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버트 S. 코링턴(Robert S. Corrington)은 미국 뉴잉글랜드 초월주의의 흐름을 잇는 미국 자연주의 전통과 찰스 퍼어스(Charles S. Peirce)에서 시작된 미국 실용주의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학자로, 자신의 철학을 '탈자적 자연주의'(ecstatic naturalism)로 규정한다. 코링턴 교수는 현재 미국 뉴저지의 드류대학교에서 철학적 신학과 종교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10여 년 전부터 해마다 '탈자적 자연주의 국제학술대회'(The International Congress on Ecstatic Naturalism)를 개최해 오고 있다. 다양한 학술대회와 심포지엄 등을 통해 이미 우리나라를 여러 차례 방문한 코링턴 교수는 한국 신학자들과도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으며, 2016년에는 "조울증과 철학적 삶 - 우리 모두는 조울증-천재"라는 주제로 열린 <종교와 건강 국제 심포지엄>에서 청소년기부터 시작된 조울증이 자신의 철학과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강연을 하기도 했다.
이번에 박일준이 번역한 『자연주의적 성서해석학과 기호학: 해석자들의 공동체』(이하 『해석자들의 공동체』)(The community of interpreters: On the hermeneutics of nature and the bible in the american philosophical tradition, 1986)에서 코링턴 교수는 한편으로는 퍼어스(Charles S. Peirce), 로이스(Josiah Royce)와 같은 미국의 고전 사상가들이 어떻게 해석학의 기초를 닦아 놓았는지를 보여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평 해석학'(horizontal hermeneutics)이라 부르는 미국 해석학적 전통이 지향하는 핵심적 개념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해석자들의 공동체'(community of interpreters)이다.
이 책을 집필한 후 코링턴 교수는 자신의 '탈자적 자연주의 철학'의 지평을 넓히면서, 이후 네 권의 책을 시리즈로 출판하였다. 시리즈의 두 번째로 『자연과 영: 신비합일적 자연주의에 대한 에세이』(Nature and Spirit: An essay in ecstatic naturalism,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1992)를 출판하였고, 세 번째로는 『퍼어스 개론: 철학자, 기호학자 그리고 탈자적 자연주의자』(An Introduction to C. S. Peirce: Philosopher, semiotician, and ecstatic naturalism, Lanham MD: Roman & Littlefield, 1993), 네 번째로는 『탈자적 자연주의: 세계의 기호들』(Ecstatic Naturalism: Signs of the world, Bloomington: India University Press, 1994),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로 『자연의 자아: 근원에서 정신으로』(Nature's self: Our journey from origin to spirit, Lanham MD: Roman & Littlefield, 1996)를 출간하였다.
'탈자적 자연주의 철학' 시리즈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해석자들의 공동체』에서 코링턴 교수는 하이데거 학파와 연관된 유럽적인 접근 방법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대륙적 현상학과 -히르쉬(E. D. Hirsch)와 같은 문학비평가들이 말하는- 보다 문자적이고 반(反)대륙적인 접근 방법을 아우르면서 제3의 해석의 길을 열고 있다. 특히 이번 책의 '바울과 원시 교회'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미국적 토착화 신학으로서의 '탈자적 자연주의'가 바울 공동체를 어떻게 이야기 화(化)하고 있는지를 로이스의 해석을 따라가며 보여주고 있다.
로이스는 바울 공동체를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해석자들의 공동체로 생각했다. 예수의 전기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에 다소 소홀하기는 했지만, 바울은 자신의 종말론적 비전 속에서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역동적인 구조들을 탐구하였고, 성령의 현존에 따라 이 공동체가 어떻게 발전하고 성숙해 나가는지를 최초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후 초기 교회는 스승 예수의 가르침을 해석하기 위한 지침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발전시켜 나가면서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탄생시킬 수 있었고, 그러한 해석적 전통을 끊임없이 이어가면서 끈질기게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마지막 논평에서 박일준은 초기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공관복음서의 공동체들과는 달리 바울 공동체는 스승 예수에 대해 끊임없이 해석하고, 그 해석에 대한 충실성을 지켜나갔던 교회였다고 말한다. 이것은 바울 공동체가 "영의 공동체"와 "해석자들의 공동체"로 나아가고 있음을 드러낸다. 먼저 초대교회는 공동체의 본성과 하나님, 그리고 예수의 삶과 활동에 대한 것들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이제까지 구전으로 내려오던 것들을 해석적으로 조직하였다. 다시 말해 자기들의 상황 속에서 다양한 해석적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해석적 활동들을 자기 멋대로 수행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해석자들은 스승 예수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이 땅에 보낸 하나님의 영의 안내를 충실히 따랐으며, 이것을 통해 초기 공동체를 하나님에게로 이끌었다.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포스트휴먼시대를 사는 우리가 바울 공동체의 해석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겠지만, 그래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해석자들의 공동체』의 "편집자 서문"을 쓴 찰스 메비(Charles Mabee)의 말을 빌면, '모든 해석은 또 다른 해석을 위한 해석(interpretation for another)'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해석 활동은 공동체적'이고, 또한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과 통찰에 근거하여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탐구해야 한다. 그리고 덧붙여서 이렇게 구성해 낸 이야기들이 실재에 대한 완전한 해석이라는 환상 또한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퍼어스와 코링턴이 '해석자들의 공동체'라는 개념을 주장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다시 말해, 해석은 해석자들의 공동체를 통해 지속적인 비판과 반론의 가능성에 노출되어야 하고, 그를 통해 보다 온전한 해석 혹은 보다 상황에 적합한 해석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러한 '해석자들의 공동체'의 노력이 완전에 도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해석이 적용되는 상황 자체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고, 상황에 따라 그 순간에 보다 나은(better) 해석을 찾으려는 노력 역시 무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석자들의 공동체에서는 '참이냐 거짓이냐'(true or false)의 이분법이 아니라, '더 나은 혹은 더 나쁜'(better or worse) 해석의 분별이 더욱 중요해진다. 이 책을 번역한 박일준 역시 포스트휴먼시대라 일컬어지는 우리 시대가 해석자들의 공동체를 요구하고 있음을 역설하면서, 해석자들의 공동체가 필요한 이유로 "우리의 해석은 언제나 시대적 적절성이라는 잣대를 통해 판단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3. 미국 실용주의 철학의 창시자인 퍼어스의 견해가 당시 정신적 공백 시대를 살고 있던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생각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던 것처럼, 퍼어스의 기호학적 개념을 받아들인 코링턴의 '해석자들의 공동체'는 스토리텔링 애니멀(storytelling animal)로서의 인간이 개인적 치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정신적 공백을 매우고, 포스트휴먼(Posthuman) 시대를 의미있게 살아갈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데 있어 하나의 단초를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 코링턴이 제안하는 '해석자들의 공동체'는 오늘날 우리가 자신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지구적으로도 의미있는 이야기와 해석을 전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코링턴의 "해석자들의 공동체" 개념을 한국적 상황에서 다시 성찰해 봄으로써 이미 우리에게 있었던 '민중신학', '토착화신학'과 같은 한국적 토착신학을 우리 시대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것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되살려 내고, 또 한편으로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필요한 토착신학적 사고를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재발견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