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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시 산다면"

장윤재 목사(이화대학교회)

- 역대상 16:30-34, 데살로니가전서 5:14-18, 마태복음 6: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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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미국의 한 사회학자가 만 95세 이상 된 고령자 50명을 대상으로 이런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의 인생을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나이가 95세 이상이라면 적어도 시간적으로, 물리적으로는 인생을 충분히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들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공통적인 답이 나왔습니다. 첫째가 "risk more," 그러니까 좀 더 위험을 무릅쓰며 인생을 과감히 도전하며 살겠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reflect more," 인생을 좀 더 성찰하며 살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thank more," 삶의 순간순간에서 더 작은 것들에게 고마워하며 살겠다는 말입니다. 참 재미있는 것은 이 분들의 세 가지 답이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라"와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risk more."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인생을 산다면 좀 더 과감하게 도전하며 살겠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심리학자들이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살다가 실수한 일들에서는 '잠시' 아픔을 느끼지만, 아예 실행에 옮기지도 못한 일로부터는 '평생'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가끔 산책을 하다 '아, 내가 그땐 그랬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이런 말을 했지요. "20년 후 당신은 실패한 일보다도 시도조차 하지 못한 일 때문에 더욱 크게 후회할 것이다."

오늘 성경말씀에서 바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이 말은 바보 같이 하루 종일 웃고 살라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이 말 안에는 내게 어떤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기쁘게, 즉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과감하게 대처하라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로 "항상 기뻐하라"는 "risk more"와 같은 뜻의 말입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너무 지나치게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빵의 누룩입니다. 빵을 못 먹게 되니까요. 둘째는 소금입니다. 너무 짜서 버리게 되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망설임'이라고 합니다. 지나치게 망설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Risk more," 즉, 후회 없는 멋진 인생을 살려면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항상 기쁜 마음으로," 과감히 도전하며, 그리고 결심한 것을 실천에 옮기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서에서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한 것'에 대해서는 죄라고 생각하면서도 '하라고 한 것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단지 무언가를 금지시키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적극적인 신앙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정의가 강물처럼, 공의가 하수처럼 흐르게 하라"(아모스 5:24)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험을 무릅쓰고' 실천하는 신앙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위험을 무릅쓰고' 실천하는 신앙입니다. 사실 신앙 자체가 '위험을 무릅쓰는 일'입니다. 초대교회는 힘과 폭력에 기초한 Pax Romana, 즉, '로마의 평화'가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평화, 즉, Pax Christi가 진정한 평화라고 외치다 박해를 당했습니다. 신앙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로마서 8:24-25). 신앙은 참으로 '위험을 무릅쓰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한 말의 의미였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그 말은 내게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어떤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여 과감하게 대처하라는 뜻입니다.

둘째, "reflect more." 즉, 인생을 좀 더 깊이 성찰하며 살겠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장 근원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늘 기억하며 살겠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 현대인들은 너무 바쁩니다. 공부하고, 아르바이트하고, 스펙 쌓고, 친구들 만나고, 정신없이 앞으로, 앞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다보면 도대체 왜 사는지, 그리고 한 번뿐인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언젠가 인터넷에 '나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라는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 높은 빌딩과 더 넓은 고속도로를 가지고 있지만, 성질은 더 급해지고 시야는 더 좁아졌습니다. 돈은 더 쓰지만 즐거움은 줄었고, 집은 커졌지만 식구는 줄어들었습니다. 일은 더 대충 대충 넘겨도 시간은 늘 모자라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줄어들었습니다. 약은 더 먹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습니다.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줄어들었습니다... 달에도 갔다 왔지만 이웃집에 가서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습니다. 외계는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버렸습니다. 수입은 늘었지만 사기는 떨어졌고, 자유는 늘었지만 활기는 줄었으며, 음식은 많지만 영양가는 적어졌습니다. 호사스런 결혼식이 많지만 더 비싼 대가를 치루는 이혼도 늘었습니다. 집은 훌륭해졌지만 더 많은 가정이 깨지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 당대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우리에게 잠시 멈추어 보라고 권하는 듯한 글입니다. 사실 '잠시 멈추어 설줄 아는 힘'을 잃어버린 것이 현대문명의 위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기도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된다." 히브리(구약)성서에서 기도라는 말은 '히트파엘'(동사 '팔랄'에서 파생한 재귀형)인데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는 행위를 말하며 그 원뜻은 '맑은 수면 위에 얼굴을 비추어 보다'에서 나왔습니다. 나 자신을 하나님이라는 절대자의 거울에 비추어 보는 행위가 바로 기도입니다. 때문에 기도는 무엇보다 먼저 침묵입니다. 내 입을 닫고 먼저 하나님 말씀하시도록 시간을 내어드리는 것이 기도의 첫 번째입니다.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이 말은 하루 24시간 입술을 움직여 중얼중얼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항상 기도하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하라는 뜻입니다. 항상 하나님이라는 절대자, 절대 사랑, 절대 긍정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reflect more," 즉, 매일을 살면서 한 번뿐인 인생에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저는 유학생활을 하면서 10여 년 가까이 살았던 미국의 뉴욕시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뉴욕은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시작되는 창조와 변화의 도시입니다. 하루 2백 개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전 세계 모든 인종들이 어울려 사는 다양성의 도시입니다. 하늘을 찌르는 빌딩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적지들... 뉴욕은 매력 넘치고 인간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런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이 엄청난 규모의 도시를 지탱하기 위해 오래 전 거대한 공사가 추진되었다는 것입니다. '20세기 토목공사의 경이적 사건'이라 불린 이 공사는 뉴욕시로부터 북쪽으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델라웨어(Delaware) 강으로부터 땅 속 200미터 속에 지금 5미터짜리 거대한 송수관을 뉴욕시까지 연결하는 공사였습니다. 이 송수관의 이름이 '델라웨어 수로'입니다. 단 하루라도 이 송수관의 기능이 멈추면 뉴욕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이 됩니다. 아무리 화려한 빌딩이 올라가도, 아무리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뉴욕의 밤을 화려하게 장식해도, 단 하루만 물이 끊기면 뉴욕은 새들도 떠나고 마는 황량한 사막이 되는 것입니다.

경애하는 여러분, 우리들 인생이 이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맨해튼의 높은 빌딩들처럼 우리의 인생을 화려하고 웅장하게 설계한다 하더라도, 또 누가복음에 나오는 저 어리석은 부자처럼 제 아무리 많은 곡식과 물건들을 곳간에 쌓아놓고 "내 영혼아 이제 마음을 놓고 편히 먹고 마시며 즐기자" 할지라도, 우리 생명에 가장 근원적인 것이 날마다 공급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사막의 신기루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며,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요한 4:14)고 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의 다른 구절에서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그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7-38)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이란 '델라웨어 수로'와 같은 것입니다. 믿음이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에게 물길을 대어 거기로부터 날마다 차고 신선한, 영생의 생수를 공급받는 일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나의 존재의 이유와 존재의 근원 그리고 삶의 소명이 무엇인지 더욱 깊이 성찰하십시오. 무엇이 진정한 성공인지 성찰하십시오.

랄프 왈도 에머슨의 글입니다. 제목은 "무엇이 성공인가"입니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 건강한 아이를 낳든 /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사실 가을은 기도하기 더욱 좋은 계절입니다.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가운데 이런 구절이 생각납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수확의 계절, 하루의 수고를 마치고 잠자리에 드시기 전에 꼭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저녁식사 후 가까운 곳에 나아가 걸어보십시오. 엊그제 <생명사랑 밤길걷기> 행사로 하늘이 뻥 뚫린 곳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걸으니 참 좋았습니다. 고요히 자신의 숨소리를 느끼며 침묵 속에서 걸어보십시오. 하루에 잠시라도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셋째, "thank more." 그러니까 인생을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좀 더 감사하며 살겠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사도 바울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아담 스미스는 1776년에 발표한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하는 것은 정육업자나 양조업자나 제빵업자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이익추구 때문이다. 모든 개인은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추구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던 사회적 이익에 기여하게 된다." 바로 서구 경제학을 지배한 근간논리인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관한 유명한 구절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많이 읽으신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책에 나오는 이런 내용은 우리들에게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어느 날 엄마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똑똑한 어린 딸이 부엌에 와서 엄마에게 자기가 쓴 글을 불쑥 내밀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잔디 깎은 값 5불, 내 방 청소한 값 1불, 엄마 심부름 다녀온 값 50센트, 동생 봐준 값 25센트, 쓰레기 내다 버린 값 1불, 숙제 잘한 값 5불, 마당 청소한 값 2불, 도합 14불 75센트를 청구함." 엄마는 잔뜩 기대에 차서 바라보는 딸의 얼굴을 한동안 쳐다보았습니다. 이윽고 엄마는 연필을 가져와 딸이 쓴 종이 뒷면에 이렇게 적습니다. "너를 내 뱃속에 열 달 동안 데리고 다닌 값 무료, 네가 아플 때 밤을 세워가며 간호한 값 무료, 장난감, 음식, 옷, 그리고 네 코 풀어준 것도 무료, 이 모든 것 말고도 너에 대한 내 사랑 무료, 전부 무료...." 딸은 엄마가 쓴 글을 다 읽고 나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에게 말합니다.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는 연필을 들어 큰 글씨로 자신의 청구서 밑에 이렇게 적습니다. "All paid! 모두 지불되었음!" M. 아담스라는 사람의 글입니다. 그는 여기에서 화폐경제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화폐가치로 환산될 수 있는 것들에만 감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명절이나 생일 때도 직접 만든 작은 선물보다도 대개 현금이나 상품권을 더 선호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것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너무 귀해서 아예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들을 영어에서는 'price-less'라고 하지요. 즉, 아예 '값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이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저 햇빛이 바로 'price-less'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이처럼 이 자리에 앉아 있기까지 모든 것을 무료로 베풀어준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또한 결점 투성이인 우리들을 인내와 격려로 지켜보아주고 있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사랑이 바로 가격표를 붙일 수 없는 'price-less'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이 생존할 수 있는 물과 바람과 공기를 주시며, 또 영원한 생명의 길에 이르도록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이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존재 뒤에는 이와 같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손에 빚진 자들입니다.

어느 시인의 칼럼 한 부분을 소개 합니다. 제목은 "우리 집 보물창고, 론드리"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외국유학'이 부러움의 대상일지 몰라도 내 경우... 눈물의 세월이었다. 금쪽같은 달러를 한 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몇 년 동안 쓸 비누와 샴푸, 라면, 고추장, 된장을 잔뜩 싸 가지고 유학생인 남편을 따라 태평양을 건너갔으나 막상 미국 땅에 도착해보니 없는 것 천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기숙사 아파트 1층에 위치한 론드리(동전 빨래방)에 밀린 빨래를 잔뜩 들고 내려갔더니 입구 안쪽 책상 위에 거짓말처럼 나한테 필요한 살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접시 몇 개, 냄비, 샤워커튼, 담요, 빗자루... 그 책상 위에 올려놓은 물건들은 누구나 필요한 사람이 가져다 쓰라는 뜻이었다. 나는 너무나 신이 나서 여러 개를 안아들고 3층에 위치한 우리 집으로 올라왔다.... 그 후에도 그런 행운은 이따금 계속됐다.... 어른들에게 필요한 물건 외에도 어린이 옷, 동화책, 장난감들도 어쩌다 하나씩 론드리에 등장했다.... 우리 집 여섯 살 된 아들은 '엄마, 론드리는 우리 집 보물창고야!' 하면서 물건을 가져 올 때마다 뛸 듯이 좋아했다.... 가난하고 힘들기 마련인 유학생활에서 훈훈하고 넉넉한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해준 론드리, 그 론드리를 만난 것이야말로 타국생활 내내 '생활 속의 행운'이었다. 그런데 실은 그 행운도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헌 물건들을 깨끗이 정리해 내다 놓은, '준비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때문에 내가 얻은 행운은 실상 누군가의 사랑의 결정체임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다. 유학생활 일 년이 넘어가면서 더 이상 우리 집에 필요한 것들이 없을 정도가 될 즈음, 거꾸로 이번에는 내가 누군가에게 행운을 줄 차례가 됐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나는 가난한 다른 학생에게 행운을 주는, 행복한 익명의 사람이 되어 어느 날 새벽, 처음으로 예쁜 머그잔들과 접시 몇 개를 살그머니 론드리에 가져다 놓았다."

경애하는 여러분, 이 가을 이제 우리도 우리가 받은 '행운'과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보이지 않는 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보면 어떨까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이었습니까?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창세기 12:2, 새번역)이었습니다. 단순한 복의 수혜자가 되리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복을 많이 받는 게 복인 줄 압니다. 하지만 가장 큰 복은 나로 말미암아, 우리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기 12:3, 새번역)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가장 큰 복, 그러니까 복중의 복은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우리로 말미암아 세상이 복을 받은 '복의 근원,'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보면 안 되겠습니까.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가을입니다. 결실의 계절입니다. 오늘 하루도, 이번 한 주도 그리고 남은 인생의 시간 동안 좀 더 과감하게, 좀 더 깊이 성찰하면서, 그리고 좀 더 감사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근원적인 것이 무엇인지 더욱 깊이 성찰하며 사십시오. 화려한 계획과 성공을 꿈꾸기 전에 먼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 믿음의 물줄기, 나의 수로를 든든히 대십시오. 그리고 어떤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십시오. Risk more, reflect more, thank more.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2017.9.10.)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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