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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과 베드로의 눈맞춤

장정은 교수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누가복음 22장 54-62절

장정은
(Photo : ⓒ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장정은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1989년 미국의 심리학자 캘러먼과 루이스는 낭만적인 실험을 했습니다. 생면부지의 남녀 48명을 모집해서 한 그룹에게는 특별한 지시 없이 이야기하게 했고, 또 다른 한 그룹은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게 했습니다. 2분 후, 특별한 지시가 없었던 그룹에 비해 상대의 눈을 바라보았던 그룹은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의 눈이 참 예쁘더군요." "눈을 마주치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설레였어요." 이렇듯 눈맞춤은 어두운 마음을 밝혀주고 마음을 설레이게 합니다.

미국의 시인인 랄프 왈드 에머슨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의 눈은 혀만큼이나 많은 말을 한다. 게다가 눈으로 하는 말은 사전 없이도 전 세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사람들 사이에 눈맞춤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닐 때가 많습니다. 짧은 순간의 눈맞춤은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내포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눈맞춤은 오늘날 교육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과거에는 어떻게 이론적인 지식을 잘 전달하고 가르칠 것인지 그 교수 방법에 주로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 동안 특별히 강조되지 않았지만, 피교육자에게 대단히 큰 영향을 끼치는 무의식적인 요소들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교사와 학생의 눈맞춤입니다. 학생을 깨닫게 하고 변화시키는 데 있어, 많은 말을 하기보다 한 번의 눈맞춤이 중요할 수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눈맞춤이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에는 다른 복음서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병사들에게 잡혀 대제사장의 집에 끌려가셨던 예수님과 그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있던 베드로와의 눈맞춤의 장면을 61절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신 예수님은 병사들에게 이끌려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미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상태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나마 멀찍이서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 그 대제사장의 집뜰을 배회하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피려 했습니다. 그 때 대제사장의 한 여종이 베드로를 알아보고 묻습니다. "당신도 그와 함께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베드로는 "나는 그를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신도 잡혀갈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문지키는 한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세 번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그 순간 예수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과 베드로는 서로 눈을 마주치게 됩니다. 아마 그 때의 예수님과의 눈맞춤은 베드로에게 평생 잊지 못할 순간으로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던 예수님은 그 눈맞춤을 통해 베드로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던 것일까요? 예수님을 저주하고 부인하고 있던 베드로는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요? 그 짧은 순간 일어났던 예수님과 베드로의 눈맞춤 속에는 어떤 대화들이 오고 갔던 것일까요? 오늘 이 시간 본문 속으로 들어가 그 눈맞춤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그 눈맞춤은 베드로로 하여금 회개에 이르도록 하는 눈맞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이후에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고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습니다. 우리는 언제 회개를 하게 됩니까? 우리가 회개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고 부족한 것이 있음을 아는 인식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우리는 회개합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죄인됨의 현실에 마주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회개합니다. 병사들에게 잡혀 고통을 당하고 계신 예수님과 눈을 마주쳤을 때 베드로는 바로 이런 자신의 연약함과 죄인됨의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문지키는 여종 앞에서, 한 때는 주님으로 고백했던 예수님을 저주하고 부인했을 때, 예수님과의 눈맞춤은 베드로로 하여금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처음 부르실 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쫓았습니다. 이후에는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라고 힘주어 이야기하며 주님의 인정을 받기 원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 자신만만하게 말했습니다.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달라고 하면서 남다른 열정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문지키는 한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했던 그 순간, 예수님과 눈을 마주쳤을 때, 베드로는 자신의 섬김과 열정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자신의 열심과 노력이 자신의 욕망과 바램과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과 눈맞춤했을 때, 우리는 교만을 버리고 회개하게 됩니다. 나의 관점과 기대와 욕구로 채색시킨 주님이 아니라 골고다에서 십자가를 달리신 주님을 보게 될 때 우리는 회개하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이렇게 섬김과 사랑의 예수님의 진면목을 발견함으로 자신의 연약함과 죄인됨을 깨닫게 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우리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의 겉을 둘러싸고 있는 위선적인 껍데기와 가면을 벗고, 우리의 연약한 모습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와 눈맞춤하였을 때, 우리는 회개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제가 뉴욕에서 상담훈련을 받을 때, 미국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훈육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놀란 것은, 그 선생님들 모두 동일한 자세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모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잘못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매를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위압적인 자세로 아이의 자세를 고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 있지만, 그들은 아이들에게 잘못을 지적하고 바른 길을 가르치려 할 때 스스로 더 낮아졌습니다. 아이들과 눈높이를 같이했습니다. 이 때 아이들은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됩니다. 자신의 눈높이에서 눈맞춤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했던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뜰에서 고통받고 계실 때, 그는 예수님과 눈을 마주치게 됩니다. 우리와 꼭 같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베드로는 자신을 뉘우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진심어린 회개에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과 베드로의 눈맞춤은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눈맞춤이었습니다. 그 눈맞춤은 베드로를 질책하고 훈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봐, 내가 뭐랬어. 넌 배신한다고 그랬잖아. 뭐 나를 위해 죽겠다고, 내가 너 어부 때부터 알아봤어. 이 천한 것, 이 실패한 인생!" 예수님은 눈맞춤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베드로를 인자하고 온화한 눈길로 보셨을 것입니다. 최근 본교 신입생 특성조사는 최근 많은 이화여대 학생들이 낮은 행복감과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신입생의 46%가 자살생각과 충동을 경험하고 있다고 그 조사는 또한 보고했습니다. 우울증과 자살충동은 극심한 자기폄하와 학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화여대에 입학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하고 뛰어난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많은 수가 자신을 무가치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는 것을 이 조사는 보여줍니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도 자신을 싫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도 자신 같은 사람은 버리실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과 베드로의 눈맞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배신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눈길로 베드로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맞춤입니다.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아픔을 경험하셨습니다. 인간적인 배신을 경험하셨고, 십자가의 수치와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이런 아픔과 고통을 감당하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말로 다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의 깊이를 오늘 이 짧은 눈맞춤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돌이켜 보셨던 예수님에게서 우리는 베드로의 실패와 함께하시고 오히려 위로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너는 비록 나를 버렸지만 나는 결코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 네가 비록 이 세상에서는 보잘 것 없고 미련해 보여도, 나는 너를 귀히 여기고 사랑할 거야."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의 음성을 이 눈맞춤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다가 큰 사고를 당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 사고로 아버지와 아들은 두 개의 보조다리 없이는 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사춘기를 보내며 죽고 싶을 정도의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밥도 먹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위로가 되어주었던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과 동일하게 보조다리 없이는 걸을 수 없었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가 그와 꼭 같은 아픔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아들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의 위로와 사랑으로 아들은 무사히 사춘기를 넘기고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입학식 날, 아버지는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입학식을 끝내고 나올 때였습니다. 눈앞에 아주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차도로 한 어린 꼬마가 뛰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아주 놀라운 광경을 보고 말았습니다. 아빠가 보조다리도 없이 아이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아버지가 아이를 안고 인도로 나왔을 때 아들은 너무 놀라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아버지는 못 들은 척 보조다리를 양 팔에 끼고는 서둘러 가버렸습니다. "엄마? 엄마도 봤지? 아빠 걷는 거...." 그 때 어머니는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놀라지 말고 엄마 말 잘 들어. 언젠가는 너도 알게 되리라 생각했어. 아빠는 사실 보조다리가 필요 없단다. 그 때 아빠는 팔만 다치셨어. 그런데 4년 동안 보조다리를 짚고 다니신 거야. 같은 아픔을 가져야만 아픈 너를 위로할 수 있다고 말이야." 아들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아들은 마음이 아픈 날이면 늘 아버지의 품에 안겨서 울었습니다.

때로 인생을 살다보면 일이 생각처럼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힘든 일, 어려운 일 경험하며 우리 자신이 실패한 인생, 가치 없는 인생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그 실패와 아픔과 함께해 주십니다. 실패할 때에든지, 어려움을 겪을 때에든지,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귀히 여기시며 사랑의 눈길을 보내십니다. 실패한 모양 그대로 받아주시며, 우리의 아픔과 함께 하시는 그 주님으로 인해 용기와 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과 베드로의 눈맞춤은 베드로로 하여금 헌신에 이르게 하는 눈맞춤이었습니다. 감정에 대한 한 실험이 있습니다. 그 실험에서 부드럽고 인자한 눈길을 보내는 사람의 사진을 사람들에게 먼저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사진 속사람과 실제로 어떤 일을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사진 속 인자하고 온화한 눈길을 보낸 그 사람과 더 잘 협력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온갖 조롱과 고통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셨던 예수님의 인자하고 온화한 눈길은 베드로로 하여금 예수님께 헌신하게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형편없는 제자인 자신을 용서하시고 사랑으로 감싸 안으시는 예수님을 세상의 그 무엇보다 사랑하며 귀히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자신의 평생에, 고통 가운데 계셨던 예수님과의 그 잊지 못할 눈맞춤을 떠올리면서 주님을 위한 헌신을 새롭게 하였을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와 사랑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우리가 주님 앞으로 나아가면 모든 것을 용서받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그 무한한 사랑과 용서를 값싼 은혜로 바꾸어 버리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무조건 용서해주시니까, 나는 내 욕심대로,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분이 흘리신 피를 얼마나 값싸게 취급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을 체험하고, 그것을 우리의 가슴 깊이 깨달았을 때,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부인하는 베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셨던 그 예수님의 사랑이 또한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헌신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는 사람은 단지 그 사랑과 위로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하고, 좌절과 실패에도 용기 있게 도전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터와 현장에서 헌신하게 됩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며 주님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고통 가운데 계셨던 우리 주님을 부인하고 배신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그를 보셨던 우리 주님의 인자하신 사랑과 용서의 눈길은 그를 새롭게 하는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예수님과의 눈맞춤의 순간은 늘 베드로로 하여금 자신의 신앙과 헌신을 돌아보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 눈맞춤을 떠올리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눈물과 보혈이 자신의 삶의 눈물과 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그는 헌신을 다짐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분께 헌신하는 사람들을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져 갑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져 감을 보게 됩니다. 순교하기 얼마 전 주기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주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한 글을 남겼습니다. "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관, 두 손과 두 발이 쇠못에 찢어져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쏟으셨습니다. 주님 나 위해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이 무서워 주님 모르는 체 하오리까. 이 몸이 어려서 예수 안에서 자랐고 예수께 헌신하기로 열 번 백 번 맹세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계명이 깨어지고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게 되는 오늘 이 몸이 어찌 적당하게 살아가려 하겠습니까? 죽고 죽어 일백 번 다시 죽어도 주님 향한 대의정절을 변치 아니 하리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 사랑하시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사랑을 가르치고 그 사랑으로 사람 변화시키는 일에 헌신하시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기독교학과 학부 혹은, 대학원 수업 마지막 날에 이런 말을 합니다. "여러분 한 학기 참 수고 많으셨어요. 이제 곧 성적이 나올 텐데 성적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에이가 나오면 어떻고, 비가 나오면 어떻고, 씨가 나오면 어떻습니까? 그 동안의 여러분의 수고를 예수님이 알아주십니다. 여러분의 수고가 하늘에서 빛날 겁니다." 그러면 반응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수평가가 좋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학생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왜 평가를 안 좋게 했냐고. 그러자 그 학생이 대답했습니다. 교수님 평가가 좀 낮으면 어떻습니까? 우리 예수님이 교수님의 수고를 알고 계십니다. 교수님의 수고가 하늘에서 해같이 빛날 겁니다.

저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 사랑을 말과 행동으로 가르치며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우리의 현신이 하늘에서 해같이 빛날 것입니다.

고통 속에 계셨던 예수님과 그분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베드로의 눈맞춤은 우리로 하여금 고통 속에 계신 주님을 보게 하여 회개에 이르게 하는 눈맞춤이었습니다. 그 눈맞춤은 우리를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한 사랑을 느끼게 하는 눈맞춤이었습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로 그분을 위해 헌신하게 하는 눈맞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시간 동일하게 인자하고 부드러운 눈길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그 주님과 눈맞춤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해 2000년 전 일어났던 예수님과 베드로의 눈맞춤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동일하게 우리와 눈을 마주치시는 우리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눈맞춤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성숙되며, 우리 주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의 열정이 타오를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특별히 이 시간 주님께 헌신하기를 다짐하고 이 시대에 주님의 사랑을 전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이화여대 모든 식구들을 귀하게 여겨주시고 힘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사랑으로 저희가 먼저 하나되게 하시옵소서.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17.09.17.)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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