가 내지 회피하고 있다. 인권센터는 이 행사가 내부간담회로 계획되었기에 초대받지 않은 방청객들에게까지 장소 변경을 통보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고 하나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 내부간담회라면 굳이 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할 이유도 없을 것이며 포스터 어디를 보아도 내부간담회라는 사실을 알리는 표식이 없다. 이렇듯 인권센터가 참석했던 선의의 방청객들 및 기자들의 기대를 묵살한 행위는 인권센터 스스로가 동성연애라는 주제가 기독교 단체에서 공개적으로 논의하기에 부적절한 주제임을 자인한 것과 다름없다.
마지막으로, "일부 반대자들"에게 행사 무산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공포한 대목에서는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의 개념을 사법적 정의에로 축소하여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로써 교회 내의 용어와 사회의 용어가 상호소통된 것일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기독교 인권을 내거는 단체에서 자신들의 행사를 방해했다는 사실만으로 법적 조치를 운위하는 것은 단체의 정체성을 몰각한 반응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게다가 대담이 다른 장소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첩보'가 행사장에 들어오고 난 뒤에 벌어진 난장을 인권센터의 지도부가 목격했다면, 행사 무산의 전체적인 책임은 지도부가 져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그 난장에서 터져나오는 날선 비난들을 나이 어린 P목사가 혼자 감당하도록 방치한 뒤에 나타난 지도부는 아무런 해명이나 입장을 밝히지도 않았다. 매우 실망스런 순간이었다.
그러므로 만일 인권센터가 입장문의 말미에 밝힌 대로 향후에 "동성애 문제를 둘러싼 소모적인 대결과 갈등을 치유하고 혐오를 넘어 평화의 길을 찾기 위한 기도의 행진에 더욱 매진할 것이며 이를 위해 동성애에 관한 여러 다른 목소리를 함께 듣고 이 예민한 문제에 대한 복음적 응답의 길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할 것"이라면, 그 추구하는 "평화의 길"에서 "일부 반대자들"을 배제하지 말 것이며, 더욱이 NCCK의 회원교단인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장정에 동성애 반대가 명시되어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회원교단간의 심도 깊은 사전협의를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복음적 응답의 길"에서는 희생에 대한 각오를 구현하고 사법적 조처를 손쉽게 운위하는 태도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기독교 인권의 정체성을 보전하며 복음의 길을 선양하는 방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