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데스크시선] 말에 쏘인 반기문과 국민

bankimoon
(Photo : 사진= SBS 방송화면 캡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그는 그 이유로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 등을 언급했다.

탄핵정국의 격랑 속에서 터져 나오는 정치인들의 말은 탄핵의 분위기보다 국민들의 마음을 더 위축시키고 있다. 대선을 위해 노골적으로 좌충우돌하는 소위 대선주자들의 말은 전략을 벗어나 이간의 지경까지 넘나들고 있다. 그 위험수위가 언론의 스피커를 통해서 고조되는 동안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따지고 보면 말의 폭력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분당사태를 겪은 정당의 정치인들은 그 동안 어떻게 한솥밥을 먹었을까 싶을 정도로 오래 전부터 칼을 갈고 있었던 양 서로에게 날선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듣는 국민들의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들의 할 말을 온통 냉소와 풍자로 포장하여 일방적으로 발표하고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소통의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허물없는 사이라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사회적 관계의 금도일진대, 작금의 정계는 그러한 금도조차 필요 없는 야만의 향연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국민들의 정치 불신은 정책의 부재나 편향적인 성향 때문이라기보다는 언론 보도를 통해서 매일 전달되는 야만적인 언어의 횡포 때문이다. 상대방의 결점과 비행만을 고발하거나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전으로 국민의 정당한 알권리를 침해하는 이러한 야만의 향연 자체가 국민들에게는 죽음의 기운을 유포하는 것이다.

살아있음의 의미를 독특하게 천착한 전봉건 시인(1928-1988)의 "의식(儀式)·3"이라는 제목의 시가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그는 말을 단순히 언어 소통의 도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의식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종교의식이 영혼의 생명과 관련되는 것처럼 말도 생명을 소통하는 의식과 같다는 것이다.

나는 너의 말이고 싶다.

쌀이라고 하는 말. 

연탄이라고 하는 말.

그리고 별이라고 하는 말.

물이 흐른다고

봄은 겨울 다음에 

오는 것이고    

아이들은 노래와 같다라고 하는 

너의 말.

(중략)

그리고 또 내게 살며시 깜빡이며 

오래   

잊었던 사람의 이름을 대듯이   

나직한 목소리로 부르는 평화라고 하는 그 말. 

정치의 언어는 국민에게 쌀이 되고 연탄이 되고 별이 되며 노래가 되고 평화가 되어야 한다. 정치인의 말은 단순히 의사소통의 기술적인 수단이 아니다. 국민을 살리고 희망을 주는 의식이어야 한다. 그 한 마디가 미치는 파급효과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민들은 정치인의 말을 통해 정책을 평가하며 자신들의 삶에 직결되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힘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약 3천여 년 전 전무후무한 권력과 금력을 누렸던 솔로몬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잠언18:21)라고 훈계했다. 말이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말은 그만큼 선별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계는 말을 사람을 죽이는 도구 정도로나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래에 인용된 시편은 압살롬 무리들이 다윗 왕국에서 역모를 꾀하며 백성을 이간하는 말들을 퍼트린 것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인데, 오늘날 우리 정치인들도 시편 속의 "그들"과 같이 혀를 이용하여 사람을 죽이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그들이 칼 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화살 같이 독한 말로 겨누고/ 숨은 곳에서 온전한 자를 쏘며 갑자기 쏘고 두려워하지 아니하는도다/ 그들은 악한 목적으로 서로 격려하며 남몰래 올무 놓기를 함께 의논하고 하는 말이 누가 우리를 보리요 하며/ 그들은 죄악을 꾸미며 이르기를 우리가 묘책을 찾았다 하나니 각 사람의 속 뜻과 마음이 깊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쏘시리니 그들이 갑자기 화살에 상하리로다/ 이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리니 그들의 혀가 그들을 해함이라 그들을 보는 자가 다 머리를 흔들리로다"(시편 64편 3-8절)

현재 우리 국민은 전봉건 시인이 몸소 겪었던, 쌀이 없고 연탄이 없는데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꿈도 품지 못한 채 짧은 봄 뒤에 이어지는 겨울, 겨울,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 상황에 있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아이들은 노래와 같다!"고 외쳐주거나, 아니면, "나직한 목소리로 부르는 평화"를 들려줄 수는 없는가? 대선가도를 질주하기 위해 확성기를 틀어 상대방을 죽이고 국민을 죽이는 구호에 집착하지 말고, 말을 생명의 의식으로서 인식하고 서로의 생명을 살리는 "묘책을 찾았다 하나니 각 사람의 속뜻과 마음이 깊[이]" 전달되는 통로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치인이 "나는 너의 말이고 싶다"고 국민에게 고백하고 그 말의 의미대로 생명을 북돋우는 공약으로 경쟁하고 그 공약을 현실적으로 가시화하도록 전력질주하는 것을 보고 싶다.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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