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

서광선 베리타스 회장(이화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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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본지 회장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판문점으로 떠나는 대통령님께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와 함께 회담의 성공을 위해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수고하시고 안녕히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이 이상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격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머금고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님의 부모님과 함께 함흥 부두에서 미군 LST를 타고 부산으로 피란 내려 온 사람은 아니지만, 인민군에게 총살당한 반공 목사 아버지를 대동강이 내려다보이는 교회 뒷산에 묻고, 불바다가 된 평양을 뒤로 하고 부산으로 피난 내려와 대한민국 해군에 소년 통신병으로 지원 입대했던 노병입니다.

이제 1953년 휴전협정을 맺은 해에 태어난 전후세대인 대한민국 대통령과 올해 34세의 젊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무위원장이 한 자리에 마주 앉게 되었습니다. 우리 늙은 세대는 전쟁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켜 서로 죽이고 증오하며 원수로 살아왔었는데, 이 같이 실패한 역사를 전후 젊은 세대가 바로 세워서 화해와 평화와 공존공영의 역사를 만들어 나갈 희망을 갖게 했습니다. 저는 이 젊은 세대에 대한 존경과 기대로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먼저 우리 이 땅에 6.25 전쟁을 일으킨 늙은 세대의 참회의 눈물을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늙은 세대는 지난 70년 동안 전쟁을 자랑하고, 서로 원수가 되어 미워하고 동족이 망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한쪽을 정복하고 말살해야 한다고 젊은 세대들을 교육시켰습니다.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고 피를 흘리게 한 우리 늙은 전쟁세대는 이제 평화를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같은 젊은 세대가 남과 북의 전후세대가 꿈꾸어 온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만들어 갈 자격이 있고 능력과 용기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밝힌바 있지만, 한반도의 비핵화는 "할아버지 김일성 장군의 유훈"이었습니다. 1972년의 7.4 공동 성명에서 남북의 정치 지도자는 통일을 약속하면서 북진통일과 같은 무력통일이 아니라 평화통일, 우리 민족끼리 주체적으로 이념과 사상의 차이를 넘어서는 평화적, 민족 대단결의 통일 원칙을 공언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할아버지 살아생전에 대한민국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남북관계를 적대관계가 아니라 동반자관계라고 천명하며 남북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게 되었고, 1990년대 초부터 총리급 남북 고위급회담을 통해서 역사적인 합의를 만들어 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아버지와 우리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에서 만나 역사적인 6.15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남과 북으로 흩어졌던 이산가족들이 눈물의 상봉을 하게 되었고, 그리운 금강산 관광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노무현 대통령이 한발 더 나아가 2007년에 10.4 선언을 하자 우리는 모두 열광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남과 북이 서로 만나며 함께 평화와 통일을 향해 일하는 길이 하나 둘 막히고 닫혔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중은 들고 일어났습니다. "남북 분단의 극복 없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민주주의 없이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로운 한반도, 통일된 한국을 만들 수 없다!" 촛불을 든 민중은 외쳤습니다. 촛불은 평화롭게 절망과 어둠의 세상을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 혁명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들어 올린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의 횃불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타올랐습니다. 실로, "평창, 평양, 평화 올림픽"이었습니다. 이제 평창 동계올림픽의 주인공들,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남북 정상회담, 평화통일 회담의 주인공들이 되었습니다.

평화의 길, 평화를 위해, 평화로의 여정에 첫 걸음을 내딛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드리고 싶은 부탁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번의 남북 정상회담은 지난 해 시민들이 일으킨 촛불혁명의 열매라는 것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남한의 민중들만이 아니라 북한의 인민들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깊고 오랜 염원과 부르짖음과 아우성과 인내심에 대한 남북 정부 책임자들의 응답의 결과입니다. 그동안 남북 분단 문제를 대립과 적대관계로만 생각하고 적대적 공생관계로 오도(誤導)해 온 정치지도자들과 소위 전문가들의 행태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민중과 인민의 소리, 한민족의 평화통일을 향한 간절한 소원과 그 목소리를 경청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진행하셔야 합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30년 전에,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룩한 1987년 체제 아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 이른바 "88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 선언문에서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분단을 당연시하고 분단 이념에 갇혀 서로를 철천지원수로 미워하고 증오한 죄를 고백하면서, 남북 정부에게 호소했습니다.

1.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종전을 선언하고 전쟁상태를 정식으로 종결하자.

2. 남과 북은 군비를 축소하고, 한반도 전역을 비핵화해야 하고,

3.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남북한 상호간에 신뢰회복이 확인되며 한반도 전역에 걸친 평화와 안정이 국제적으로 보장되었을 때,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하며 주한 유엔군 사령부도 해체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88선언"은 북한의 그리스도교련맹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김일성 주석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당시 불법 입북하여 김일성 주석을 만난 문익환 목사가 전해 준 말입니다. 우리 한국 민중을 대표해서 우리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이 처음으로 낸 "민중의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까지 우리 민중의 소리는 묵살당해 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이제 두 정상이 마주 앉아 한국전쟁의 종식을 선언하는 일을 논의하고, 앞으로 평화조약을 체결하며 한반도에서의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고 "핵 없는" 금수강산을 만들어 나가자며 한목소리로 손잡고 약속하는 문서에 서명하고, 온 천하에 한목소리로 선언하는 그 역사적인 순간을 고대하겠습니다. 우리는 두 정상이 이미 그런 시나리오를 가지고 휴전선을 밟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휴전선이 없어지고, 기차 길이 열리고, 개성공단이 다시 문을 열고, 금강산만이 아니라, 황해도의 구월산, 자강도의 묘향산 관광길이 열릴 것이고, 압록강에 배 띄우고 백두산을 우리나라 쪽에서 등산하게 되고, 운동선수들이 평양과 부산, 함흥과 서울로 왕래하면서 시합하고, 다음 동계올림픽은 북쪽에서 개최하게 되고, 남쪽의 초, 중, 고 학생들과 대학생들이 북한에 수학여행을 다니게 되고, 북의 학생들이 남한의 제주도와 설악산과 지리산과 서울 구경을 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남북한 대학생들이 자유롭게 남과 북 어느 대학에서든 원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학생 교류도 가능해져야 합니다. 교수들 역시 상호 초빙되어 남북 어디서든지 강의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남과 북에 흩어진 채 가족 잃은 한을 품고 사는 늙은이들이 하루 속히 서로 만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만날 수 없는 이들은 편지왕래의 길이라도 열어야 합니다.

평화를 만들기 위하여 무거운 책임을 지고 떠나는 길에 부탁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한 세기 동안 피 흘리고 죽고 죽이는 비극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 민족의 한을 풀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님, 이 멀고 험한 길 떠나시는 아침에 드리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2018년 4월 27일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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