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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창조하시는 하나님

장윤재 목사 (이화대학교회)

- 이사야 65:17-25, 에베소서 4:17-24, 마가복음 19:26-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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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Jesu Juva> 부족한 사람이 교목실장과 대학교회 목회담당으로 발령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임기 첫날 아침 이화여대의 팔복동산에 올라 기도한 것입니다. 중앙도서관 뒤쪽, 기숙사로 오르는 가파른 길 한 켠에 팻말을 눈 여겨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지만, 숲으로 둘러 싸여 언제나 산새들의 지저귐이 있는 이곳은 이화의 총장님들이 즐겨 찾아 하나님께 기도하던 곳입니다. 거기 올라 기도할 때 최일환 님의 시 "아침 산길"이 생각났습니다.

이른 아침 숲 우거진 / 뒷동산에 올라가다가 / 바위에 앉는다 / 약수보다 시원한 아침 공기 / 공짜로 마시는 그 은혜여 / 한눈으로 들어온 시가지는 / 손에 든 신문 기사처럼 / 또 시끄러워진다만 / 아침 이슬 구르듯 / 산새들의 노래 / 맘놓고 듣는 감사함이여 / 별들이 밤새 속삭이다가 / 떠난 자리 바위 틈에 / 풀꽃들이 숨은 듯 피고 / 풀꽃처럼 이름 없이 / 나 또한 외로워도 / 아 - 온 세상 내 것 같은 / 풍요함이여 / 나를 잘 알아주시는 / 그분 지금 나를 지켜주심이여 / 이래서 오늘 하루도 / 즐거울 수 있는 나의 마음속 / 믿음의 꽃 / 아침이면 뒷동산에서 / 새롭게 새롭게 피어난다.

이른 아침 뒷동산에 오른 시인은 밤새 별들이 속삭이다 떠난 자리에 산새들이 노래하고 풀꽃들이 피어나는 생명의 향연이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느낄 수 없는 풍요로움을 만끽합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외로운 자신을 잘 알아주시고 또 지켜주시는 그분 안에서 자신의 생명이 꽃처럼 새롭게 피어남을 깨닫습니다. 시인은 지금 만물을 지으시고 날마다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항상 창조하시는 하나님

오늘 말씀의 제목은 "창조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Creator)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과거에 일어난 단 한 번의 행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태초의 창조'입니다. '원 창조'(creatio originalis)라고도 합니다. 이 창조는 세계의 생성(生成)을 이미 끝난 상태로 표상합니다. 따라서 낙원, 원상태, 무죄, 에덴동산 등으로 표상합니다. 이러한 창조 이해는 과거지향적입니다. 하지만 성서에는 모두 세 가지의 창조가 나타납니다. 말씀드린 '태초의 창조,' 혹은 '원 창조' 외에도 '계속되는 창조'(creatio continua)와 '새 창조'(creatio nova), 즉, 창조의 완성이 나타납니다. 이전에는 나중 두 가지 차원들이 앞의 첫 번째 차원 안에 잠식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서의 지혜문서와 사도 바울, 그리고 성 이레네우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거쳐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창조'와 '새 창조'의 차원이 꾸준히 강조되고 있습니다.

'원 창조'란 태초의 창조로서 시간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태초의 창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전개됩니다. 창조는 '기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롭게 계속되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창조는 단지 '태초'에만 아니라 지금도, 오늘도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빅뱅의 우주는 계속 펼쳐지고 있으며 이 점에서 모든 날은 오늘도 여전히 '창조의 첫 새벽'입니다. 하나님의 '원 창조'(creatio originalis)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creatio continua) 미래에 완성될 것(creatio nova)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여전히 '하늘과 땅'을 창조하고 계시다는 것이 성서의 신앙입니다. 모든 창조가 하나님 안에서 미래의 완성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 성서의 근본적인 믿음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창조를 단 한 번의 과거 행위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인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이는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제도, 지금도, 그리고 언제나 새로운 창조가 가능합니다. 창조는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열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창조하시는 창조주'(semper Creator)이십니다. 사실 이 세상에 이것보다 더 기쁘고 희망을 주는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새 사람을 창조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43장 18-19a절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지난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이사야 65장 17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길이길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여기에 쓰인 '창조하다'는 동사는 히브리어로 '바라'(barah)인데, 이는 오직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만 쓰인 특수동사입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새 일, 새 창조를 힘 있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2-23절입니다: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방식에 얽매여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옛사람(the old self)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the new self)을 입으시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새 사람'은 하나님의 의로움과 거룩함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인간을 말합니다.

오염된 호수는 약간의 맑은 물을 섞는다고 정화되지 않습니다. 과거 안산시에 있는 시화호가 다 썩어 들어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별 수를 다 써 보아도 한 번 오염된 물은 좀처럼 맑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최후로 내린 결단은 시화호 갑문을 열어버린 것이었습니다. 큰 바닷물 속으로 섞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근 바다가 오염되는 문제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큰 바다의 힘에 맡기는 것만이, 큰 바다의 자정능력에 의지하는 것만이, 그 썩은 물을 정화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날의 생활방식에 얽매여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아가 썩어 없어질 옛 사람"도 약간의 선행과 약간의 수양과 약간의 참선으로 정화되지 않습니다. 큰 바다와 새 물이 필요합니다. 썩은 내 나는 구석구석을 씻어 내리고 또 씻어 내려도 결코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생명수로 갈아엎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고 있는 하나님이 바로 이 큰 바다와 같은 분이라 믿습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이렇게 확신에 찬 증언을 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너는 알지 못하느냐? 너는 듣지 못하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피곤한 사람에게는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는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를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이사야 40:28-31). 바로 이 하나님을 믿기에 사도 바울도 우리에게 이렇게 확신에 찬 증언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 갑니다"(고후 4:16).

이탈리아의 나폴리에 음악을 몹시 좋아하는 소년이 살았습니다. 그의 희망은 가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공장에서 일하며 어렵게 학교를 다녔는데, 어느 날 음악시간에 가수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선생님께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네 목소리는 덧문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이 시끄러운 소리니까 성악가가 될 꿈은 아예 포기하라"고 말합니다. 듣고 있던 친구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년의 어머니만은 아들의 꿈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을 일찍 잃고 농사지으며 살던 이 어머니는 얼마나 가난한지 맨발로 다니는 과부로 동네에서 유명했는데 아들을 늘 격려하며 있는 돈을 다 모아 개인 레슨비를 댔습니다. 그런데 이 가난하고 착한 농부 어머니가 아들에게 늘 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God is able)였습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오늘 읽은 신약성서 본문(마가 10:25-26)에서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매우 놀라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수근 거릴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바로 이 신앙을 가진 그 엄마가 아들에게 늘 한 말이 바로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였던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이 신앙은 계속되었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세계적인 테너 가수가 바로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였습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너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새롭게 창조하신다. 그러므로 너도 새롭게 될 수 있다! 하나님은 길을 막는 분이 아니라 끊어진 길을 이어주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문이 없다고, 길이 없다고 주저앉지 말아라! - 아마 이것이 카루소 어머니의 믿음이고 가르침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시는 분이라는 신앙은 우리에게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돌아가신 장영희 선생의 예화가 생각납니다. 서강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맑고 아름다운 글로 우리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전해준, 지금은 고인이 된 그분의 유학생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1984년에 뉴욕주립대학에서 6년 동안의 유학생활 끝에 박사학위논문을 거의 마무리 짓고 심사만 남겨놓은 상태로 행복한 귀국만 꿈꾸고 있었습니다. 워낙 엄격하고 까다로운 지도교수 밑에 있었던 데다가, 자신이 택한 논문의 주제도 너무 어려워서 2년이나 걸려 그야말로 각고의 노력 끝에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LA에 살던 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차제에 기숙사 방을 깨끗이 비우고 옷 몇 벌, 책 몇 십 권, 그리고 가장 소중한 논문 원고를 들고 LA로 갔습니다. 짐을 줄인다고 그 동안 책상 위에 높이 쌓여 있던 논문의 초고들을 과감히 다 버리고, 최종본만 가지고 떠났습니다. 그것으로 마지막 수정을 한 뒤에 심사날짜에 맞춰 돌아올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비행장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의 손에 이끌려 그 친구 집에서 10분만 머물러 차 한 잔 마신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 짧은 사이 도둑이 차 뒤 트렁크를 열고 짐을 모두 훔쳐간 것입니다. 그 안에는 그의 6년 동안의 땀과 눈물이 모아져있는 논문도 들어있었습니다. 장 교수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습니다.

뉴욕주 올바니로 돌아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전화도 받지 않고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꼬박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이미 올바니로 오는 기차 속에서 울다 울다 콘택트렌즈를 읽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한참 동안이나 방문을 두드리다가 문 밑으로 쪽지 하나 밀어 넣고 떠났습니다. 눈에 익은 필체였습니다. 한국에서 아버지가 왔다간 것입니다. 무슨 위로라도 될까 반갑게 집어본 아버지의 쪽지에는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오늘 소식 들었다. 사람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데 그만한 일은 아무 것도 아니다. 다시 시작해라. 이미 한번 쓴 논문이니 다시 쓰면 더 잘 쓸 것이다."

2년간의 피나는 노력 끝에 완성한 논문을 잃어버린 딸에게 주는 글이라고 믿기에는 참 무정한 것이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그 일이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투가 아닙니까?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참으로 신기하게도, 장영희 선생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어떤 희망 같은 게 솟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 사람이 죽고도 사는데... 이까짓 논문쯤이야!'

장영희 선생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교수를 찾아갔습니다. 이미 소식을 들은 지도교수는 울다가 잃어버린 콘택트렌즈를 다시 사라고 100불을 주더랍니다. 그리고 과에서 강사 자리를 준비해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장 교수는 논문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논문 맨 앞 감사의 글(acknowledgement)에 이렇게 썼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께 이 논문을 바칩니다. 그리고 내 첫 논문을 훔쳐가서 나에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 - 다시 시작하는 법 -을 가르쳐준 도둑(님)에게도 감사합니다." 인류 역사상 도둑님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헌정된 최초의 박사학위 논문입니다.

하나님은 길을 막는 분이 아니라 끊어진 길을 이어주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문을 닫는 분이 아니라 새 문을 열어주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새로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창조 안에서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수 있습니다.

새 하늘 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

로마의 박해가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목을 죄어오던 시절, 밧모섬에 유배된 요한은 묵시 속에서 새로운 비전을 보았습니다.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요한계시록 21:1-4).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인간의 교만 가운데 가장 큰 교만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최고다, 내가 제일이다' 하는 것보다 더 큰 교만이 있다면 어떤 것이겠습니까? '나는 새로워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대로 완벽하다'는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교만 중의 교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교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 더 여쭙겠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불신앙 가운데 가장 큰 불신앙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하나님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불신앙은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새로워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가망이 없다'는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이 태초에 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시고, 혼돈에서 질서를 불러내시며, 오늘도 날마다 세상에 생명을 부여하시고,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가장 큰 불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교만과 이런 불신앙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성서의 기자들이 소리 높여 외칩니다.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길이길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는 알지 못하느냐? 듣지 못하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피곤한 사람에게는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다 없어졌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고후 5:17).

오늘도 나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아침 '나는 더 이상 새로워질 필요가 없다'는 교만을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나는 새로워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불신앙도 만물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옛 사람과 결연하십시오. 하나님은 창조자입니다. 과거의 한 번으로 끝난 창조, 닫힌 창조, 완료된 창조가 아니라 지금도 온 세상을 지탱하시고 친히 돌보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분입니다. 혹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의 자아가 시화호처럼 병들었습니까? 맑게 정화할 새 물이 필요합니까? 내 영혼과 삶 전체를 깨끗하게 갈아엎을 거대한 바다가 필요합니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갈급합니까? 그렇다면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그 분 안에 거하십시오. 만물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에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그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여 새 사람이 되십시오. 새 삶과 가정을 가꾸십시오. 새 공동체를 만드십시오. 새로운 역사, 새로운 교회, 새로운 이화, 새로운 민족을 지으십시오.

요한계시록 21장의 말씀입니다: "그 때에 보좌에 앉으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기록하여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 ... 나는 알파와 오메가다, 처음과 마지막이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내가 생명수 샘물을 거저 마시게 하겠다. 이기는 사람은 이것들을 상속받을 것이고,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계 21:5-7). 아멘. (2017.7.16.) <Soli Deo Gloria>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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