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들은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농성 중이다. 그런데 경찰은 농성장에 들어가 노란 리본을 철거하고, 이에 항의하는 유가족을 연행했다. 뿐만 아니라 국회 앞 기자회견을 앞두곤, 피켓을 빼앗아 훼손하는가 하면 ‘정치 구호가 없는 순수한 기자회견을 하라'고 방송했다. 이 광경을 보고 안산 화정교회 박인환 목사(기감)는 자신의 군목 시절을 회상하며, 우리 사회가 상식을 상실했다고 개탄했다. 박 목사의 양해를 구해 글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세월호특조위활동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는 유가족들에게 쳐들어와 농성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4명을 연행해 간 경찰의 행태를 보면서 갑자기 34년 전의 한 사건이 떠올랐다.
안전보장증 사건이다. 내가 전방부대의 군목으로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병사 하나가 ‘월북기도자'로 체포되어 헌병대에 수감되었다. 당시에는 전방 GOP 병력을 매 6개월마다 순환하여 배치할 때였다. 전방에 올라가면 6개월 동안 갇혀 지내게 되는 것을 감안하여 전방에 투입되기 전에는 열흘 씩 휴가를 보내 줬다.
휴가를 가기 전날, 꼭 복장검사를 했는데, 혹시라도 밖으로 유출되어서는 안되는 물건이라도 소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바깥으로 가져가서는 안 될 물건 중의 하나가 ‘안전보장증'이었는데, 북한 인민군들이 풍선에 실어서 보내던 명함 크기만한 종이였다. 여기엔 한복을 입은 북한 여배우사진이 실려 있고, ‘남조선 국군이 북으로 귀순하면 이렇게 예쁜 색시도 주고 집도 주고 직장도 준다'는 요지의 글귀가 적혀있는, 유치한 삐라이다. (당시 우리 쪽에서도 비슷한 것을 북으로 날려 보냈다)
그런데 A 상병이 북에서 날아온 ‘안전보장증'을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주번사령(감독 장교)에게 발각되는 일이 생겼다. 이 사건은 즉시 상부에 보고되고, A 상병은 보안반에 끌려가 이틀인가 사흘 뒤 사단 헌병대에 수감됐다. 죄목은 "월북기도"였다.
그의 아버지는 청주의 ○○교회 장로였는데, 군목인 나를 찾아와 도와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그러지 않아도 의심하고 있던 터였다. 휴가를 가면서 안전보장증을 감추어가지고 가려던 병사를 월북기도자라 하는게 사리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북을 기도했다면 자기가 전방에 투입될 때 안전보장증을 숨겨가지고 가야 맞는 것 아닌가?
사단헌병대에 가서 면담해보니 A 상병은 이미 얼이 빠져 있었다. "네가 월북하기 위해서 안전보장증을 갖고 있었다는 자백을 했냐?"고 물으니까 "보안반에서 양동이에 물을 채우고 고춧가루를 풀고 얼굴을 쳐 박는 통에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고문을 당한 것이다.
연대 보안반장에게 가서 "좀 멍청한 일은 했지만 월북기도자가 아닌 것이 명백한 젊은이 하나를 이렇게 망가뜨려도 되느냐"며 항의했다.(지금 생각하면 참 내가 겁이 없었다. 전두환 시절에 보안반장을 찾아가 호통을 치다니...) 보안반장은 "나도 월북기도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대대장이 사단보안대로 직통 보고하는 바람에 나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내용인 즉, 당시 대위계급장을 달고 있던 당직사령은 육사출신도 아니고 ROTC 출신도 아니고 삼사출신도 아닌, 소령 진급하기도 힘든 00출신이었다. 진급을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공이 있어야 하는 신분이었다. 그런데 마침 휴가 가는 병사 한 녀석이 불온문서를 소지했으니 그것이 그에게는 공을 세울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했는가보다. 그 정도 사안이면 꾸짖거나 얼차려 주는 정도를 끝내는 게 상식이었지만 일이 비정상적으로 커져버렸다.
당직사령은 대대장에게, 대대장은 사단보안대에 직보하면서 간단하게 끝날 수 있는 사건이 확대됐고, 연대 보안반은 분위기와 흐름에 맞춰줬다.
거기에 A 상병의 인권은 없었다. 진급을 위해 혈안이 된 장교와 조금이라도 자기의 진급과정에 해를 받지 않으려는 소심한 대대장, 그리고 월북기도자가 아닌 줄을 알면서도 사단까지 보고되어 시끄러워진 사건을 ‘혐의 없음'으로 끝내는 것이 또한 자기에게 해가 될까봐 염려한 보안반장의 판단 등등. 결국 A 상병은 월북기도 죄로 군사재판에서 2년 형을 받고 영창에 갔다.
세월호 리본 철거, 담당 과장의 과잉 충성?
유가족의 농성장 앞 은행나무 가지에 매단 지름 10cm정도의 노란리본이 문제가 되었단다. 종로서의 무슨 과장이 노란 리본철거를 지시했고, 경찰들은 그 리본을 철거하기 위해 유가족들을 밀어붙이고 부상을 입히고 연행해 갔다고 한다. 이때 경찰은 "노란 리본은 시위용품이기 때문에 나무에 달아서는 안 된다"고 했단다. 이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인가?
나는 그 말을 들으며 34년 전이나 오늘이나 이 사회가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난장판이 벌어진 일과 관련,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정부청사의 고위공무원이 "세월호 노란리본이 보기 불편하니 떼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이다. 둘째는 경찰간부가 과잉충성했을 가능성이다.
나는 두 번째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노란 리본 철수를 지시한 과장이라는 고위 간부는 ‘과잉충성'을 했음에 틀림없다. 세월호를 빨리 끝내고 싶어하는 높은 사람들에게 "내가 이렇게 열심히 당신들을 위해 일하고 있소"라고 말하고자 한 것이다. 즉, 잘 보여서 진급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의 눈에 자식 잃고 슬퍼하며 절망하는 엄마, 아빠들이 보일 리가 없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절망과 슬픔, 애절한 마음이 적어도 자기 자리 보전과 진급에 눈이 먼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자기가 처한 형편과 자기가 가진 직업과 지위에서 정당하게 자기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해야 하고, 자기의 언행 하나하나가 이웃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인식하며 사는 것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태도이다. 그런데 오늘 이 나라는 상식을 잃어버리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