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김경재 명예교수, 토착적 영성 짓밟는 신학관 비판

“기존종교와 단절된 기독교 이해, 창조적 힘 나올 수 없어”

▲ 18일 삭개오작은교회에서 열린 ‘갈릴리복음 성서학당’ 셋째 강의에서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한국인의 토착적 영성을 짓밟는 보수적 신학관을 비판했다 ⓒ베리타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가 한국인의 토착적 영성을 짓밟는 보수적 신학관을 비판했다. 보수 기독교인들은 오랫동안 한국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민간신앙, 무속신앙을 ‘잡종미신’으로 매도해왔다. 김 교수는 “그러면 기독교가 전래되기 이전의 한국인들은 모두 지옥 간다는 것인가? 선한 마음을 가지고 하늘에 빌었던 그들의 심성을 잡종미신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18일 삭개오작은교회에서 열린 ‘갈릴리복음 성서학당’ 제3강에서 ‘성서의 하나님과 한민족이 경외해 온 하늘님 신앙’이라는 주제로 강의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기독교 이전의 모든 종교를 ‘비기독교’라는 범주에 넣어 사장시킬 것이 아니라, 무교, 유교, 불교, 천도교 등 한국 종교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또 한국인의 영성을 설명하며 유동식의 ‘풍류도’ 개념을 차용하고, 이에 대해 “풍류도란 각종 외래종교를 받아들여서 그것을 한민족의 종교로서 변혁시켜 토착화하는 종교적 심성의 기본바탕”이라고 설명했다.

◇무교와 한민족의 영성 = 김 교수에 의하면 한국인에 제일 먼저 습합된 종교는 무교, 즉 샤머니즘이다. 그러나 무교는 “기복신앙형태로 퇴행화돼갔으며 하급단계의 신령들을 모시는 다령숭배신앙이 되어갔다.” 그리고 이러한 다령숭배신앙은 기독교가 한민족에게 전래되었을 때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과 극단적으로 충돌하게 된다.

◇불교와 한민족의 영성 = 김 교수에 따르면 불교의 화엄종, 선종, 천태종 등은 한민족의 풍류도가 지닌 ‘한의 영성’과 공명하였다. 또 대승불교의 핵심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위로는 자리自利를 위해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이타利他를 위해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은 한민족의 종교적 영성을 높은 도덕적 실천신앙으로 승화시켰다. 그러나 김 교수는 “변질된 호국불교는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고 왕권과 귀족의 지배이념을 강화시켰고, 역사변혁적인 정신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그 한계를 짚어내기도 했다.

◇유교와 한민족의 영성 = 유교는 퇴계나 율곡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유림의 선비정신으로서 한민족의 ‘정신문화’에는 크게 공헌했으나, ‘종교적 영성’ 면에서는 태생적인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김 교수는 주장했다.

▲ 열강하고 있는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천도교(동학)와 한민족의 영성 = 김 교수는 “천도교가 만약 부흥했더라면 역사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라며 천도교의 종교성이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또 “천도교는 기적과 같이 놀라운 풍류도적 영성의 부활”이라며 몸으로 하눌님을 모신다는 시천주 신앙, 하느님/인간/물질을 모두 존경해야 한다는 삼경사상, 정치와 종교는 일체여야 한다는 교정일치사상이 탁월하다고 말했다. 또 보국안민하려는 역사참여정신이 강하여 ‘민족종교’가 될 수 있었다고 평했다.

그러나 천도교는 동학농민전쟁을 통한 동학인들의 전멸, 지도세력의 이념적 분열, 창조적 자기변혁의 실패 등을 겪으며 점차 쇠퇴되어갔다.

◇기독교와 한민족의 영성 = 김 교수는 기독교가 한국에 전래되면서 이전의 어떤 종교성과 결합되었는지, 또 어떤 새로운 종교성을 낳았는지를 살폈다.

먼저 그는 “한민족의 심성 맨 밑바닥에 면면히 흐르던 ‘하느님 신앙’이 기독교의 초월적인 유일신신앙에 의해 더욱 또렷이 각성되었다”고 주장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신앙과 성령의 감동감화 능력 신앙은 한민족의 풍류도적 영성이 지닌 정서적, 역동적 기질과 급격히 친화되었다”고 주장하며,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한국 개신교의 신앙유형이 부흥회적 기질로 흐르게 된 부작용을 낳았다고 말했다.

기독교만의 ‘죄에 대한 가르침’은 한민족의 영성에 ‘죄의식’이라는 새로운 영성을 입혀주었다. “예수의 십자가 대속 신앙은 동양종교철학 일반이 지닌 ‘수치문화’와 근본적으로 다른 ‘죄의식’을 일깨웠고, 이로 인해 한민족은 죄문제를 종교적으로 심각하게 각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은총의 종교, 은혜의 종교라는 새로운 용서와 사죄체험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김 교수는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옛날에 우리 어머니들이 정화수를 떠놓고 선한 마음으로 하늘에 빌던 것 등 기독교 아닌 모든 종교적 활동을 미신잡종으로 매도해서는 한국의 종교문화사가 변혁될 창조적 힘이 나올 수 없다. 한국 종교사에서 기독교의 한민족 전래는 기존 종교문화사와의 '완전 단절' 후의 외래종교적 대체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럼에도 기독교는 앞선 종교적 유산 중 창조적 요소들을 퇴비로 한 생명의 꽃이며, 한국역사를 경륜해오신 하나님의 창조적 새 생명운동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고 말하며 강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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