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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장윤재 목사(이화대학교회)

- 이사야 58:6-12, 로마서 15:1-6, 사도행전 2:4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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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Jesu Juva. 독일 사람들은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 이렇게 묻는다고 합니다. "이거 얼마나 오래 쓸 수 있습니까?" 일본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이렇게 묻습니다. "이거 신제품인가요?" 한국 사람들은 꼭 이걸 물어본다고 합니다. "이 물건 진짠가요?" 얼마나 '가짜'에 속고 살았으면, 이렇게 '진짜'인지를 묻는 것이 다 생활화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만 진짜인지를 묻는 것 같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오늘 아침에도 성경책을 옆에 끼고 교회를 향한 크리스천들을 향해 이런 질문을 속으로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 진짜요?"

인문학 분야에서 스테디셀러로 읽히고 있는 책들 가운데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이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와 『눈먼 시계공』과 같은 책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입니다. 그런데 7천권만 팔려도 큰 성공이라는 한국의 인문학 출판시장에서, 이 책은 2007년 7월 중순에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4만부 이상이 팔려나갔고, 그해 연말 40만권을 돌파했습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후 인문학 도서 시장에서 최대의 돌풍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의 돈지갑을 흔쾌히 열게 한 이 두꺼운 책의 맨 첫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에게 종교를 버리고 "행복하고 도덕적이며 지적인 무신론자가 되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책에 열광했던 것일까요?

언제부턴가 '안티 기독교'라는 말이 스스럼없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안티 기독교 인터넷 사이트는 너무 많아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 정도인데, 반기독교정서의 조직화, 운동화 수위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화대학에서는 한 때 비기독교인 학생들 사이에 '기독교 전도자 퇴치법 10계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널리 유포된 적이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가 하면, 첫째 '절대 혼자 식당에서 밥 먹지 않기'(왜냐하면 약 15분간의 평균 식사시간 중에 최소한 5명 정도의 전도자를 만난다고 합니다), 둘째 누가 다가와 '교회 나가시느냐'고 물으면 '네~' 하고 대답하지 말고 '넵'하고 단호하게 말하기, 셋째, 또 누군가 다가와 '같이 성경공부 해보지 않겠냐'고 물으면 '아니오' 하고 대답하지 말고 '아니욥' 하고 확실하게 거절하기 등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사도행전 2장에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의 초대교회 모습이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때는 사도 베드로가 한 번 입을 열어 설교하면 하루에 3천 명씩이나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되던 때였습니다. 그 이유가 44-47절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필요한대로 나누어 가지며,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또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느니라." 성도들의 본이 되는 생활과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고," 그 결과 구원 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크게 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는 말을 새번역 성서는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 '호감'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주십시오.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종교 호감도 조사가 있었습니다. 1970년대 조사에서 종교 이미지 선호도는 개신교가 1위, 불교가 2위, 가톨릭이 3위였습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순위가 바뀌어 가톨릭이 1위, 불교는 그대로 2위, 개신교는 3위로 떨어졌습니다. 개신교에 대한 비호감도가 증가한 것입니다. 이런 호감도의 변화는 실제 신도 수의 변화로도 나타나 2005년에 한국 개신교가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더니 지금은 거의 정체상태에 머물고 있습니다. 비판적인 종교사회학자들은 앞으로 2050년경에는 지금 800만~1000만으로 추산되는 개신교인 신도수가 150만 명까지 줄어들 거라고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을 설득하는데 논리나 말이 차지하는 부분은 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60% 이상은 첫인상의 호감도가 좌우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논리적으로 말을 잘해도 첫인상이 왠지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사람들은 이미 마음의 문의 3분의 2는 닫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개신교의 이미지가 갈수록 비호감이 되어가고 있다 보니, 아무리 담대히 길거리에 서서 복음을 외쳐도 사람들은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개신교회가 다른 어느 종교보다 더 많은 사회적 봉사와 복지에 기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는 좋은데, 교회는 싫다."

그렇다면 한국 개신교회의 이미지가 악화된 원인은 무엇입니까? 말하기 힘들고 듣기 어려운 쓴 이야기지만 회개하는 심정으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가장 첫 번째의 원인은 교회의 세습 문제라고 합니다. 성공한 제1세대 목사님들 중 많은 숫자가 자기 아들에게 교회를 기업처럼 물려주었습니다. 사회적 비난에 직면하자 물물교환처럼 서로 교환하는 방법까지 사용했습니다. 자기교회는 친구 목사 아들에게, 친구 목사 교회는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한 때 각 교단이 세습금지법을 제정했으나 최근 들어 하나씩 슬그머니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 대형교회의 담임목사 아들이 목사인 경우, 상당수가 세습을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의 세습이 계속되자 지금은 교회의 크기를 가리지 않고 세습이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아버지가 목사나 장로가 아닌 신학생이나 목회자들은 교회에서 임지를 정할 때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그들 사이에서 이런 자조적인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목사 아들은 성골, 장로 아들은 진골, 아버지가 목사도 장로도 아닌 것은 천민.... 사실 교회의 세습은 한국교회의 치명적인 범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신경에서 우리가 고백하는 것과 배치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공회'란 '공교회'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세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인 '거룩한 공교회'를 사유화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명백한 범죄입니다.

둘째, 교회의 물질적 세속화입니다. 교회가 대형화되었고 기업화되었으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세속화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나가면 부자가 될 거라고 믿고 나가지만, 사람들은 물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있다고 말하는 교회에서 영적인 감동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이 세상의 시류와 정확히 일치하는, 그리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교회의 행태에서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 알기 힘듭니다.

셋째, 도덕성의 위기입니다. 몇 년 전 신정아씨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신정아씨가 출두한 법원 근처에 살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TV 방송차량이 포진한 그 건물 앞을 지날 때마다 당시 국민적 관심사와 분노가 얼마나 높았는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 핵심적인 문제는 신정아씨의 예일대 박사학위 위조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시 법원 앞을 지나다니면서 개신교 목사로서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습니다. 한국에, 가짜 미국박사 학위 소지자는 대략 1,000명이 있는데, 믿기지 않지만, 이들 중 약 절반인 45%가 신학박사라고 합니다. 참고로, 저는 가짜 박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이것 말고도 일부 목사들의 도덕적 일탈에 관한 내용은 너무 부끄러워 말로 담고 싶지도 않습니다.

넷째, 일부 교회들의 잘못된 단기 선교방식입니다. 몇 년 전 서울의 한 유명한 교회는 전 세계 27개국 53개 도시로 무려 103개나 되는 단기선교팀을 보내 '땅 밟기' 선교를 시행한 적이 있습니다. 땅만 밟고 와도 그 땅에 선교가 된다는 말인데, 예수님도 하시지 못한 일을 하겠다는 이 기이한 발상의 선교에 저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화여대 안에도 땅 밟기 선교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 유학 중에 미국장로교회의 여러 선교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 때마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두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life-long commitment"요, 다른 하나는 "equal partnership"입니다. "Life-long commitment," 그러니까 선교란 한 나라에 뼈를 묻는 '평생 헌신'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지하철 2호선 합정역 근처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가보십시오. 거기에 가보면 스크랜튼, 아펜젤러, 언더우드 등 우리보다 우리 땅을 더 사랑하고 여기에 뼈를 묻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equal partnership," 그러니까 선교는 문화적, 경제적, 복음적으로 우위인 자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과의 '평등한 동반자적 관계' 속에서 함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땅 밟기 선교라니요? 그런 얄팍하고 해괴한 발상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습니까?

마지막 다섯째로, 한국 개신교가 비호감이 된 중요한 원인은 '종교가 생활화되지 못하고 실생활이 종교화되지 못한 것'입니다. 언젠가 김활란 박사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혹자는 종교란 모든 실생활과의 관계를 떠나 자기 혼자 어떤 신비한 경험을 하고 일요일에 예배당 가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고리대금업이나 다른 방식으로 착취를 하다가도 주일에 양심에 아무 저촉도 없이 예배를 드린다. 그 원인은 종교생활이 실제화되지 못하고 실생활이 종교화되지 못한 까닭이다."

한 교계신문의 조사에 의하면 일반국민들이 기독교에 대해 좋지 않은 느낌을 가지는 이유 중 1위는 "교인들이 진실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종교가 생활이 되지 못하고 생활이 종교가 되지 못하니까, 즉 예수를 '믿는 것'과 예수를 따라 '사는 것'이 하나가 안 되니까, 요즘 사람들은 기독교인을 가리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기독교인이란 누구인가? 그들은 토요일까지 지은 죄를 일요일에 회개하고 월요일부터 또 지으려는 사람들이다." 저는 주일에라도 한번 회개하는 것이 일주일에 한 번도 회개하지 않는 것보다 나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회개가 진실한 회개라면 우리는 회개한 일을 월요일에 또다시 반복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의 '진정성'(authenticity)이 의심을 받기에 세상이 교회에 등을 돌립니다.

가톨릭을 포함하면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된 지 2백 년이 넘었습니다. 기독교가 처음 조선에 들어왔을 때, 기독교는 당시의 사회를 개혁하고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철저히 소외당하며 살아가던 이들에게 - 특히 여성들에게 -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고 또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가히 혁명적인 평등사상을 소개함으로써 급속히 전파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평등사상은 양반과 남성을 세상의 중심으로 믿어온 조선의 유교체제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자 백정이 교회의 장로가 되고, 그 백정의 아들이 의사가 되고, 양반 중의 양반인 왕손이 예수를 믿고 자기 말을 끄는 마부에게 '형님'이라 부르는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이제 누구의 자식인가로 평가받지 않고 자신의 노력과 성실함으로 평가를 받는 세상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기독교는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고 하나님의 이름은 이 땅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조차 영광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교회는 바로 이러한 구원과 해방의 메시지를 상실했습니다. 대형교회 담임목사직을 놓고 세습이 시작되고 그것이 보편화되면서 교회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보다 누구의 자녀인가가 더 중요한 퇴행적인 현실을 만들어놓았습니다. 자신이 부정한 것을 스스로 자기 안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사람들은 서서히 교회를 우습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미개한 집단이나 정신 나간 집단으로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이름이 멸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대사회적 이미지가 이렇게 땅에 떨어지니 전도도 안 되고 선교의 길도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가 기독교적이기 때문에 비난을 받고 고난을 당하는 것은 영광입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비기독교적이고 반기독교적이라는 이유로 세상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는다면 그것은 가장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메신저(messenger) 때문에 메시지(message)를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로마서 15:5-6)고 권면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예수님의 삶을 본받거나 닮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sola fide)을 이유로 행함을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우리는 '오직 은총'(sola gratia)을 이유로 이웃에 대한 책무로부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발부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이유로 자연을 하나님 계시의 통로에서 배제해버렸으며 그 결과 오늘의 생태계 파괴의 주범 종교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곧 종교개혁 500주년이 다가옵니다. 하지만 "개신교회 역사 500년 가운데 가장 부패한 교회"라는 비판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기 위해 교회를 떠난다는 이른바 '가나안' 성도들, 즉 거꾸로 읽으면 '안나가' 성도들이 100만을 넘게 되었습니다. 이 엄중한 시절에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지금 냉정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물어야 합니다. 오늘 아침 성경책을 옆에 끼고 교회를 향하던 우리를 향해 길거리의 사람들이 속으로 우리에게 물었던 그 질문을 우리 가장 냉정하고 정직하게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합니다. "당신 진짜요?" "당신 진짜 크리스천이요?"

미국 남북전쟁 때 '프레드릭스버그 대전투'라는 유명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육탄전까지 치르고 수많은 부상자들을 중간에 남겨 놓을 채 쌍방은 후퇴하여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북군 병사 하나가 물통을 들고 달려 나갔습니다. 남군에서 사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병사가 목숨을 걸고 남군, 북군 가리지 않고 부상자들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광경을 보고 사격은 중단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쌍방은 한 시간 동안 휴전을 하기로 하고 서로 부상자들을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남군 장교가 이 북군 병사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What is your name?"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My name is Christian." 그 때 그는 자신의 부모가 자기에게 준 이름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그는 총탄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사지 한복판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향해 뛰어나가게 만든 그 이름을 말했습니다. 그에게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은 결코 싸고 편리한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은 목숨을 건 이름이었습니다. 전 존재를 건 이름이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이미지가 땅에 떨어지고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이 상황은 바로 이런 '진짜' 크리스천의 수가 적어서는 아니겠습니까.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진실한 크리스천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종교와 생활이 하나인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고 동등하고 존엄하게 대하는 복음의 정신을 몸으로 사는 크리스천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섬기려 한 그리스도의 정신을 날마다 실천하며 사는 크리스천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를 본 받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진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Soli Deo Gloria. (2017.10.8.)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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