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지으시고, 자연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에 현존하실까? 우리가 두발을 땅에 딛고 살아가는 현실에 서 계신걸까? 아니면 현실을 초월해 우리와 다른 시공간에서 우릴 지켜보고만 계신걸까? 어떤 형이상학적 신론을 펼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신앙인으로서 꼭 한번 경험하고, 만나보고 싶은 하나님에 대해 좀더 진지한 고민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 같이 하나님의 현존과 관련해 풀기 어려운 물음표를 가진 이들이 서울 마포구의 한 작은 교회의 예배당에 모여들었다. 25일 저녁 7시 삭개오작은교회에선 ‘'영원한 현재'에 충일하신 하나님과 창조과정을 경험하시는 하나님’이란 주제로 갈릴리복음 성서학당 4번째 마당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저마다 물음표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강사의 강연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강사의 대답은 의외였다. “본인도 하나님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한 것.
앞서 성서학당의 훈장(訓長) 김경재 교수(한신대 명예)는 강연 주제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의 본질부터 살폈다. 김 교수는 첫째, 한국기독교의 하나님의 이해가 한국에 처음 복음이 전파되었을 때의 ‘신선한 충격과 변화적 창조능력’을 상실하고, 종교가 제도화되어가는 과정에 나타나는 기복신앙과 지배계층의 종교적 이념으로 전락했다는 것.
둘째, 전통적 기도문의 수사어구로서 “저 하늘 높은 보좌에서 인간세상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전능하시고 영원불변하신 하나님” 등이 강조하는 신적 속성으로서 ‘하나님의 초월성’이 강조되는바, 초월성의 참 뜻이 왜곡되어 세상도피적 신앙형태로 변질된 것.
셋째, 20세기의 세계적 비극사건을 경험한 이유는, 세상의 이해할 수 없는 불의와 비극적 고난(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과 월남전쟁, 대형사고와 재난발생)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로운 다스림(神正論 문제)에 대한 질문과 함께 하나님과 세계현실과의 관계가 무엇인지 묻게 됐다는 것 등이 이번 강연의 주제를 정하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가 25일 저녁 삭개오작은교회에서 갈릴리복음 성서학당 네번째 강의를 하고 있다 ⓒ베리타스 |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김 교수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을 크게 둘로 나눴다. ‘영원한 현재’에 충일하신 하나님과 창조과정을 경험하시는 하나님이 그것이다. 전자에 영향을 준 것은 헬라철학적 사상으로, 이 사상의 세례를 받은 기독교의 하나님 이해는 절대불변적 실체로서의 '초월적 하나님'으로 변형되어 갔다. 하나님은 세계의 변화나 시간성으로부터 초연하게 떨어져있는 절대초월적 하나님으로 강조된 것. 다른 말로 하면 피조물을 지어놓고, 피조물과 맞닿지 않는 어딘가에서 피조물을 감상하시는 하나님으로 이해되어 간 것이다.
하나님 이해가 초월성에 머물게 되자 커다란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기독교인들 사이 현실 도피적 사고가 팽배해지게 된 것이다. 김경재 교수는 “그리스도인들은 변화무쌍하고 덧없고 더러운 현실세계를 외면하거나 세상에 대해 무책임하게 되었다”면서 “신앙문제는 사적일거리, 개인적 관심거리, 지극히 주관적인 내면세계의 일거리로 축소되어 버렸다. 마침내 신앙고백과 삶의 행동이 분리되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인 후자. 즉, 하나님과 창조과정을 경험하시는 하나님을 설명하고자 피조물의 고난과 창조적 환희를 함께 체율(體恤)하시는 성경의 하나님을 짚어봤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메...”(요5:17)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살며 기둥하며 존재하느니라”(행17:27-28)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 지니라”(롬1:20)
그가 뽑은 성경의 몇 귀절만 살펴봐도 알수 있듯이 하나님은 고대 헬라철학의 세례를 받은 ‘초월적 하나님’과는 달리 우리 삶의 아주 가까운 곳에 ‘내재하는 하나님’임을 알 수 있다.
현실을 초월해 우리가 붙잡을 수 없는 저 멀리 계시면서 동시에 내 옆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이신론(理神論), 내재적 범신론(內在的 汎神論), 초월적 유신론(超越的 有神論)도 아닌 양극성적 과정신론(兩極性的 過程神論)으로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양극성적 과정신론이란 사람의 손이 손등과 손바닥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손바닥은 사물을 감싸고 접촉하지만, 언제나 손등은 손의 활동 윗면에 자리하듯이, 신은 영원불변한 근원적 본성과 시간적이고 체험적인 결과적 본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김 교수는 또 이 신론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성경 귀절로 에베소서 4장 16절을 꼽았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6)
강연 말미에 김 교수는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잠깐 언급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본 하나님의 사랑과 실재를 고백한 것. “어머니의 자식 사랑 만큼 하나님의 사랑과 실재를 잘 설명해 주는 것은 없을 거에요. 자식이 악을 행하고, 투정을 부려도 품고 또 품는 어머니의 사랑을 볼 때 하나님은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보다 못한 하나님이라면 난 그런 하나님 믿지 않겠어요(웃음)”
* 이신론이란
창조시에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창조세계의 모든 법칙을 넣어주시고, 이제는 창조계를 완전초월하여 그 창조물을 음미할 뿐이라는 근대 17세기 기계론적 세계관에 기초한 과학적 지식인 신관.
* 내재적 범신론이란
창조주 하나님은 창조세계와 완전히 일치하시며 신과 우주만물과의 관계를 정신과 몸의 관계처럼 여긴다. 우주만물이 곧 신의 몸이며 자연이 곧 신이다. 신의 초월성이 없어진다.
* 초월적 유신론이란
창조주와 피조세계의 질적 차이가 강조되며 창조주의 초월성이 흔히 공간적 초월성으로 인식되어 도덕적 군주나 '해결사의개입'을 연상케하는 서구 정통신앙의 주류로 잘못인식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