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대담

“그리스도는 한 분, 교회는 진보·보수로 편가를 수 없다”

한국 정교회 조성암 암브로시오스 대주교 인터뷰 ⓶

※ 1부에서 이어집니다.

-. 정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WCC) 등 ‘교회 일치'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 대주교께서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에 선임되면서 첫 일성으로 일치를 강조한 바 있었다. 정교회에서 바라보는 교회 일치란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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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한국 정교회 조성암 암브로시오스 대주교

먼저 정교회의 중심인 콘스탄티노플 세계총대주교청은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 창설에 중요한 주체로 참여했음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이전부터 교회가 여러 형태로 나뉘어졌는데 어떻게 하면 하나가 될 수 있는지 고민하며 교회 일치 운동을 시작했다.

한편 지난 1964년 아테나고라스 1세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바오로 6세 교황와 만남을 가졌다. 이 만남은 11세기 서방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가 분열된 이후 처음 이뤄진 만남이었다.

※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분열은 9, 10, 11세기 동안 점진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다 1054년 움베르토 추기경이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성당 제단 위에 동방 교회를 향해 파문장을 던진 사건을 계기로 두 교회는 최종 분열됐다. 로마 교회의 수위권을 둘러싼 갈등이 원인이었다. [글쓴이]

정교회는 교회 분열을 큰 죄로 여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하나가 되라'는 계명을 남기셨기 때문이다. 제자들에게도 이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교회는 10세기 이상 반대방향으로 나갔다. 1054년 정교회와 가톨릭으로 분열됐고, 16세기 이후 개신교가 생겨났다.

사도 바울로는 ‘교회는 한 몸'이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얼굴이고, 우리는 몸을 이루는 지체다. 한 손이 나머지 지체가 필요 없다고 떨어져 나가면, 그 손은 썩기 마련이다. 현재 교회의 모습은 그리스도인들이 한 몸으로 느끼기보다 각자 따로 동떨어져 있다는 게 문제다. 또 이렇게 나뉜 걸 문제 삼지 않고 자신의 교회만 잘되면 그만으로 여기는 경향도 강하다. 이런 경향은 당연하지 않다. 신학적으로는 죄로 여겨질 수도 있다.

어떤 교회라도 일치에 관심 기울이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교회는 병들었다고 할 수 있다. 정교회에서는 매번 일치를 위한 기원 드리는 한편, 세계교회협의회 등 교회 일치 운동에 적극 애를 쓴다.

-. 사실 한국교회는 이념 성향에 따라 보수·진보 진영으로 나뉘었고 입장차도 크다. 특히 보수 기독교계는 정권에 우호적이다. 반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상대적으로 진보색채를 띠어왔다. 정교회의 경우, 정치와 어떤 관계를 설정했는지, 한국 정교회의 경우 현실 정치 상황에 어떻게 반응해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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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조성암 대주교는 지난 달 8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국민주권시대를 여는 시국기도회’에 참여했다. 현 시국이 정치적이기 보다 윤리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사진 왼쪽부터 권오륜 기장 총회장, 대한성공회 김근상 주교, 조성암 대주교, 김영주 NCCK 총무

나는 교회를 진보·보수로 편가르기 하는 건 인정하지 않는다. 초대교회가 시작된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예수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다. 교회가 유지되는 와중에 진보·보수를 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정교회는 정치에는 직접 관여를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교회는 특정 정당, 혹은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면 안된다. 또 사람들을 좌파, 혹은 우파로 낙인 찍고 누구는 받아들이고 또 누구는 배척해서도 안된다.

내 조국인 그리스의 경우 정교회를 가보면 정치인들이 예배에 참석한다. 그리스엔 사회주의 정당도, 공산당도 있는데, 여야는 물론 이런 정당에 속한 이들까지 함께 예배를 드린다. 교회는 특정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 교회는 어머니다. 모든 사람들을 자식처럼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또 교회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정교회의 문,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정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하나의 문이다.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누구든 원하면 들어올 수 있다. 다만, 정부가 시민들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비윤리적인 행태를 보인다면 교회는 목소리를 낸다. 정치에 관여하지는 않지만, 시민들을 위한 정의를 지지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성서에서 이 같은 사례는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 왕이 이복동생의 아내와 불법적으로 결혼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했다. 이러자 헤로데는 그를 투옥해 처형했다. 이렇게 교회는 (세속정치의) 비윤리적이고, 올바르지 않은 모습에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역사적으로도 비잔틴 시대 당시 많은 황제와 고관들이 백성들에게 부당한 행위를 자행했을 때마다 주교나 총대주교가 나서서 권력자들을 향해 부당함을 고했던 경우가 많았다. 4세기 콘스탄티노플 황제비는 과부의 재산을 불법적으로 갈취한다. 이러자 성인이자 신학자인 요한 크리소스토모스는 그 부당함을 지적하고, 재산 반환을 주장했다. 이로 인해 크리소스토모스는 유배당했고,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최근 그리스는 난민문제로 어려운 상황이다. 난민들은 바다를 건너다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이에 아테네 대주교는 UN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에 난민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요약하면, 교회는 정치엔 관여하지 않는다. 단, 국민들이 어려움을 처했을 땐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한국 정교회는 지난 해 12월8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국민주권시대를 여는 시국기도회'에 참여했다. 현 시국 상황이 정치적이라기보다, 윤리와 영성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수업을 나오지 않은 학생에게 학점을 줄 수 없다. 또 뒷거래로 학점을 부여하는 모습은 비윤리적이다.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세상이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 대주교의 본명은 암브로시오스 아리스토텔레스 조그라포스로 알고 있다. 조성암이라는 한국 이름에 특별한 사연이 있는가? 한국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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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정교회에서는 입례 전 마음을 정결히 한다는 의미로 촛불을 밝힌다.

한국 정교회와의 인연은 1995년 시작됐다. 당시 나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수학하고 있었는데, 이때 한국 정교회가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받고 방학 기간 한국을 방문했는데,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에 한국에 오기로 마음먹었고, 1998년 학업을 마친 뒤 한국에 왔다. 처음 올 때부터 한국 정교회에 봉직하고, 이곳에 뼈를 묻겠다는 마음으로 왔다.

한국인으로서 생활하려면 한국 이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성암이라는 이름은 조그라포스의 ‘조', 그리고 암브로시오스의 ‘암'에서 따왔다. 가운데엔 거룩할 ‘성(聖)'자를 넣었다. 사도 베드로처럼 거룩한 반석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이름에 남긴 것이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으로서 계획은?

지난 제65회기 정기총회 때 언급했지만, 일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자 한다. 일치를 해야겠다, 혹은 일치에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마음이 들도록 행동하겠다는 말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현 상황에 만족하면서 일치를 도외시한다. 그러나 이 같은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목회자들이 교회가 흩어져 있는데 걱정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일치를 향한 발걸음이 되리라는 판단이다.

목회자들이 교회를 더 크고, 부유하고 힘있게 만드는데 관심 기울이기보다, 교회가 하나 되게끔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고 나아간다면 ‘하나가 되라'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계명으로 가는 올바른 길을 가게 될 것이다.

※ 사상 처음 정교회 수장을 회장으로 맞이하게 된 NCCK는 "회장이 외국인이라는 점은 고려사항은 아니다"라면서 "특별히 정교회가 지닌 초대교회의 영성과 교회 일치정신을 함께 나누며 상승작용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 지금 한국 국민들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끝으로 한국 국민들에게 새해 덕담 한 마디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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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정교회는 교회 일치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 한국 정교회 조성암 대주교는 교회 분열을 당연시 여기는 시각이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주께서는 새로운 계명, 즉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외형적인 아름다움과 물질적인 부, 편안한 삶을 추구한다. 여기에 관심 갖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사랑할 수 있고, 더 진정한 사랑을 가질 수 있는지 관심 갖는다면 더 좋은 세상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도 요한은 첫째 편지(요한 1서)에서 그의 형제를 사랑하면 죽음에서 삶을 얻지만, 미워하면 죽음 속에 머물게 된다고 적었다. 이 말씀처럼 사람은 사랑하지 않으면 생물학적으로는 살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죽음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에 한국 국민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사랑은 기술과도 같다. 기술은 단계적으로 연마해 연마하면 습득할 수 있듯, 사랑의 방법을 배우는 건 중요하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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