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상임대표 김영한 박사)는 3월28일(화) 사순절 논평을 발표하고 "한국교회는 대통령 파면이라는 국가의 불행 야기에 대해 대리적 회개의 성찰을 해야 한다. 촛불과 태극기가 대립하게 된 사태에 대하여 화합의 사명을 못한 것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래는 논평의 전문이다.
한국교회는 대통령 파면이라는 국가의 불행 야기에 대해 대리적 회개의 성찰을 해야 한다
촛불과 태극기가 대립하게 된 사태에 대하여 화합의 사명을 못한 것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
사순절은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를 생각하며 참회하는 기간으로서 교회가 부활절 이전 40일 간 기도하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절기이다. 그래서 사순절의 시작은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는 '성회(聖灰) 수요일' 혹은 '참회 수요일'이다. 이번 사순절 기간에는 국가적으로 대통령이 파면되고 구속영장 청구 심사를 앞두고 있는 국가적 불행이 있다.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가운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종교개혁이 밝혀낸 수난의 의미를 되새기며 개인과 국가의 삶에 적용해야 한다.
중세교회는 초기부터 있었던 수도원 운동을 통하여 예수님의 성육신과 고난을 수도사들의 삶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유럽 전역에는 이러한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려는 수도원들과 수도사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이러한 중세교회의 신학을 '영광의 신학'이라고 평가하였다. 루터에 의하면 로마 교회는 자신들의 고난마저 공로가 될 수 있다고 이해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참된 고난을 멀리하는 자들이었고, 수도원과 수도사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십자가의 고난은 낮아짐이고 치욕이며 부끄러움이었지만, 그들은 낮아지기 보다는 고난과 회개를 가지고 자신들의 의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들에게 회개와 고난은 스스로를 장식하는 또 다른 의(義)의 장신구였을 뿐이다. 루터는 진실한 '자기 부인'이 빠진 이 로마 교회의 경건을 비난하고, 참된 신학은 '십자가의 신학'이라고 불렀다. 십자가의 신학은 인간의 '자기 부인'을 전제로 한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의 부패성과 무능력과 무가치함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성도의 고난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어야 하지, 고난을 통해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만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루터는 이러한 기만적인 낮아짐과 고난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낮아짐을 요구했다. 그 낮아짐은 치욕이며 무능력이고 죽음이다. 주께서 주시는 고난과 치욕을 묵묵히 감당하는 것이다. 그 죽음에 처한 후에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부활의 생명을 주실 것이다. 사순절 기간 기도하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샬롬나비는 한국교회를 향하여 다음을 천명한다:
1. 한국교회는 대통령 파면이라는 국가의 불행에 대하여 제사장적 대리 회개를 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사회는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에 대한 대통령의 실책과 권력남용으로 인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 한국교회는 교세확장과 세속적 영향력 확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왔으며 정의로운 국가경영과 공정한 사회절차에 대한 예언자적 감시의 역할을 등한시하여 왔다. 교회 지도자들은 권력자에 대하여 예언자적 목소리를 들려주기보다는 이들에게 잘 보여서 통치자들로부터 세속적 명예와 유익을 얻고자 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불찰이 오늘날 불행을 가져다주었다고 볼 수 있다. 종교개혁 정신에 비추어 볼 때 교회는 자신의 세상적 능력을 의지해서는 안 되며 오로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세상 정권과 위정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정의로운 통치를 얼마나 강조했는지 다시 한 번 성찰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수난주간 세상의 영광을 포기하고 하나님 길을 따른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 길을 묵상하면서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길을 가야 한다.
2. 한국교회는 세속주의적 권력욕과 명예욕을 회개하고 고난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한국기독교가 제1종교가 된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를 향한 윤리적 책임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교회는 우리 사회를 향한 예언자적 책임보다는 세상 권력자의 기호에 맞는 말을 하고자 하였다. 교회의 사명은 예수님을 따라서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세상 불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단순히 고난과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넘어선다. 치욕과 부끄러움과 스스로의 무가치함을 견뎌야 한다. '자기 부인'의 자리에 서야 한다. 세상을 향한 정의로운 증언으로 인해 다가오는 세상의 조롱과 손가락질을 감수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사회로부터 지탄받는 처지에 서게 된 것은 예언자의 사명을 감당해야할 한국교회가 세속주의에 물들고 권력과 명예욕을 추구하면서 정치인과 권력자들에게 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공직자와 양식 있는 지성인들과 심지어 불신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것이다.
3. 촛불과 태극기가 대립하는 국가적 불행에 대하여 한국교회는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대통령 탄핵과 파면 판결 이후에도 국론이 통일되지 못하고 이에 찬성하는 촛불 시위자들과 이에 반대하는 태극기 시위자들로 나누어져 있다. 이 갈등과 대립은 아주 심각하다. 종교개혁 500주년과 수난 주간을 지나가는 한국 교회에게 묻고 싶다. 한국교회는 이를 종교적 축제로서 지키고 있는가? 우리는 정의가 상실된 종교적 축제란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모임일 뿐이라는 사실을 각성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오로지 낮아짐과 자기 부인으로 인하여 그 분의 구원과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 교회가 자기 성찰의 회개로 인하여 세상의 권력욕과 명예욕에서 죽는다면 주께서 주시는 부활의 영광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4. 한국 교회는 권력 지향으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회개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권력자들에 대하여 존경을 하되 이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예언자적 비판의 사명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한국교회는 권력자들의 불의하고 불공정한 행정을 도덕적으로 감시하는 역할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는 데는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태도가 이 세상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존재가치다.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고난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한국교회는 체험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고후1:5)라고 고백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우리사회가 당하는 불행 속에서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고 잘못과 부족을 회개하는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부어주시는 위로를 체험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체험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의 위로를 받을 수 없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체험할 수 없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체험하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중세 수도사들과 같이 우리의 강함과 능력과 힘과 영광을 드러내려는 곳에서 내려와 우리는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 낮아짐 속에서 주께서 주시는 위로를 체험하고 그 속에서 부활의 주님의 생명력을 체험해야 한다. 그 위로와 생명력을 체험할 때, 우리들이 십자가 길의 진리를 깨달을 것이며, 그곳에서 루터의 십자가 신학의 진수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5. 북한의 핵무기 위협과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기도하자
사순절 기간 한국교회는 북한 핵도발과 사드 설치로 인한 중국의 경제보복 등으로 국가가 처한 어려움에 동참하면서 예수님 고난의 참된 의미를 깊이 되새겨야 하겠다. 우리는 미국우선주의, 중화패권주의, 일본의 우경화로 표면화된 국제사회의 자국우선주의 상황 아래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자기 부인의 평화의 복음의 힘으로 이 세상에 참된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를 명상하며 하나님께 우리의 고난을 통한 참된 평화의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유대인과 이방인의 막힌 담을 허신 것과 같이 한국을 둘러싼 모든 막힌 담을 허시고 우리에게 평화를 주기를 기도해야 하겠다. 한국교회는 한국사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한반도 평화 통일과 동북아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2017년 3월 28일
샬롬을꿈꾸는 나비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