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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흔들리는 터전

장윤재 목사(이화대학교회)

- 이사야 24:17-20, 고린도전서 10:1-4, 마태복음 7:2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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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Jesu Juva. 2년 전 쯤에 작가 최범영 씨가 펴낸 책 『바람에도 흔들리는 땅』을 다시 펴보았습니다. "조선시대 지진과 재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책입니다. 작가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그리고 『해괴제등록』 등의 문헌을 샅샅이 뒤져 조선시대 지진, 화산활동, 해일 등에 관해 소설의 형태로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숙종 7년, 1681년, 신유년(辛酉年) 음력 4월 26일 한양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북동에서 남서방향으로 땅이 흔들리다. 집채가 흔들리고 창과 바람벽이 크게 울리어 흔들리다. 길 가던 사람 가운데 말이 놀라는 바람에 떨어져 죽은 이도 있었다." 5월 11일 강원도 상황입니다. "지진이 났다. 소리가 우레 같았고 담벼락이 무너졌으며 기와가 날려 떨어졌다. 양양에서는 바닷물이 세게 부딪혔으며 마치 소리가 물이 끓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닷물이 조수가 밀려나가는 형상과 같았는데, 평일 물이 찼던 곳이 1백여 보 혹은 5~60보 땅이 드러났다... 전국 8도 모두에 지진이 났다." 그 유명한 1681년의 '신유대지진'과 여진에 대한 기록입니다. 당시 진앙은 강릉쯤으로 추정되며 지진규모는 6.1 정도입니다. 하지만 해변에서 조수가 1백 여보 혹은 5~60보 후퇴했다면 이는 지진해일, 즉 쓰나미임이 분명한데 이 정도의 쓰나미를 만들 수 있는 지진은 규모 7.5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추정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진도 5.4의 지진이 포항을 크게 흔들어놓았습니다. 대입 수학능력시험의 연기라는 사상 초유의 일도 벌어졌습니다. 그동안 한반도는 지진이 없는 안전한 땅이라고 굳게 믿었는데 이제는 아닌 모양입니다. 최범영 작가의 책 제목대로 우리가 사는 한반도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땅"인 듯싶습니다. 6백 쪽이 넘는 이 책은 우리가 사실 오래 전부터 '흔들리는 터전' 위에 살고 있음을 빼곡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포항에서 지진이 나자 이를 두고 여러 가지 안 좋은 말들이 있었습니다. 한 정치인은 이 지진이 현 정부에게 "하늘이 주는 준엄한 경고이고 천심"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목사님은 이 지진이 현 정부가 "종교계에 과세를 하려고 하니 하나님이 경고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감히 "하나님의 교회에다 세금을 내라 하"니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이렇게 "하나님을 건드리면 국가에 바로 위기가 온다"고도 했습니다. 이번에 특히 포항 한동대학교가 피해를 많이 입은 것을 두고 어느 보수적인 기독교인은 이 학교의 인권법학회가 동성애자들을 생각하는 '퀴어신학 세미나'를 열기로 했다가 하늘의 벌을 받은 것처럼 말하기도 했습니다. 진보 성향을 가진 어떤 사람은 평소 한동대가 창조과학을 지지해 왔기 때문에 그 근처에서 지진이 났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개신교인들의 이상한 말들이 나오곤 했습니다. 2011년 일본대지진 당시 조아무개 목사는 "후쿠시마 지진은 우상숭배로 인한 하나님의 경고"라 말했습니다. 2004년 인도네시아에 큰 쓰나미가 왔을 때 김아무개 목사는 "이슬람교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지진이나 지진해일과 같은 자연재해를 자기 멋대로 해석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 그 안에 숨겨진 신의 뜻을 헤아리려고 합니다. 물론 천재지변을 신학적으로 언급할 수는 있겠으나, 그런 해석에는 늘 천재지변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은 배제되기 일쑤인 것이 문제입니다. 더욱 나쁜 것은, 앞에서 본 것과 같이,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아무 말이나 함부로 내뱉는 것입니다. 아전인수 격으로 신의 뜻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중에서도 천재지변으로 인한 고통의 원인이 인간의 어떤 행위 때문이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것은 구약성서의 욥기가 비판하는 생각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뭔가를 잘못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으며, 잘하면 하나님의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기계적인 인과응보의 신앙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욥기 38장에서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서 욥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잘못을 하나님께 돌리는 욥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누구이기에 무지하고 헛된 말로 내 지혜를 의심하느냐? ...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 ... 누가 이 땅을 설계하였는지, 너는 아느냐? ... 무엇이 땅을 버티는 기둥을 잡고 있느냐? 누가 땅의 주춧돌을 놓았느냐?"(욥기 38: 1-6).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의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를 알 수가 없고, 행여 이유를 안다고 해도 속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자연재해를 놓고 누구의 잘못이라고 갖다 붙이면 안 됩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과 조용히 함께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신앙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이번 포항지진은 단순히 땅만 흔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의 마음과 일상생활까지 흔들어놓았습니다. 땅이 흔들린 시간은 매우 짧았지만 그 후유증은 오래도록 지속될 것입니다. 지진이 무서운 이유는 삶의 터전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근본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기본 터전이 흔들리니 그 위에 서있는 건물도, 나무도, 사람도 쓰러지고 산산이 부서지고 다 깨지고 맙니다. 근본이 흔들리면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세계적인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일찍이 이런 지진을 두고 '흔들리는 터전'이라는 표현을 쓰며 우리의 인생과 문명을 돌아보도록 했습니다.

폴 틸리히의 설교집 『흔들리는 터전 (The Shaking of the Foundation)은 1948년도에 출간됐습니다. 미국 뉴욕의 유니온신학대학원에서 행한 설교를 책으로 묶은 것입니다. 틸리히는 제1,2차 세계대전을 목도하면서 우리 삶과 문명의 터전들(foundations)이 흔들리는 위기를 보았습니다. 이 책의 앞부분에 실린 설교 "흔들리는 터전"은 구약의 예언서들을 본문으로 택했습니다. 예레미야 4장과 이사야 54장 그리고 이사야 24장의 본문인데, 앞의 두 본문은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을 땅이 흔들리고 황폐화하는 것으로 형상화해서 선포한 예언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의 본문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이사야 24:18-20을 다시 읽어봅니다.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 땅이 깨지고 깨지며 땅이 갈라지고 갈라지며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하며 원두막 같이 흔들리며 그 위의 죄악이 중하므로 떨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

이 성서의 예언을 신학자들은 그동안 진지하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틸리히는 이제 '땅의 기초가 흔들린다'(이사야 24:18)는 성서의 예언이 우리 시대 현실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땅이 깨지고 깨지고 땅이 갈라지고 갈라지고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19절)라는 구절은 더 이상 시적 은유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 되었고, 이것이 현대인들이 새로 진입한 이 시대의 종교적 의미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이라는 참상 앞에서 '땅의 터전들'이 요동하며 흔들리는 이유가 다름 아닌 우리 인간에게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진보, 무한한 진보!'를 외치는 과학은 인간에게 자기 자신과 세계를 멸절시킬 힘을 쥐어주었습니다. 그 힘으로 인간은 신처럼 이 땅 위에 군림하려 들었습니다. 하지만 틸리히는 보았습니다. "인류는 진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원시의 혼돈에로 회귀하고 있으며, 평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분열을 조장하고 있으며,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초래하고 있음"을 그는 보았습니다. 그래서 틸리히는 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주장할 때마다 파멸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인간이 교만하게도 자신의 문화적 창의성이나 기술적 진보나 정치제도나 종교체계 등에 의존했을 때, 인간은 붕괴와 혼동에 떨어졌습니다. 인간의 삶의 모든 터전들이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쓴 소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달콤한 소리를 듣고 싶어 합니다. 대중은 장밋빛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 흔들리며 시대가 종말을 향해 간다고 예언하는 사람들은 '비관주의자' 혹은 '패배주의자'로 비난받기 쉽습니다. 틸리히는 구약과 신약의 모든 예언자들이 바로 이런 비난을 받았음을 상기시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성서의 예언자들은 우리의 삶과 문명의 터전이 흔들리는 것을 과감히 선포할 수 있었을까요? 틸리히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의 힘은 그들이 실제로 말하는 것이 세상의 이런저런 터전들이 아니라 그런 터전들을 놓으시고 그것들을 흔드실 수 있는 분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나옵니다. 또한 그들이 실제로 말하는 것은 이런 저런 나라들의 파멸이 아니라 자신의 영원한 정의와 구원을 위해 파멸을 초래하시는 분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나옵니다." 시편 기자도 이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시편 102:25-27).

우리의 하나님이 바로 이 '영원하신 분'(The Eternal)입니다. 그래서 틸리히가 말합니다. 그 분은 "모든 터전들이 그 위에 놓인 터전입니다. 그리고 이 터전은 흔들릴 수 없습니다"(God is the foundation on which all foundations are laid; and this foundation cannot be shaken). 그렇습니다. 우리의 터전은 흔들리지만 하나님은 모든 터전들의 터전, 흔들리지 않는 터전입니다.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터전입니다. 즉, 우리의 '존재의 근거'입니다. 그리고 이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터전은 우리의 흔들리는 터전들이 무너질 때 드러납니다. 무한한 것은 유한한 것들이 붕괴될 때 드러납니다. 이 때 우리 앞에는 두 가지의 대안이 있습니다. 하나는 '절망'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원한 파괴에 대한 확신'으로 결코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믿음'입니다. 틸리히는 그것을 '영원한 구원에 대한 확신'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터전에 대한 확신입니다. 성서가 그것을 다음과 같이 확증합니다. 이사야 51:6입니다.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이것이 바로 성서의 예언자들이 제시한 대안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터전이 흔들림을 잊고 삽니다. 땅만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과 문명의 터전이 흔들리고 있음을 애써 외면하고 삽니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 안에 종말을 지니고 있음"을 직시하라고 틸리히는 촉구합니다. 이제 더 이상 그 종말을 잊고 사는데 성공할 수 없음을 인정하라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세상의 터전들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우리가 세상의 붕괴를 통해서 영원한 반석과 다함이 없는 구원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고 틸리히는 말합니다. 우리는 '흔들리는 터전'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세상을 성찰하며 '흔들리지 않는 터전' 위에 새로운 존재가 되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본 동경에 임페리얼(Imperial)이라는 호텔이 있습니다.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라이트(Frank L. Wright)가 지었습니다. 이 호텔은 두 가지 이유로 유명합니다. 하나는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지었다는 점입니다. 기초공사에만 무려 2년을 사용했습니다. 당연히 돈이 많이 들어갔고, 주위에서는 저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기초공사를 오래 할 필요가 있느냐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유명해진 것은, 이 호텔이 지어지고 나서 52년 후에 생긴 일 때문입니다. 동경(관동)대지진이 발생했는데, 이 건물은 제 자리에 굳건히 서 있었고, 호텔 안에 있던 물건들은 단 하나도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1923년의 동경대지진은 진도가 무려 8.3을 기록했고, 10만 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오늘 봉독한 마태복음 7:21-27(누가복음 6:46-49)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시면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직접 집을 지어본 분이었습니다. 이 분은 이 세상에 두 가지의 집이 있음을 아셨습니다. 하나는 '잘 지은 집'이고 다른 하나는 '못 지은 집'입니다. 잘 지은 집은 "땅을 깊이 파고, 반석 위에다가 기초를 놓은 집"(누가 6:48)입니다. 못 지은 집은 "기초 없이 맨 흙 위에다가 지은 집"(누가 6:49)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집은 어떤 집입니까? 여러분이 섬기는 일터는 어떤 집입니까? 예수님은 "내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하는 사람"이 잘 지은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못 지은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집은 어떤 집입니까?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일터는 어떤 터 위에 세운 집입니까? 땅을 깊이 파고 반석 위에 기초를 놓은 튼튼한 집입니까? 아니면 기초 없이 모래 위에 지은 허약한 집입니까?

우리의 삶도 하나의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속으로 인생이라는 집을 그리며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을 마음속에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그 집의 모양은 대단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돌아가신 성공회대학의 신영복 선생이 자신의 감옥생활을 회고하는 글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과 징역살이를 같이 하는 나이 많은 목수 한 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언젠가 운동시간에 그 노인이 신영복 선생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면서 땅바닥에 집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에서 신영복 선생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집을 그리는 순서가 평범한 사람들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입니다. 보통 우리는 집을 그릴 때 어떻게 그립니까? 아이들도 집을 그릴 때 대개 무엇부터 그립니까? 지붕부터 그립니다. 지붕을 그리고 벽을 내리고 바닥을 그립니다. 그런데 그 노인이 집을 그리는 순서는 보통 사람의 순서와 반대였습니다. 그는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서로 그렸습니다. 놀랍게도 그 노인이 집을 '그리는' 순서는 바로 집을 실제로 '짓는' 순서였습니다. 그 노인의 그림은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습니다. 집을 지어본 목수의 그림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붕부터 집을 그립니다. 완전히 거꾸로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인생의 집을 그릴 때 무엇부터 그리십니까? 근사한 너와 지붕에 찬란한 쪽빛을 칠한 청색기와부터입니까? 서울의 고궁에서 본 역대 왕실의 중후한 지붕부터입니까? 유럽의 대도시들에서 본 고딕양식의 교회당처럼 하늘을 금방이라도 찌를 듯한 휘황찬란한 첨탑부터입니까? 지붕은 집을 짓는 맨 마지막 단계입니다. 인생에 비유할 때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인생의 집을 화려한 지붕, 즉, 성공의 결과부터 먼저 그리고 있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삶의 기초를 어디에 놓고 과정을 밟아갈 것인지 머릿속에 그리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그린 커다란 지붕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스스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1681년의 신유대지진이나 1923년의 동경대지진과 같은 역경이 밀어닥칩니다. 우리의 가정이나 사회에도 그런 재난이 들이닥칩니다. 욥기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니... 산을 옮기시며... 산을 뒤집어엎기도 하십니다. 지진을 일으키시어 땅을 그 밑뿌리에서 흔드리고, 땅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을 흔드십니다"(욥기 9;4-6). 실로 우리는 '흔들리는 터전' 위에 삽니다. "바람에도 흔들리는 땅"은 한반도만이 아니라 전 인류의 인생이고 전 인류의 문명입니다. 하지만 나님은 '모든 터전들의 터전, 흔들리지 않는 터전'입니다.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터전입니다. 흔들리는 인간들의 '존재의 근거'입니다. 그러므로 "온 땅이 흔들리고 무너질 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를 우리에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주께서 우리와 맺은 화평의 언약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시편 54:10)입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이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이사야 54:10). 오늘 읽은 시편의 교독문처럼 바로 이 하나님이 우리의 반석이시오, 구원이시오, 요새이시오, 피난처이시니, 우리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시편 62).

교우 여러분, 우리의 삶에서 신유대지진이나 동경대지진과 같은 일이 일어나 땅이 흔들리고 홍수가 범람할 때 우리의 집이 곧바로 무너져 버릴 것인지 아니면 흔들리지 않을 것인지는 그 집의 기초가 결정합니다. 기초체력이 잘 단련되어 있어야 어떤 운동도 잘 할 수 있듯이, 기초과학이 튼튼하게 받쳐 주어야 한 나라에 미래가 있듯이, 우리의 믿음의 기초가 튼튼해야 불멸의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이 삶의 기초를 다시 튼튼히 세우시길 바랍니다. 한 해를 보내기 전에 우리 인생의 집을 반석 위에 다시 세우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그런 사람을 예수께서는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잘 짓는 사람이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반석(고린도전서 10:40)이 되십니다. 그가 우리의 신령한 반석입니다. 이처럼 그가 우리의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는 찬송이 날마다 우리의 고백이 되고 힘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Soli Deo Gloria. (2017.11.26.)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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