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본지 자문위원인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9월 [수유너머R]에서 진행한 요한복음 강해 두 번째 원고입니다. 본 글은 김경재 교수의 숨밭 아카이브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강해에서 김 교수는 요한복음 2장에서의 물이 포도주 되는 기적 사건을 문화신학적 관점에서 분석했습니다.- 편집자주
제2강: 새로움의 생성: 우주(cosmos) VS. 우주생성( cosmogenesis)
:유대교(종교일반)의 새로운 성취로서 예수의 복음
성경본문: 요한 복음서 2장 1-12절, 가나마을에서 포도주 기적설화
[1] 들어가는 말: 복음서 자료에서 '역사적 사실자료'와 '은유적 증언자료'
① 4개의 복음서는 예수의 '언행'(言行, 말씀과 행위)을 서술함으로서 그가 메시야임을 증언하려는 목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편집한 경전이다. 예수의 말씀(비유, 교훈, 논쟁등)이라고 표현되어있는 복음서자료 전체는 '예수의 직접말씀'(예, 마태5장-8장의 산상수훈말씀)과 '예수제자공동체의 증언적 간접말씀'(예, 마태28:18-20,마가16:15-18)으로 구별해야 한다.
② 예수의 행위에 관한 복음서 자료중 특히 '기적설화'는 '실제로 일어난 기적설화'(병자치유, 악귀축출등)와 '은유적 기적설화'(예, 오병이어 설화, 가나의 포도주 기적설화등)를 구별하는 것이 보다 바르게 성서를 이해하는 태도일 수 있다. '은유적 기적설화'로 해석하는 것은 예수의 초자연능력을 부인하기 때문이 아니라, 성서본문이 증언하려는 본래의 뜻을 바르게 붙잡는 길이기 때문이다.
③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이야기는 헬라-로마신화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이야기이다. 구체적으로 풍작과 성장, 술과 활홀경의 신 디오니수스(Dionysus, 일명 Bacchus)는 포도나무를 발견한 자일뿐만 아니라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이야기 되고 있다(Euripides, Bachae 704-7-7). 요한 공동체는 이방의 이런 신화적 이야기를 알고 있을수 있으며, 그런 전설에 익숙한 당대 사람들은 메시야 예수가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을 행한 능력자였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설화자체는 은유적 이야기를 통해서 복음의 본질을 설파하려는 것으로 본다.
[2] 가나마을 혼인잔치집에서 행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설화' 강해
① 요2:1 / <사흘째 되던 날에(on the third day)>
'사흘째 되던 날'이란 가나의 혼인잔치에 예수일횅이 참여하고 일련의 기적사건이 일어났던 시간을 알져주려는 형식을 취한다. 앞에서(요한 1장) 언급한 세례요한의 증언, 예수의 제자선발, 나다나엘의 놀라운 자백등의 사건이 있은뒤, 3일째라는 형식이다.
그러나, 24시간이 3번 흘러간 물리적 시간의 경과를 말하려는 것보다 '상징적 셋째날'이다. 셋이라는 숫자는 수비학(數秘學,numerology)에서는 언제나 완전수, 결정적인 성격, 성취의 시간을 의미한다(예, 정삼각형, 삼원색, 삼위일체와 삼신불, 역사발전 완성단계, 죽음 후 부활). 요한은 가나마을에서 기적사건을 통하여 '결정적 표징'이 드러난 계시적 사건의 시간임을 암시한다.
② 요2:1b-2. /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제자들도 혼례에 초청을 받았더니...>
지리적으로 '가나'라는 마을 이름은 적어도 당시 팔레스타인에 세 개정도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갈릴리의 가나>라고 언급함으로서 분명히 함과 동시에 <갈릴리>라는 지역을 다른 <사마리아>와 <유다>지역과 대비시키는 의도도 있다. 예수의 첫 번째 기적과 영광의 현시는 <갈릴리>로 상징하는 민초들(오클로스)이 사는 곳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저자가 예수의 수많은 기적과 언행보도 자료를 뒤로 놔두고(참요21:25) 혼례식을 기적사건의 배경으로 택한 의도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결혼은 성인 남녀가 사랑으로 맺어져 몸과 맘이 하나가 되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행복하고 축하받을 거룩한 예식'이다. 요한복음서는 세계현실, 인간 실존이 아무리 어둡고 비극적 일이 발생할지라도, 생명현실을 '새로움을 창발시키는 결혼사건'과 같은 새로움의 생성과정이라고 강조하려는 뜻도 있다. 기독교는 생명 대긍정의 종교, 살아가고 있다는 존재함을 장례식의 과정이라고 보지 말고 결혼식의 과정이라고 보자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③ 요2:3-5. /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포도주는 유대인들 결혼예식에서 필수불가결한 물질이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은 혼주댁에서는 있을 수 없는 비극적 사건이다. 이것은 <보시기에 좋다!>고 창조주가 선언하고 축복한 창조세계, 인간역사, 개인실존 상황속에 결정적 결핍, 불완전, 문제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상징한다.
예수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했습니다"라는 말로서 자신의 십자가 죽음사건과 부활사건을 통한 '신의 결정적 새로움과 영광의 현시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말한다.
예수의 어머니는 아들을 믿었고, 당황하는 혼주댁의 낭패와 불안을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긍휼심의 영정'이 그녀를 사로잡았고, 아들 예수는 결정적 계시의 때 이전에 기적의 표징을 행하는 것으로 복음서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바울의 사랑의 찬가(고린도 전서 13장) 한구정을 연상케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Love bears all things, believes all things, hopes all things, endures all things."
④ 요2:6-7./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예식(淨潔禮式)을 따라 두세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체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정결예식과 돌항아리 여섯>은 고도의 상징성을 지닌다. 그것은 곧 <유대교>의 견고함과 동시에 불완전성을 상징한다. 정결예식 이란 유대교 레위기에 나오는 신체정결의 율법이다. 집안에 들고날 때마다, 입구에서 손발을 씻는다. 돌항아리는 일반적인 질그릇 항아리보다 단단한 것, 곧 유대교를 담고있는 종교를 상징한다. 그 안에 들어있는 물은 허드레물 아니면 깨끗하지 못한 빗물을 받아모은 것이다. <돌항아리 여섯>이라는 숫자는 7의 완전수, 성수에 이르지 못하는 숫자로서 불완전함의 은유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러한 물이라도 <폐기가 아니라 변화를 통한 새로운 완성>을 성취하려 왔다고 초대기독교인들은 생각했다. 불완전한 물일지라도 '아구까지 채운 후에' 새로운 변용의 기적이 일어난다.
<돌항아리 6과 아구까지 물을 가득체우는 일>은 사람이 할 일이다(진인사대천명/ 계시는 이성을 파괴하지 않고 온전케 한다).
⑤ 요2:8-9. /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가나의 기적설화는 예수의 요술적 초능력을 알리려는데 목적이 있지 않으므로, 예수가 어떤 절차를 따라 어떤 주문을 외우고 기적을 행하는지를 서술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연회장, 신랑, 귀빈등 혼례식에 참석한 상층부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가 일으키는 기적,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능력, 유대교를 복음으로 완결시키는 비의, 옛사람이 새사람으로 변화되는 '비의'(秘義)를 알지못한다고 특별히 증언한다.
기득권에 만족한 사람들은 그들의 가진것, 소유한 지식과 종교와 신념으로 인하여 "눈이 가려저서" 참으로 보아야 할 "빛자체이신 로고스가 육을 입고 그들 가운데 거하심에도 불구하고"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뜬 장님'이라고 보았다. 역사의 변화, 시시대의 도래, 일상 속에있는 영원의 현존은 도리혀 바닥사람들, 마음이 가난한 오클로스만이 본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들 것이다/ 마음이 정결한 사람이 복있다. 저희가 하나님을 볼것이다"(마5:2,8)라고 산산수훈의 팔복에서 선언한다.
⑥ 요2:9b-10.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유대사회 당시 일반풍속을 말한다. 잔치의 시작에는 좋은 포도주를 내고, 래빈객이 취하면 양질의 포도주 여부를 분별능력이 없어질 때 질낮은 포도주를 내놓는 풍습이나 술장사 일반사례이다. 연회장은 래빈이 아니다. 결혼식 잔치를 성공적으로 끝까지 완결시키고 진행시킬 책임이 있는 자이다. 이 기적설화에서 '연회장'은 누구를 상징할까? 유대인의 제사장,랍비, 바리세인, 산해드린의 지도자중 일부일 수 있다. 그들은 유대교잔치 말기에 출현한 예수의 메시야운동과 그의 하나님나라 설법속에서, 유대교에서 맛보지 못한 질높은 새로움을 간취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났는지를 알지 못하는 '옛시대 사람, 혈육에 속한 지식인'이다.
⑦ 요2:11.<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
다시한번, 갈릴리 가나라는 시골땅이 강조돠고, 첫 기적이라는 것과, 그 표적을 통해서 <말씀 곧 로고스의 육화>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참사람 인간 예수 안에서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 로고스의 화육체 예수 생명에서 뿜어져나오는 <생명과 진리의 빛>의 광체를 영안을 떠서 보라고 증언하는 것이다.
[3] 가나의 혼례식에서 첫 기적설화가 말하려는 신학적 의미
1. 산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은 창조적으로 변화하고 새로움이 창발(創發) 할수 있는 열려진 실재라는 것을 증언한다. 우주자연, 역사 , 인간이 모두 열려진 존재요 ,<되어가는 존재>(Werden Sein, Becoming being)이다. 고정되고 완결된 것은 없다.
2. 그리스도교는 세계관에 있어서 비관주의적-염세적 종교인가 아니면 낙관주의적-긍정적 종교인가 묻는다면 단연코 후자에 손을 드는 종교이다. 그러나, 그 낙관적-긍정적 세계관이나 인간관은 경박하거나 소박한 유토피아니즘과 다른 것이다. 삶에는 언제나 반드시 있어야할 것이 결여된 상태 "포도주가 부족한 상태"라고 본다. 이러한 인간실종의 근원적 모습을 일컬어 불교는 "인간은 무명과 고해"속에 있다고 말하고, 기독교는 '원죄 혹은 죄아래 있다'라고 종교적 언어로 표현한다.
3. 현대 민중신학은 현실세계의 실상을 환하게 꿰뚫어보는 통찰력은 지식사회학이 말하는 "사유의 존재제약성"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은 당파성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오클로스는 그 제약조건이 아주 약하거나 없기 때문에 현실파악을 가장 공정하고 진실되게 파악하는 능력을 지닐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플로레타리아트의 당파성과 구별하여 <오클로스(민중)의 인식론적 특권>이라고 부른다. 가나의 혼례집에서 하인들만 무슨일이 어떤 기적이 누구에 의해서 일어나는 가를 알았다.
4. 역사적 종교로서의 기독교와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구별해야 한다. 요한 복음에 의하면 유대교, 기독교, 종교들은 '예수안에 육화된 로고스의 빛과 진리'에 의해 조명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