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구약의 하나님은 왜 살육을 명령하셨는가?

댄 델젤(Dan Delz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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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pixabay)
▲런던 박물관의 모세 조각상

"예수께서는 지상의 사역 기간 내내 평화로우신 분이셨다. 그분은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죽이면서 다니지 않으셨다. 심지어 그분은 제자들에게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마5:44)고까지 말씀하셨다. 하지만 구약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전 종족을 살해하라고 명령하셨다. 이런 두 입장은 상반된다. 하나님이 변화되어 더 사랑하며 더 관용적인 분이 된 것인가?"

좋은 질문이다.

한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살인하지 말라"(출20:13)고 명령하셨다. 이 명령은 모든 불법적인 살인을 금지하신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신20:16-18).

이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서의 합법적인 살인을 언급하는 사례이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의 죄에 대해서 분노를 표출하셨던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만일 당신이 근친상간, 간음, 동성애, 수간을 저지르게 되면, 그것은 당신의 창조주를 격노케 만들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기억해야 할 두 가지 사실이 있다: 하나님의 진노는 죄에 대한 인간들의 분노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사랑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인간의 사랑보다 더 크다는 사실이다.

만일 당신이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을 이루어주셔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한참 혼란스럽고 실망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혹은,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방법보다 훨씬 더 크다"는 관점으로 성경을 읽으면, 당신은 비록 그분의 방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결국 그분께 감사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무죄한 사람들을 납치해서 고문하고 죽이는 흉악범들이 있다고 치자. 이들 중 10명이 체포되어 기소된 뒤 사형을 언도받았다고 가정해보자. 판사가 만일 당신이나 내가 우리 자식들 중의 한 명을 보내서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죽게 한다면 이들을 석방할 것이라고 판결한다고 생각해보라.

당신은 이 흉악범들의 석방을 위해 당신의 자식을 보내 죽게 할 만한 사랑을 갖고 있는가? 솔직히 말해, 나는 그러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렇게 할 수도 없을 것이고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다. 어떤 점에서는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인간의 사랑의 한계를 지시한다.

우리는 흉악범들이 무죄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것을 볼 때마다 속이 뒤집힌다. 하지만 성경은 당신의 죄와 나의 죄가 하나님께 훨씬 더 혐오스럽게 여겨진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당신이 그 사실을 인정할 때까지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악함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셨나? 감사하게도, 그분은 독생자를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우리의 자리를 대신하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당신과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그 고통과 형벌을 겪으셨다.

당신은 아마도 "나는 나의 죄에 대해 마땅히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솔직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나는 우리의 관점에서 우리의 죄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어떻게 처리하시는가에 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보다 수백만 배나 더 크다. 육신의 부모라면 10명의 흉악범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독자를 보내어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은 분명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로 보냈는가? 그것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죄에 대한 그분의 심판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정의는 범법자가 처벌받는 것을 요구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독생자의 완벽한 희생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도록 조처하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 이외에는 우리가 용서받을 길이 그 어디에도 없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에 대한 처벌을 "단번에"(롬6:10; 벧전3:18) 짊어지셨던 것이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사53:5)

이사야의 이 예언은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 탄생하기 700년 전에 선포된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신 것이다.

하나님은 불변하는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인간의 사랑보다 훨씬 깊고 클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도 훨씬 더 강하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종종 죄에 대해 표출된다. 그런데 신약을 읽을 때 사람들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왜 멈춘 것처럼 보이는지 궁금해 한다.

십자가는 새로운 언약에 따라 하나님의 접근방법에 변화가 생겼음을 알려준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합쳐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도 아무 일 없이 인생을 순조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성경은 불신자들이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임할 진노를 쌓고 있다"(롬2:5)고 경고하고 있다.

동시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고도 선포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궁극적인 심판은 최후의 심판일까지 유보되어 있다. 인간은 지상에서 자신의 생이 끝나기 전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께서 용서해주시기를 의탁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만일 당신이 구약에 나온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예수께서 지옥의 영벌에 대해 가르치신 것을 묵상해보라.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사랑보다 수백만 배나 더 큰 것처럼, 하나님의 진노도 지상의 판사들이 범인들에게 선고하는 형량보다 수백만 배나 더 크다.

예를 들어, 만일 하나님께서 내게 "나는 네가 모든 죄인들에 대한 형벌을 결정하기를 바란다"라고 말씀하신다면, 나는 모든 죄인들에게 영원한 고통을 선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히틀러 같은 짐승이나 다른 괴물들에게나 그런 판결을 언도하기는 하겠지만 대다수의 불신자들에게 영벌을 선고하지는 못할 것 같다. 나는 훨씬 가벼운 벌을 선고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다.

하나님은 결코 사랑과 은혜와 진노와 형벌에 대해서 인간적인 방식을 따르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대신에 하나님은 모든 경우를 그분의 완전한 정의와 그분의 놀라운 은혜에 따라서 처리하신다.

유한한 인간은 일시적인 축복과 감옥에서의 일시적인 형벌을 선고할 뿐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낙원에서의 영생과 지옥에서의 영벌을 선고하신다.

구약에 나오는 살육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구체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아마도 당신은 "그렇기는 해도 그러한 하나님의 심판이 어떤 경우에는 유아들의 생명까지 앗아갔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말해서 나는 그런 상황에서 죽은 아이들은 천국에 갔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완전히 정의롭지 못한 일을 절대로 하지 않으신다. 당신은 모든 일이 보고되고 완결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각자 "정당한 대접"을 받게 될지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145:17,18).

그러므로 당신이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왜 대량 학살을 명령하셨는지의 문제를 두고서 힘겨워 한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진노가 인간의 사랑과 인간의 분노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만 기억하라. 당신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그분을 주님으로 따름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누리든지, 아니면, 당신이 충분히 이해하거나 파악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하나님을 비판하면서 평생을 살아가든지 할 수 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완전한 명령을 어긴 죄인들의 세상에 대해 이미 선택을 하셨다.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은 우리에게 제시된 계약조건인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썼다: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렘31:3).

만일 당신이 예수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로운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한다면, 당신은 최후의 심판일에 자신 이외에 누구에게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 즉,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는 복을 놓치게 될 것이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생각하라. 그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지상에서 쓸려나가버릴 때 방주를 타고서 구원을 받았다. 최후의 심판일에 하나님의 진노의 홍수는 이보다 훨씬 더 격심할 것이다. 성경은 그 사실을 매우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당신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두 배 중의 하나를 타고 있다. 당신은 스스로 "진노를 쌓고 있든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음으로써 그분의 자비와 은혜와 사랑 안에 쉬고 있다.

그러니, 오늘 당신은 어느 배를 타고 있는가? 당신은 어느 배를 타고 있기를 원하는가?

당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벗어나서 그분의 은혜와 영원한 보호 아래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기사출처:

http://www.christianpost.com/news/why-did-god-command-killing-in-the-old-testament-170386/#P2JHIeK1X7GC3ey4.99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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