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제34회 국제성서학대회가 7월3일부터 7일까지 연세대에서 개최됐다. 전 세계 37개국에서 500여 명의 성서학자들이 모여 4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주로 구미 각국에서 매년 개최되다가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열린 이번 대회는 성서학의 상황화 담론이 반영된 결정이다. 이 대회를 서울로 유치하는데 일조한 아시아성서학회의 설립자 아치 리(Archie Lee) 박사를 모시고 대회의 취지와 성서학의 최근 조류에 대한 대담을 나누었다. 대담은 6일 연세대 백양누리 인근에서 진행됐으며 대담자는 본지 이인기 편집국장이다.

(Photo : ⓒ 이인기 기자)
▲아시아성서학회 창설자 아치 리(Archie Lee) 박사

문: 복수적(plural) 관점이 학문적인 접근법의 다양성만을 지칭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기독교인들 중에는 주일마다 교회를 나가지만 주중에는 불교식이나 유교식의 사고방식에 따라 살다가 위급한 일이 발생하면 무속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유산 때문에 성서를 이해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복수적인 것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다층적인 사고방식 자체가 아시아적 컨텍스트일 수 있거든요. 기독교의 문화배타적인 입장이 아시아의 종교적 지평에 대한 인식을 촉발했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이런 조건에서 성서학은 이들을 그와 같이 혼합적인 사고방식으로부터 떠나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와 같은 사고방식과 더불어 살도록 권고해야 하는 것입니까?

리: 성서학의 상황화라는 분야에서 매우 예민한 문제입니다. 아시아적 상황은 샤머니즘이나 다양한 지역신앙의 전통이 존속하면서 불교, 도교, 유교 등의 사고방식이 영향을 끼치고, 이제는 기독교까지 유입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방식의 일부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성서의 진리관 혹은 신관이 배타적이라는 점입니다. 그 외의 다른 것들은 우상숭배이자 사탄에게 속한 것으로 간주하지요. 이것은 교정되어야 하는 태도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문화적 조건 아래서 산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유익하다고 판단되는 요소를 선택해서 통합하는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지요. 우리는 외래의 문화적 요소들을 수용하거나 배제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문화를 갱생, 재발명, 재설정하게 되는데 교리도 그러한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문: 다소 혼합주의적인 입장으로 들립니다.

리: 혼합주의로 들릴 것입니다. 그런데 혼합적이지 않은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성서도 혼합되지 않았습니까? 혼합된 개체가 잘못된 것이라면 순수한 것을 찾아야 하는데 세상이 그러한 순수함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요? 그런 것은 없습니다. 물론, 혼잡스런 상황까지 용인하는 것은 아니므로 주의를 기울이는 자세는 필요하지만, 어쨌든 나의 입장은 그러합니다.

문: 한국교회에서는 성서를 해석할 때 축자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서의 자구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성서의 자구 자체를 믿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혼합주의적 태도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리: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성서의 텍스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다는 점입니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문자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표층적으로만 이해하는 태도입니다. 대단히 얇은 해석적 층위에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두어 두는 태도이지요. 성서에 관한 다양한 층위의 의미, 다양한 양상, 다양한 해석형태 중의 한 가지를 대변할 뿐입니다. 이렇게 말해봅시다. 서구에서 아시아로 신학이 도래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이제는 성서를 읽고 우리의 방식으로 성서를 이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서의 의미가 문자적 의미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절대적일 수 없잖아요? 인간의 문자를 절대시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 신이 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문: 문자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하나님을 참칭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군요.

리: 그렇습니다. 성서 밖에는 구원이 없고 하나님도 없다고 주장한다면 성서를 섬길 수밖에 없지요. 성서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해주는 하나의 매체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성서를 절대시하면 성서문자주의(Biblicism)에 해당합니다.

문: 성서숭배(Bibliolatry)로도 이어지지요.

리: 성서를 우상으로 만드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그처럼 문자 자체를 절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생활 속에서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우리 생활 전반에 스며들어가야 하는 것이지요.

(Photo : ⓒ 이인기 기자)
▲국제성서학회가 개최 중인 연세대 백양누리 인근에서 포즈를 취한 아치 리(Archie Lee) 박사.

문: 그러면, 성서의 말씀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문제의 한 가지 사례를 여쭈어보겠습니다. 최근에 한국사회는 동성애 문제로 많은 논란을 겪었습니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대응법을 성서는 명시하고 있는데, 동성애 문제에 관하여 기독교 신앙의 생활화 혹은 하나님 말씀의 실천이라는 요소는 어떻게 관련시킬 수 있겠습니까? 지혜를 나누어 주십시오.

리: 나도 지혜는 많지 않습니다. 현재 상황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커밍아웃을 하고 있고 이와 관련한 입장들도 엇갈리고 있지요. 현재 그들은 우리 사회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고 교회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와 같이 다른 성적 취향을 창조하셨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관계를 유지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성서를 굳이 찾지 않더라도 성서가 동성애자들에 대해 반대하는 태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본적으로 인간, 즉,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해서 열린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이해에 기초하여 창조세계에 선을 긋고 배제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경계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구분 짓기보다 세상과 화해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구분하고 배제하는 신학이 횡행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문: 사회적 현상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한국교회뿐 아니라 한국사회도 여전히 보수적인 기조가 강해서 동성애자들의 퀴어축제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중국에서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리: 우리도 상황은 한국과 비슷합니다. 일전에 텔레비전에서 동성애자들의 생활과 그들에 대한 사회의 반응을 다룬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우리가 모조리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회에 따라서는 그런 사람들을 억압하는 경우들이 많더군요. 기독교인들은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 마지막 질문입니다. 성서학의 동향이 어떻게 진행될 것 같습니까?

리: 성서학은 신학의 일부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성서를 읽기는 하지만, 신학적 전제나 교리가 성서의 말씀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지요. 성서학이 성서를 핵심 텍스트로 삼고 있으므로 성서를 읽고 묵상하는 일이 사실상 우선되어야 합니다. 신학적 이론을 성서에 적용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성서학의 학문적 동향보다는 성서 자체를 대하는 태도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첫째, 성서가 우리에게 하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성서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에 주목해야 합니다. 텍스트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둘째, 성서는 사람이 읽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읽는 사람의 감정, 역사, 삶의 이야기 등이 성서의 해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성서가 삶의 현실에 적용되는 텍스트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성서에 대해서는 중층적 해석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나의 것과 다른 접근법을 용납해야 합니다.

문: 성서를 읽을 때 성령의 역할에 대한 고려는 하지 않아도 됩니까?

리: 우리는 먼저 성서를 읽을 때 겸손한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에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움직임을 알아챌 수는 없지만 성서 텍스트를 통해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판단이나 해석을 우선하면 영적인 통찰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문: 대담을 마무리하면서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늘 명심해야 할 태도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리: 기독교인들은 이질적인 문화에 대해서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에큐메니컬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서학의 상황화와도 관련 있는 자세입니다만,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그분의 말씀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문화권의 해석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삶에 통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자세이기도 한 것입니다.

문: 감사합니다. (끝)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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