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기독교 신앙으로 가슴앓이를 해본 적이 없던가? 예수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교회를 다닐수록 더 마음이 답답하고 불편한 적이 없던가?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때때로 사회보다 더 부족한 윤리관과 시대정신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날 한국 교회는 문자 그대로 '위기'다. 미성년자를 성추행하는 청소년사역 목사가 있는가 하면, 교인들을 상대로 보험사기를 치고 달아난 원로목사도 있다. 몸집은 커져 비대하지만 기독교 정신은 도리어 퇴보하여 세속적인 사상에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기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약해졌다. 오피니언 리더들을 중심으로 무신론, 불가지론, 나아가 반기독교 철학이 팽배하여 기독교의 근본 가치를 회의하는 형국이며, 자랑스럽게 신앙을 고백하던 이들마저 공개적으로 기독교인임을 밝히기를 꺼리는 상황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만들어진 신』을 쓴 리처드 도킨스나 『신은 위대하지 않다』를 쓴 크리스토퍼 히친스 같은 신 무신론자들(New Atheists)뿐만 아니라, 예수를 소실점에 갖다놓은 『이성이 이끄는 삶』의 저자 로버트 프라이스나 성서사본의 오류를 들춰낸 『예수 왜곡의 역사』,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의 저자 바트 어만 같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도전도 거세다.
20세기의 C. S. 루이스라 불리는 이 시대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 라비 재커라이어스는 이러한 교회의 현실과 신앙 때문에 아파하는 젊은이들에게 묻는다: "진실로 기독교가 당신을 실망시켰는가? 생각해보라, 당신을 실망시킨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 자체인가, 아니면 그의 이름을 걸고 있는 교회인가?"
그는 자신의 최근 저서 『기독교가 당신을 실망시켰다면』에서 이 근원적인 질문들을 하나하나 검토해나간다. 기독교도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예수는 누구인가? 기독교는 우리 인생과 이 세상에 관해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예수의 복음은 왜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한가? 기독교가 우리를 실망시켰다고 느끼게 만드는 요소들은 무엇인가? 그런 실망에 좌절한 영혼을 구하려면 교회는 어떤 점을 고치고 무엇을 시도해야 하는가? 성도는 응답 받지 못한 기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진정한 의미의 '응답'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재커라이어스는 정연한 논리와 독특한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기독교의 사상과 복음의 유효기간을 다시 점검하는 답변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신은 애당초 없으며, 세상은 무질서하고, 확고한 진리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야말로 근거 없는 주장의 터 위에 서 있다고 일갈한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진리 역시 확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당한 판단을 가능하게 해주는 단 하나의 입장은 반초월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오로지 도덕적이고 인격적이신 창조주, 즉, 하나님에 의해서만 주어진다"고 주장한다.
기독교 신앙에 의문을 품는 그대에게
"오늘날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의심하며 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복음주의의 울타리'를 떠나 다른 무언가를 좇고 있는 걸까? 무엇이 문제인가? 기독교의 메시지?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 혹은 메시지를 듣는 사람? 혹은 이 셋 모두의 문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자문해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닌가? 왜 하나님이 교육이나 경험,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믿음을 지키기 어렵게 만드셨다고 느끼는 걸까? 신앙에 적대적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순수하게 질문을 던지는 많은 사람들도 이런 회의를 느낀다. 이 책은 기독교 신앙 안팎에 있는 두 부류의 사람들 모두에게 답을 주려는 시도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거부하거나 그를 외면한 사람이 실제로 삶을 이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외면하지 말라!
"정치적 이론들은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국가와 제국들도 흥망성쇠를 겪는다. 문명은 흥했다가 기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는 자신을 이 땅의 왕으로 만들려는 모든 노력을 거부하셨다. 그가 원하셨던 궁극의 충성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우주의 마지막 싸움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의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지속되고 일관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진실은 먼저 사람의 마음에, 그런 다음 사회에 뿌리를 내린다.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수많은 철학과 사이비종교의 환상을 위해 공허함으로 나가는 문을 열어주는 짓이다. 그것은 우리가 과거에서 도망치도록 도와줄지는 모르지만 사실은 부조리한 미래의 품속으로 떠미는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과 초월적 관계로 진입하라! 삶은 마구잡이 짬뽕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들린 정교한 해도(海圖)!
"삶의 모든 것이 결국 마구잡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그런 판단을 하는 내 생각조차 마구잡이라고 깎아내리는 짓이다. 타당한 판단을 가능하게 해주는 단 하나의 입장은 반초월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오로지 도덕적이고 인격적이신 창조주, 즉, 하나님에 의해서만 주어진다. 우리의 이름,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모든 관계, 우리의 숙명은 모두 이 출발점에 달려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기독교는 각 개인을 초월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로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과 개인이 맺는 관계의 특성을 변화시키는 일 없이 그 개인에게 그 초월성을 슬쩍 보여준다. 심지어 아이들을 세속의 부모와 연관시키는 것도 그런 식이 아니던가? 하물며 하나님과의 관계는 오죽하겠는가?"
복음은 신이 인간에게 내미는 초청장이다!
"아버지 하나님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때가 있다. 또 호세아가 아내 고멜을 위해 그랬듯이 남편이 실제로 매음굴을 찾아가 아내를 되사오기 위해 줄을 서는 때도 있다. 왜냐하면 복음은 심문(審問)에 나오라는 소환장이 아니라 관계를 누리라는 초대장이기 때문이다."
글/ 에센티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