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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풍성한 생명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예레미야서 23장 1-6절, 요한복음 10장 7-18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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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김진한 기자)
▲생명사랑교회 한문덕 목사

열흘도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의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 이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SBS, KBS, JTBC 등과 같은 언론사가 마련한 초청 토론과 선관위에서 정치와 경제 분야에 관한 토론을 실시하여 벌써 다섯 번의 토론을 진행하였고, 5월2일 사회 분야를 주제로 한 토론을 하고 나면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앞으로 5년 동안 이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뽑게 됩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일은 그야말로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떠한 공동체이든지 그 공동체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선출하지 않을 수 없고, 어떤 지도자를 선출하느냐에 따라 그 공동체의 성패가 갈릴 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국가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곳입니다. 갈등을 조정하고 화해와 협력을 통해 다수의 국민에게 유익을 주면서 소수의 피해자들도 배려하는 내치를 한다는 것이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냉혹한 경쟁이 펼쳐지는 국제 관계 속에서 국익을 최대한 이끌어 내면서도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책임 있는 국가를 만드는 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아직도 평화협정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 전쟁의 위협이 상존하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우리의 경우 더 세밀하고 더 신중한 선택들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통령을 뽑을 때 다양한 측면에서 요리조리 살펴보고 올바른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누가 과연 정치개혁을 할 수 있으며, 사법기관과 언론, 재벌과 같은 권력기관들의 전횡을 막고 고칠 수 있겠는가? 국민의 주권을 강화하고 인권을 높이는 일은 누가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경제 분야에서는 복지 예산을 확충하고, 분배를 통해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며, 양극화를 해소하고 경제 성장과 일자리를 창출할 사람은 누구인가? 남북 분단의 대치 상황에서 누가 북핵을 억제하고 평화적 해결을 통해 남북이 상생하는 정책을 만들어 낼 것인가? 미세먼지 문제가 대선의 핵심 쟁점으로 나오듯이 누가 이 나라의 국토를 잘 보존하고 관리하며, 새로운 에너지와 산업 구조 개편을 통해 우리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해 줄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4차 산업의 시대라고 하는 새로운 변화 속에서 누가 새 시대를 열 수 있을까?

이 밖에도 우리 사회가 당장 당면하고 있는 여러 과제들, 국민들 사이에 갑론을박하고 있는 과제들이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해결, 역사교과서 문제, 사드 배치 문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청년들의 일자리와 노인들의 안정적 노후생활 등. 정말 능력 있고, 준비가 된 대통령은 누구이며, 믿을 만한 사람은 누구인가? 서민과 국민 편에 서서 개혁을 해나갈 대통령이 누구인지 결국 국민이 판단하고 우리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분히 각 정당의 후보들의 공약과 그들이 살아온 길, 그들 주변에서 함께 국정을 맡을 사람들의 면면을 살피고 꼼꼼히 따져서 투표를 해야 합니다.

그냥 호감이 가서, 왠지 좋아 보여서, 잘 할 것 같으니까, 같은 고향 사람이기 때문에, 난 늘 어느 편을 지지했으니까 이번에도 무조건 거기를 찍겠다는 방식으로 투표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번에 투표를 하여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잘했는지 못했는지, 내 선택이 옳았는지를 반성하면서 이번에는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하나하나 차분히 살펴서 투표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거짓 목자들의 행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예레미야서의 본문에는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도리어 양떼를 죽이고 흩어버린 악한 목자들을 벌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의 본문은 참다운 목자와 나쁜 목자에 대해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에스겔서 34장은 한 장 전체를 나쁜 목자에 대해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짧던 길던 그 핵심은 한 가지입니다. 양떼를 잘 먹이는 목자인가? 아니면 양을 잡아먹는 목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의 한 구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목자들이란 양 떼를 먹이는 사람들이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살진 양을 잡아 기름진 것을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기는 하면서도, 양 떼를 먹이지 않았다. 너희는 약한 양들을 튼튼하게 키워 주지 않았으며, 병든 것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을 싸매어 주지 않았으며, 흩어진 것을 모으지 않았으며, 잃어버린 것을 찾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양 떼를 강압과 폭력으로 다스렸다."(에스겔 34장 2-5절)

오늘 예레미야서의 말씀에도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참다운 목자는 양들이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도 않고, 양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며, 슬기롭게 통치하기 때문에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가져오고 유다와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가져오며, 안전한 거처를 마련해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한 목자를 따라]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참다운 지도자, 선한 목자는 누구일까요? 또한 우리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 참된 친구가 되려면 누구에게서 배울 수 있을까요? 또한 그런 지도자를 만나고 그와 함께 동행하려면, 또 우리가 그런 지도자가 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한복음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참다운 목자이시고, 선한 목자이신지 몇 가지로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합니다. 도둑이나 거짓 목자는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지만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마저도 버릴 각오가 되어 있고, 실제 그렇게 합니다. 둘째 선한 목자는 자기 양들에 대해서 잘 알고, 양들도 그 목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관계처럼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그런 관계가 됩니다. 바로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이며 그 둘 사이에 다른 어떤 가치도 개입할 수 없습니다. 셋째 선한 목자는 사랑이 넘치기 때문에 자기의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도 이끌어 와서 기존의 양들과 함께 한 무리를 이루도록 합니다.

우리가 참된 구원의 삶을 살고 안전한 거처에 머무르려면 우선적으로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목자로 인정하고 그분의 인도에 우리를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이 참된 목자라고 하면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유혹에 넘어가 우상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돈과 권력, 명예와 자기 고집! 이 모두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무엇이든 선한 목자이신 예수께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다면 바로 그것이 우상입니다.

어떤 사람이 혼자서 시골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 쪽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팔을 뻗어 무언가를 잡았습니다. 절벽 면으로 삐져나온 나무뿌리였습니다. 그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나무뿌리에 매달린 채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그 남자는 큰 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그 때,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습니다. 그 즉시 그분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더 깊게 하시려고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네가 진정으로 나를 믿느냐?" "네, 그렇습니다." 그는 열렬하게 응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너를 구해주리라 믿느냐?" "네! 그렇습니다." 겁에 질린 이 사람은 선뜻 대답했습니다. "그럼 무엇이든 내가 이르는 대로 하겠느냐?" "물론 하고말고요!" "그렇다면 그 손을 놓아라!" 만약 여러분이라면 이런 처지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그렇다면 그 손을 놓아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이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보세요! 그 위에 또 다른 분은 안 계신가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절대적으로 믿는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믿는다는 것은 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한두 번 만난 사람을 곧 바로 믿게 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수십 년 함께 한 친구도 위기의 순간에 배신을 하는 일이 있기에 진실로 믿음직한 사람과 함께 살아가며 서로 의지할 수 있다면 정말로 그 사람은 복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에게 참된 목자가 되어]

요한복음서를 만들어 낸 공동체가 예수님이야말로 선한 목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바로 예수님과 함께 꽤 오랜 시간을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요한공동체는 예수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재야의 지도자였던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무엇이라 증언하였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표적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시고, 중풍병자를 낫게 하시고, 오천 명을 먹이셨으며,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나면서부터 눈 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찾아온 니고데모나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에게 참된 진리의 말씀을 전하기도 하셨습니다. 이런 모든 표적과 가르침을 통하여 예수님이야말로 선한 목자이시며 참다운 목자라는 사실을 바로 깨달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은 이런 모든 것에 한 가지를 더 하십니다. 양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선한 목자는 자기의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립니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하는 사람! 바로 이런 이야말로 참된 목자, 선한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5월 마지막 째 주에 장로 권사 임직식을 합니다. 장로와 권사는 바로 우리 생명사랑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목자들이고, 이 목자들은 예수님이 그리하신 것처럼 모든 교우들을 잘 알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선한 목자로서 이렇게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이유는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가 서로 서로 그렇게 사랑하며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더군다나 오늘날은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주인과 종이 있던, 왕과 신하가 있던 그런 사회는 지나갔습니다. 역할의 차이는 있지만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나 서로가 서로에게 목자가 되어줄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주어야 합니다. 참된 목자이자 스승이신 예수께서도 우리를 친구로 대해 주셨듯이 이제 우리는 사랑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참된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도 공동체이고 조직이 있고 제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도 있고 장로도 있고 권사와 집사도 있고, 당회장, 제직회장, 목회운영위원장, 각 부서의 장들과 신도회의 회장들이 있지만, 이들만이 참된 목자, 선한 목자가 되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의 풍성한 생명을 위해서는 모두가 모두에게 선한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며 우리도 서로에게 풍성한 생명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하려면 오랜 시간 서로를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유대와 이스라엘은 양을 많이 키우기 때문에 예수님을 선한 목자로 비유하고, 하나님도 자신을 참된 목자로 부르시지만 어린 시절 농촌에서 자란 저는 성경에 양과 목자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우리 집에서 키우던 소가 생각납니다.

[풍성한 생명과 워낭소리]

2008년에 제작되어 당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고의 다큐멘타리 상을 타고, 2009년 미국 선댄스 영화제 경쟁 부분에 진출해서 호평을 얻었고, 6년간 다양성 영화부분에서 줄곧 1위를 차지한 영화가 있습니다. 보신 분도 계시겠지만 '워낭소리'입니다.

오지 중에 오지인 경북 봉화마을 청량산 자락에는 팔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여덟 살 때 한쪽 다리의 힘줄이 늘어져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지만, 늙은 소가 끌어주는 작은 수레를 타고 움직일 수 있고, 소 덕분에 농사를 지으며 9남매를 키웠습니다. 우직한 한 마리의 소가 한 집안을 먹여 살린 것입니다. 보통 일하는 소는 평균 수명이 15년인데 다큐멘타리의 주인공인 이 소는 30년을 넘도록 일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소의 나이는 무려 마흔 살! 팔순 할아버지처럼 이 소도 할아버지입니다. 할아버지는 이 소와 함께 인생을 살아왔기에 누구보다 더 이 소를 사랑하고 아낍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사료대신 늘 풀을 베어 먹이고, 쇠죽을 끓여 줍니다. 농약이 묻은 풀을 먹이게 될까 두려워 할아버지는 농약도 치지 않고 농사를 짓습니다. 농약 없는 농사는 몇 갑절 힘이 들고 수확도 현저하게 적었지만 할아버지는 고집스럽게 농약 없이 농사를 짓습니다.

할아버지의 이런 마음을 아는 듯, 늙은 소도 열심히 할아버지를 돕습니다. 할아버지와 이 소는 매우 닮아 있습니다. 느린 걸음걸이, 힘겹게 걸어가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고집, 늙은 소의 야윈 엉덩이와 야위고 병든 할아버지의 구부정한 몸뚱이는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한 9남매의 성화와 할머니의 독촉으로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소를 팔려고 우시장으로 향하던 날, 마지막이라고 여물 한 바가지를 더 주었지만 늙은 소는 큰 눈망울만 껌벅이며 여물에 입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큰 눈망울에서 눈물이 떨어집니다. 우시장으로 간 할아버지는 거저주어도 가져가지 않을 소를 500만원 아니면 안 팔겠다고 하면서 연신 담배를 피우며 고집을 부립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할아버지와 소는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온 늙은 소는 추운 겨울 동안 할아버지 따뜻하게 지내라고 지치고 느린 걸음이지만 미련하고 우직하게 나뭇짐을 잔뜩 져서 날랐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늙은 소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한 채 힘겹게 마지막 숨을 내 쉽니다. 할아버지는 워낭이 달린 소의 코뚜레를 모두 풀어줍니다. 그리고 이내 소는 눈을 감게 되고, 할아버지는 마치 사람의 장례를 치러주듯 소를 저 세상으로 보냅니다.

저 또한 어린 시절 소와 함께 자랐고, 우리 집은 가난했기 때문에 남들이 전부 경운기에 트랙터를 구입할 때도 우리 집은 소로 밭도 갈고 논도 갈았습니다. 겨울 내내 외양간에 있던 소는 봄철이 되면 밭을 갈아야 하기 때문에 미리 훈련을 시킵니다. 멍에를 메우고 거기에 작은 수레 비슷하게 만든 것을 연결하고, 그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연습을 시키지요. 그러면 어린 저는 그 수레에 함께 올라타곤 했습니다. 일소를 만들기 위해서 소를 훈련시키려면 밭을 갈 때 뒤에서 쟁기를 잡으면 앞에서 소를 끌어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따라서 소와 함께 참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농기계가 없던 시절 소는 농사에 가장 큰 일꾼이고, 정말 맑고 착한 큰 눈망울을 껌벅거리며 묵묵히 일을 합니다. 사람은 가끔 마음을 주지만 소는 언제나 전부를 바치는 동물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 선한 목자보다도 집에서 키우던 일소가 떠오릅니다. 든든한 어깨, 기대고 싶은 등판, 보드라운 털, 꼬리로 쇠파리를 쫓으며, 한가롭게 앉아 있던 모습, 긁개로 등을 긁어 주면 좋아서 얌전해지고, 묵묵히 힘겨운 온갖 일들을 합니다. 투정도 하지 않고, 가쁜 숨을 내쉬며 꿈벅이던 그 맑고 착한 눈!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집도 그 소 한 마리 덕분에 온 식구가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넘치게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주신 그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목자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가 그렇게 서로를 위해 자신을 내어 줄 때 놀랍게 더 큰 생명으로 부활하는 역설의 진리가 살아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진리를 보았고 알았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 지금 우리 안에 있지 않은 다른 많은 양 떼들도 우리에게로 몰려 올 것입니다. 그래서 한 무리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지도하는 목사가 되기보다 여러분을 섬기는 한 마리의 소가 되고 싶습니다. 교회의 대표이며 어른이며, 영의 아버지라는 말을 듣기보다는 주인 곁에서 주인이 주는 풀을 먹으며, 주인이 끓여주는 죽을 먹으며 묵묵히 주인을 위해 평생을 섬기는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소처럼 평생을 일하신 우리 부모님 덕분에 제가 존재할 수 있었고, 지금 이런 자리에 올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부모는 부모이고 자식은 자식이며, 목사는 목사이고 평신도는 평신도이지만 부모는 자식을 위해 살고, 목사는 평신도를 위해 삽니다. 여러분도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형제와 자매를 위해 사는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 그것이 우리 모두가, 몇 사람이 아닌 모두가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 오늘 우리들을 이 좋은 곳으로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온 식구가 모여 함께 주님의 축복을 누리며 아름다운 자연의 선물을 받으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시고, 우리 마음 깊은 곳, 억울하고 서운했던 모든 속내를 알아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사람 되게 하여 주소서. 서로 사랑하게 하시고, 서로의 풍성한 생명을 위하여 서로 섬기는 사람 되게 하여 주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듯 우리도 깊은 사랑에 젖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여기에 들어가시면 설교 음성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SoulLoveCommunity/UkVO/307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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