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기억하라

장윤재 목사 (이화대학교회)

- 신명기 7:17-19a, 디모데후서 2:7-8, 마태 16:8-10 -

jangyoonjae_0512
(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예루살렘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 이름은 히브리어로 '야드 바쉠'(Yad Vashem)입니다. '야드'는 '기억'이라는 뜻이고, '바쉠'은 '이름'이라는 뜻입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600만 명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이 기념관의 출구 쪽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습니다. "망각은 우리를 노예로 이끌고, 기억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끈다."

성서는 '기억하다'로 시작해서 '기억하다'로 끝나는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서를 통틀어 '기억'와 관련된 말은 모두 328번이나 나옵니다. 성서의 하나님은 '기억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성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과 생명을 위해 행하신 그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성서에서 홍수로 땅을 심판하신 하나님이 땅 위의 물을 빼기로 결정하신 이유는 "노아와 방주에 함께 있는 모든 짐승들을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창 8:1). 출애굽의 대역사를 시작하신 것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출 2:24). 이스라엘은 잊기를 잘하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으로 향하는 기나긴 광야 길에서 기회를 얻을 때마다 "너희는 이집트에서, 곧 너희가 종살이하던 집에서 나온 날을 기억하라"(출 13:3)고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도 여호수아가 맨 처음 한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약속을 기억하라"(수 1:13)였습니다. 삼손이 들릴라의 간계에 빠져 힘을 잃고 죽기 전 블레셋 사람들의 신전을 무너뜨릴 때 그가 마지막으로 주께 부르짖으며 간구한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주 하나님,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삿 16:28)였습니다. 아기가 없던 한나가 주 앞에 나아와 흐느껴 울며 기도한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만군의 주님, 주의 종의 비천한 모습을 불쌍히 보시고 나를 기억하여주소서"(심상 1:11)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이방인의 포로가 되고 고통 속에 절규하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셨나보다"라고 탄식할 때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사 49:16)였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은 기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질타하셨습니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오천 명이 먹은 그 빵 다섯 개를 기억하지 못하느냐?"(마 16:9-10).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예수님이 내내 안타까워하신 것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또] 기억하지 못하는 것"(막 8:17-18)이었습니다. 실로 예수님은 기억과 믿음을 동일시하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빵을 떼어주시며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이것은 너희를 위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눅 22:19)였습니다. 주님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치던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는 주님의 말씀이 기억나서 심히 통곡했습니다(마 26:75, 막 14:72, 눅 22:61).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함께 달린 한 죄수가 예수님께 마지막으로 간청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였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새벽에 무덤에 올라갔던 여인들이 천사로부터 들은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눅 24:5-6)였습니다.

신약성서 가운데 거의 절반을 쓴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딤후 2:8)라는 한 구절로 자신의 메시지 전체를 요약합니다. 그는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나는 기도할 때마다 그대를 기억하면서, 언제나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몬 1:4)고 말합니다.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제국의 그 가혹했던 박해의 시절, 초대 그리스도인이 비밀리에 서로 나누던 인사말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였습니다.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죽음은 장차 다가올 미래의 일인데 과거의 일처럼 기억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또 그와 함께 살아나 영원한 생명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갈 2:20).

보십시오. 이렇듯 성서 전체에서 '기억'은 곧 '믿음'과 동의어입니다. 성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을 얻은 자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억해달라고 간청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 인간은 남에게 잊히기는 싫어하면서도 잊기는 잘하는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육신이 쇠약해져서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요즈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억을 잃어버리면 한 개인의 정체성은 무너집니다. 한 집단이 공동의 기억을 잃어버리면 하나의 세계가 붕괴합니다. 신앙은 '공동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불의와 억압으로부터 해방하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과 생명을 위해 행하신 그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런 '기억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따뜻한 기억, 그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기억, 그 '공동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만약 이런 '공동의 기억'이 없으면, 아무리 교인수가 많고, 아무리 새 예배당을 지어도,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는 붕괴하는 것입니다.

대학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어떤 공동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공동체입니까?

오늘은 이화창립 기념주일로 지킵니다. 오는 5월 31일은 이화가 이 땅에 태어난 지 132년이 되는 날입니다. 사실 이화의 역사 자체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한국역사 속에서 이화학당의 설립은 한국여성 근대교육의 서막을 알림과 동시에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조선여성들에게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심어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이화학당은 한국여성을 위한 근대여성 교육의 전당이었으며, 배움의 열망에 찬 여성들을 키워 나라의 일꾼으로, 민족의 봉사자로, 선각자로 길러낸 요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화의 역사는 단순히 이화만의 역사가 아니라 한국의 근대사이며, 교육사이며 또한 한국 여성사를 대변하는 것입니다."(『이화 110년사』 서문 중에서)

그런데 '이화'라는 공동체는 어떤 기억을 가진 공동체입니까? 어떤 공동의 기억을 나누는 공동체입니까? 132년 전 인습과 차별로 가득했던 이 땅에 하나님께서 한국의 여성들을 향해 베푸신 담대한 사랑을 기억하는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온갖 천대와 학대와 멸시와 하대를 당하던 이 땅의 여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담대한 사랑과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담대한 사랑'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 유약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로마제국이 멸망할 때 어떤 사람들은 유약한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 때문에 제국이 망했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강합니다. 사랑은 담대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고전 13:4)지만 사랑은 강하고 담대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위험을 무릅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위험을 무릅쓴 일입니다. 하나님이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십자가 위에 못 박히시는 일은 위험을 무릅쓴 일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위험을 무릅씁니다. 진실한 사랑은 자기를 버립니다. 사랑은 그렇게 강력한 것입니다. 사랑은 그렇게 담대한 것입니다. 한국 여성을 향한 하나님의 이 담대한 사랑의 기억이 '양화진외국인묘지'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습니다.

이대 앞에서 전철을 타시고 신촌역과 홍대입구역을 지나 세 번째 역인 합정역에 내리시면 도보로 5분에 양화진외국인묘지에 닿을 수 있습니다. 양화진(楊花津)은 한자로 버들 '양'(楊), 꽃 '화'(花'), 나루 '진'(津)으로 '버드나무 꽃이 활짝 핀 나루터'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노량진, 동작진, 한강진, 송파진과 함께 '서울의 5진'으로 불리던 서울의 관문입니다. 인천과 전국 각지를 연결하는 해상 통로의 전진기지였고, 외국인 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한국에 들어오는 길목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한국 개신교회의 성지입니다. 여기에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친 외국인 선교사와 그들의 가족 총 145명이 다른 이들과 함께 안장되어 있습니다. 양화진은 또한 한국 천주교회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건너편 봉우리 이름은 '사람의 목을 자른다'는 끔찍한 뜻의 절두산(切頭山)인데, 그 곳에서 1만 여명의 천주교 신도들이 참수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이화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일찍이 이화학당에서 헌신하신 이화의 스승 다섯 분이 모셔져 있습니다. 역순으로 소개해 봅니다.

먼저 엘리스 아펜젤러(Alice R. Appenzeller, 1885-1950) 6대 교장입니다. 아펜젤러 선생님은 한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서양아이로서 평생을 한국 여성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군산 앞바다에서 부친 아펜젤러 목사님이 물에 빠진 소녀를 구하고 순직할 때 그녀는 겨우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평생 인재 육성에 주력했던 그는 이화학당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문교육기관인 이화여자전문학교로 승격시켰습니다. 아펜젤러 선생님은 1950년 2월, 이화여대 채플 시간에 예배를 인도하던 중 뇌일혈로 쓰러져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이 이화에서 마지막으로 하던 설교의 제목은 "반석 위에 집을 지으라"입니다.

메리 R. 힐만(1870-1928) 선생님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한 나라에서 선교사로 일할 것을 기도한 부모의 뜻에 따라 19세기의 마지막 날인 1899년 12월 31일에 내한하여 여성을 위한 활동에 헌신하셨습니다. 특히 1910년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가 강제로 합병된 후에는 사경회를 열고 모세와 여호수아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하나님은 결코 조선을 버리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시키셨습니다. 선생님은 몸을 돌보지 않고 헌신한 탓에 건강이 나빠져 1928년에 과로로 사망했습니다.

조세핀 O. 페인(Josephine O Paine, 1869-1909) 선생님은 이화학당의 제3대 당장으로 1893년에 부임하여 15년 동안 이화를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페인 선생님은 재임 중에 나라가 튼튼하려면 몸이 튼튼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학생들에게 체조를 정규교과로 가르쳤습니다. 또한 미국 각지에서 기부금을 모아 지금의 본관 아름다운 건물을 신축하셨고, 이화학당에 중등과정을 개설하셨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뒤에는 이 조약의 부당성을 미국 조야에 알리는 데 힘쓰면서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당장을 사임하신 후에도 한국의 복음선교를 위해 헌신하시다가 1909년 해주에서 과로로 쓰러진 후 소천하셨습니다.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 의사 선생님 사진이 있습니다. 역시 의사인 남편 윌리엄 홀과 서울에서 만나 결혼하셨습니다. 홀 선생님은 특히 이화학당의 김점동 학생을 미국으로 유학시켜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로 육성했습니다. 또 맹인들을 위해 한글 점자법을 개발했고, 최초로 맹아학교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의 아들 셔우드 홀은 폐결핵 요양원을 세워 환자들을 돌보았으며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해 결핵퇴치운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곳 양화진에는 로제타 홀 여사의 가족 모두 7명이 묻혀 있습니다.

그리고 메리 F. 스크랜튼 선생님(1832-1909)입니다. 이화의 창립자입니다. 선생님은 53세라는 늦은 나이에 한국 선교사로 오셨습니다. 나이 때문에 망설였지만, 선교사로 임명 받은 아들 부부의 격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미지의 땅 한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왜 한국 선교사가 되려하는가? 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들과 함께 따르려 합니다. 우리는 안전하지도 않고 완벽히 한국어를 구사할 수도 없지만 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지혜보다 높은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1886년 5월, 지금으로부터 132년 전에 영어를 배우러 찾아 온 한 명의 학생을 가르치면서 이화가 시작됐습니다. 선생님은 '여성이 여성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선교방침으로 '여성에 의한 여성 교육'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국의 여학생들이 우리 외국인들의 생활양식, 의복, 환경에 맞추어 변화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만 한국인이 보다 나은 한국인이 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우리는 한국인이 한국적인 것에 대해 긍지를 갖기를 바라며 나아가 그리스도와 그의 교훈을 통해 완전한 한국인이 될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다음해인 1887년 이화학당 안에 최초의 여성전문병원이 세워졌습니다. 고종은 이 병원에 '보구여관'이라는 이름을 하사했습니다. 널리 '보'(普)에 구할 '구'(求), 즉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보편적으로 구한다는 뜻입니다. 이 병원이 지금 이화여대 부속병원의 전신입니다. 스크랜튼 선생님은 평생을 소외되고 고통 받는 한국의 여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을 전하면서 힘써 일하다가 1909년 10월 8일 이른 아침, 기도와 찬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향년 77세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후에 이화의 당장 서리를 맡으셨던 메리 힐만 선생님의 회고입니다.

"스크랜튼 대부인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장례식 날, 유해가 집을 떠나기 전에 궁에서 나온 관리가 찾아와 부인의 관 앞에서 세 번 절하여 마지막 경의를 표했습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수천 명이 모여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마지막 안식처로 향하는 그녀의 시신을 따라 이십 리 길을 열 지어 따라가는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땅에 자유, 사랑, 평화의 여성 교육이 열매 맺으니 이는 스크랜튼 선생님이 이화동산에 씨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스크랜튼 선생님은 어둠 속에 있던 한국의 여성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어 상처 난 영혼을 치료하고 소망을 갖게 한 최초의 여성 선교사요, 한국인들을 가슴에 품고 믿음과 사랑으로 양육한 우리들의 선생님, 스승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땅에, 풍토병으로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곳에, 목숨을 걸고 사랑의 복음을 들고 찾아온 스크랜튼 선생님의 사랑은 '담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스크랜튼 선생님 무덤 위 십자가 묘석에는 한 가운데 알파벳으로 "IHS"라 쓰여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가 아니라 그리스어입니다. "I"로 보이는 것은 '이오타', "H"로 보이는 것은 '에타', "S"로 보이는 것은 '시그마'입니다. 고대 그리스어 '이에수스'(ΙΗΣΟΥΣ)의 앞 세 글자입니다. 즉 '예수'입니다.

김옥길 전총장님이 채플 설교 중에서 스크랜튼 선생님에 대해 한 이야기입니다.

"무엇 때문에 스크랜튼 여사는... 오랜 시간을 배를 타고 고생을 해야 하는 모험도 그런 모험이 없는 그 시절에, 어찌하여 한국 땅을 찾아왔으며 호열자[콜레라]로 앓아서 죽게 된 아이들을 데려다가 그것을 고쳐주고 길러서 가르치기까지 하였을까요.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한 가지는 그가 '예수를 믿은 사람'이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예수를 믿고 의지하고 자기의 결심을 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사실이 제일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앉아 있는 이 [건물]도 언젠가는 무너질 것입니다. 수 십 년을 들여 공들여서 지었던 예루살렘의 솔로몬의 성전도 무너졌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 중에 무너지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와 더불어 작정하는 결심입니다. 스크랜튼 여사의 이러한 결심 때문에 이화가 시작이 되었습니다."(1976.5.12., 이화여대 신앙강조주간 예배 설교 중에서)

스크랜튼 선생님의 묘지 위 세 글자 '예수'는 바로 이화라는 이 커다란 집이 지어진 반석이고 주춧돌이었습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기억이 힘입니다. 기억이 믿음입니다. 기억은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관념이 아니라 우리를 움직이는 구체적인 힘입니다.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신비한 힘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입니다. 오늘 읽은 구약성경말씀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본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한국의 여성들을 출애굽의 은총으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우리가 본 큰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람 스크랜튼 선생님과 다른 많은 선생님들을 통해 보여주신 그 담대한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그 사랑을 기억하는 공동체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복 주실 것입니다. 예수라는 구원의 반석 위에서 번영하고 번창하도록 큰 복을 주실 것입니다. (2018.5.27.)

이인기 ihnklee@veritas.kr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해 창조 신앙 무력화돼"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신앙이 사사화 되면서 연대 책임을 물어오는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현실 앞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마가복음 묵상(2): 기독교를 능력 종교로 만들려는 번영복음

"기독교는 도덕 종교, 윤리 종교도 아니지만 능력 종교도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실존적 현실이 때때로 젖과 꿀이 흐르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