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나는 친한 친구로부터 상처를 받았다. 나의 반응은 상처를 되갚아주는 것이었다. 사실상 정반대였을 수도 있다. 전체 사건은 매우 사소하고 내면적인 것이어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도 말하기 어렵다.
둘 다 결국 서로 샐쭉해서 분을 품고는 상처를 핥으며 사과를 미루었다. 그때 이후로 우리는 만나지 않았다. 바깥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억지웃음을 지어보였다. 어느 쪽도 화가 났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친구가 잘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먼저 그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왜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하지? 어쨌거나 내가 책잡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니까.
하지만 최근에 점검해본 바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사과를 끝까지 미루는 자들에게 축복하지 않는다. 마태복음을 읽다가 나는 정반대의 상황을 발견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를 축복하신다. 그리고 산상수훈에서 그분은 화평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정확히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태복음 5:23-24)
예수께서는 "가서 사과를 요구해라," "가서 너의 행동을 변명해라," 혹은, 심지어 "가서 너의 입장을 들려주어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가서 화목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이어서 부당한 일에 대한 반응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일러주셨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태복음 5:38-42)
그분은 뺨을 얻어맞는다든지 소송을 당하는 등의 다소 공개적인 모욕을 언급하셨다. 체면을 구기는 일이면 뒤로 물러서기가 더 어려워진다. 나는 자존심을 쉽게 굽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문자 그대로 뺨을 맞는다면 나는 내가 무엇을 하게 될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나는 기분 나쁘도록 과장되게 다른 뺨을 돌려 대서 아마도 한 대를 더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훨씬 더 겸손한 태도를 주문하셨다. 내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했고 화나게 했다고 말없이 인정하는 태도를 주문하셨다.
주기도문에 나오는 그분의 말씀은 왜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지를 상기시켜준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태복음 6:12).
용서는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거나 소극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극적인 수용이다. 그것은 상대방이 그런 용서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내가 인정하는지의 여부와 상관없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믿을 수 없으며 받을 자격이 없는 용서에 대한 반응으로 하는 것이다.
기사출처: http://www.biblestudytools.com/bible-study/topical-studies/holding-out-on-forgivenes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