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그리스는 예뻤다(2)

유연희 (감신대 외래교수)

편집자 주] 구약학회는 지난 7월 9일부터 16일까지 7박 8일 간 그리스를 탐방했다. 탐방에 동반한 유연희 교수가 여행기를 보내왔다. 유 교수의 납량(納凉) 기행문을 읽으며 지중해 연안을 함께 다녀보자. 기행문은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크레타 섬

옴팔로스
(Photo : ⓒ 테마세이투어)
▲지구의 중심을 표현한 옴팔로스

영토의 20%가 섬인 그리스에서 크레타는 가장 큰 섬이다. 지중해에서 5번째로 큰 섬이고 제주도보다 4배가 크다. 무엇보다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미노아 문명이 꽃피운 곳이다. '유럽'의 어원, '에우로파' 신화가 나온 곳이다. 제우스는 페니키아 공주인 에우로파를 보고 반해 하얀 황소로 변신해서, 에우로파를 등에 태우고 놀다가 지중해 건너 크레타 섬에 정착했다는 신화이다. 크레타는 로마, 아랍인, 베네치아, 터키 오스만제국 등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고, 1912년에 그리스와 합병되었다.

우리는 이라클리온 항에 도착한 직후 크레타 출신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의 무덤을 먼저 방문했다. 카잔차키스는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미할리스 대장,' '성자 프란체스코' 등을 썼다. 그의 작품에는 자유로운 크레타 사람들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어서 정교회가 불편하게 여겼다. 어린 신학생 때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읽으며 예수와 마리아의 청춘관계를 다룬 부분에 대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카잔차키스는 내부부장관, 복지부장관을 역임했고, 두 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였지만 수상을 못했다. 무덤은 이라클리온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었다. 화려한 무덤을 원치 않는다는 유언에 따라 투박한 돌단과 십자가가 전부였고, 관광객이 주위에서 따다 둔 작은 유도화가 있었다. 우리는 크레타 출신 가수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를 들으며 유적지로 이동했다.

크레타의 유적으로는 크노시스 궁전이 남아있었다. 신화 속 제우스와 에우로파의 세 아들 중 큰아들이 미노아 문명(기원전 3650년경-1170년경)의 전성기를 이끈 미노스 왕이다. 크노소스는 미노스 왕국의 수도였다. 궁전은 160-170m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에, 2-5층의 건물은 '미궁'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1400여개의 방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다. 궁전과 별궁, 신하들의 주거 공간, 일반 주택, 사제들이 있던 제단, 금속과 석재 가공소, 곡물 저장소, 수세식 화장실, 벽화와 도기 등 화려한 해양문화가 있었다. 궁전을 중심으로 반경 2㎞ 주변에 8만여 명이 거주했다고 한다. 황소 머리 모양, 공주들의 벽화가 인상적이었다. 다만 유적지는 영국 고고학자 에번스가 발굴과 복원, 연구에 힘썼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관적으로 복원을 시도하며 상당부분을 훼손했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지 못했고, 나도 보면서 어디까지가 원래 모습인지 안타까웠다. 박물관에서 4천 년 전에 존재한 크노소스 궁전에서 나온 그릇과 잔, 무기, 다양한 금 장신구, 가슴을 드러낸 채 뱀을 들고 있는 여신상, 역동적이고 화려한 색채의 벽화 원본을 보며 눈호강을 했다.

점심에는 양고기 스테이크, 작고 뾰족한 야생 올리브, 성글고 작게 열린 녹색 포도를 맛나게 먹었다. 오후에 휴식을 하니 피곤이 좀 풀렸다. 그간 '도시락'을 싸오지 않아 데이터 거지로 살다가 호텔에서 인터넷을 하니, 크레타 문명인이 아닌 이 현대 문명인이 아주 살 것만 같았다. 집 소식을 듣자니, 냥이는 엄마가 없어서 이틀쯤 식음을 전폐하다가, 남편에게 알랑방구를 뀌며 적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녀석은 좀 영재라서 거울도 볼 줄 알고, TV의 새나 공을 잡으려고 반응한다. 홈스쿨링을 잘 시켜서 하버드에 보내려 한다고 내가 자랑질하는 러시안 블루 냥인데, 유기동물센터에서 어떻게 이런 녀석이 우리 품에 왔나 모르겠다. 관광객 식탁 옆에 앉아 올려다보며 인내심 있게 먹을 것을 기다리는 냥이를 보자, 울 냥이가 많이 보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유적지에 가도 늘어지게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개와 고양이를 볼 수 있다. 사람들의 괴롭힘을 겪지 않았는지, 누가 지나든 말든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오수를 즐겼다.

한국 친구들은 카톡으로 방탄커피 다이어트의 성공 사례를 알려왔다. 본인은 기미가 사라졌고, 남편은 배가 쏙 들어갔고 아들이 3주 만에 5키로가 빠졌다는 둥 보고한다. 다음 모임까지 함께 그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숙제였는데 나는 그리스에서 최선을 다해 먹느라 폭망했다. 그래도 질세라, "저는 시방 그리스임다. 지중해식 만찬을 마다하는 것은 여행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합리화를 하기로 했습니다"고 했다. 답변은, "그리~~~스? 지중해식 만찬? 부럽슴다"라고들 했다. 난 잠시 의기양양했지만 속으로는 찔려서 '한국 가서 꼭 살 빼야지'라고 생각했다.

저녁에는 어슬렁거리며 시내 구경과 더불어 디도교회에 갔다. 크레타는 어디든 관광객으로 북적거렸다. 교회는 바닷가로 이어지는 대로변에 있었다. 정교회는 마을의 중심이며 사람들이 하루 한번쯤 들른다더니 어린이들이 예배당 안까지 들락거리며 놀고 있었고, 그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디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크레타에 왔다가 디도에게 크레타 사역을 맡겨서 생겼다. 성서에는 "그레데(크레타)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디도서 1:12)라고 나온다. '어떤 선지자'의 개인적인 판단이 성서에 실려 영원히 남겨진 것은 크레타 사람들에게 정당하지 못하다. 디도는 그런 평판을 뛰어넘어 사역했고, 정교회는 최초의 감독이라고 하고, 오늘까지 기념되고 있다.

산토리니(씨라) 섬

크레타에서 하룻밤 묵은 후 다음 날 아침에 배로 두 시간 쯤 타고 산토리니로 이동했다. 역시 지진이 발생했던 섬이라 83%가 물속에 잠겨 있다고 한다. 크기는 크레타의 110분지 1에 불과하고 만 명의 주민이 200만 명의 관광객을 상대하는 곳이다. 물론 휴가철에는 사람들이 그리스 본토는 물론 유럽에서까지 와서 일을 한다고 한다. 크레타 현지인들은 주로 관광에 종사하고, 일부는 포도농사를 한다. 포도는 조합으로 생산하고 재래식 포도 맛과 향을 일률적으로 만든다고 한다. 포도나무가 아닌 포도넝쿨이 땅바닥에 널브러져 돌돌 말린 식의 농사였고 온 섬에 가득했다.

산토리니의 여러 마을 중에서도 중심지인 피라와 이아마을을 방문했다. 이아는 그리스의 상징 색인 하양과 파랑으로 건물을 칠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교회들의 지붕이 파랗다. 절벽에 통일성 있게 지은 집들이 특이하다. 소상인만 입점하도록 규제가 있어서 올망졸망한 상점들이 좁은 골목을 따라 늘어서 있다. 작은 교회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이웃 어떤 사람이 안 된다고 막는다. 개인 교회라는 것이다. 고인을 기념하여 가족 교회를 종종 짓는 게 풍습이라고 해도, 교회 앞에서 사진도 못 찍게 하다니 그 사람이 인색하다고 생각했다.

점심식사는 주로 튀김 일색이어서 놀랐다. 문어와 한치는 구웠지만, 새우, 호박, 감자, 생선이 모두 튀김이어서 '거참, 이 더위에 튀김 잔치라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후식으로 꼬마 아이스크림 바가 나와, 나는 음식 궁합의 달인인양 '튀김과 상극 아닌가'고 속으로 불평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하도 잘 얻어먹어서 불평꺼리도 되지 않았다.

일행 중 처음 대화한 사람과 산토리니 이아마을을 걸었다. "이번 여행에서 무엇이 젤 즐겁나요?"라고 묻자,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 기대가 컸어요. 물론 만남에는 실망과 상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난 사람들과 만나는 게 좋아요." 뜻밖의 대답이었다. 단체관광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다니, 나는 좀 낯선 환경, 낯선 경험을 기대하는 편이라, 신선하게 들렸다.

피라마을에 있는 가톨릭성당에 들어가보았다. 놀랐다. 지금껏 본 정교회와 내부도 건축양식이 똑같다. 기도 제목의 촛불을 켜서 꽂는 입구, 중앙의 큰 샹데렐라, 아이콘으로 빽빽한 벽과 천장, 천장 복판의 예수 그림, 지성소 등 물리적으로 똑같았다. 98%가 정교회이고 개신교는 2만 명, 가톨릭도 소수이다 보니 정교회와 비슷해야 살아남기 좋았을 것이다.

해가 8시 37분에 진단다. 석양을 보려면 꽤 기다려야 했다. 그리스 사람들은 무리가 큰 소리로 떠들며 대화하는 것이 문화이고, 3대 스포츠가 축구, 농구, 이바구라니 우리도 적극 이바구를 하며 석양을 기다렸다. 절벽에 총총 지은 하얀 집들과 파랑 지붕의 교회를 붉게 물들이며 해가 바다로 졌다. 오랜만에 석양을 보았지만 한국 석양과 무엇이 다르랴. 다만 석양을 보겠다고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골목과 마을을 가득 메운 것이 진풍경이었다.

우리는 호텔이 있는 피라마을로 돌아와 저녁을 10시에 먹었다. 1학년부터 고3까지 학교도 2시에 마치고, 공무원도 2시에 퇴근하여 늦은 점심과 오수를 즐긴 후 저녁은 늦게 먹는다는 그리스 사람들처럼 드디어 우리도 한밤에 저녁을 먹은 것이다. 과연 식당은 초저녁인양 북적거렸다. 신선한 샐러드와 굵직한 문어발 스테이크는 만 8천 걸음으로 지친 하루를 잘 어루만져주는 식단이었다.

델피

다음 날 산토리니 공항에서 아테네로 한 시간 날아갔다. 국내선에서 물 한잔 주더니 사탕을 주었다. 그게 끝이었다. 작은 사탕 한 개뿐이라니, 무슨 깊은 뜻이 있을지도 ....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약 370㎞ 떨어진 메테오라를 향해 가는데 종일 걸렸다. 중간쯤에서 델피 성소에 들렀다. 창밖은 줄곧 산과 들 뿐이고 차량도 별로 없었다. 핀도스 산맥 끝자락의 테살리아 평야, 그리스 제 1 곡창지대라고 한다. 그리스는 산, 강과 하천 등 신화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또한 학교에서 신화와 역사를 열심히 가르친다고 한다. 그래서 "발굴되면 역사이고, 발굴되지 않으면 신화"라고 한다. 창밖 풍경은 질리지가 않았다. 누군가 혼잣말을 했다. "이런 경치,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것 같아." 정말 그랬다.

파르나소스산 동쪽 비탈 900미터 높이에 지은 델피 성소는 풍수지리적으로 뛰어나다. 뒤로 바위산 병풍이 둘러서 있고, 앞으로 평야가 있고 맞은편에 또 산맥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델피(델포이) 성소는 고전기 그리스 시대 가장 중요한 신탁이었던 델포이의 신탁이 이루어진 곳이자, 여기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땅의 배꼽 옴팔로스가 놓여있던 곳이다. 신화에 따르면 원래 델피는 대지의 모신인 가이아가 남성 없이 낳은 아들 피톤의 신탁 성소 피토였다. 아폴론이 이 신탁 성소를 차지하려고 거대한 흑뱀인 피톤을 죽였고 그 후 아폴론을 숭배하는 주요 성소가 되었다. 아폴론은 가이아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고 8년마다 피톤의 죽음을 애도하는 피티아 제전을 열어 경기와 제물을 바쳤다. 내 귀에는 가이아와 아폴론 얘기가 여신과 남신의 대결, 권력의 교체 얘기로 들렸다. 어쨌든 이곳에서 기원전 586년부터 4대 범그리스 경기 중 하나인 피티아 경기가 열렸다.

신탁 성소의 이름이 델포이로 바뀌었어도 신탁을 주관하는 무녀(시빌)는 피톤에서 딴 피티아라는 호칭으로 계속 불렸다. 가이아의 뿌리 깊은 전통을 없애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폴론의 신탁은, 피티아가 신전 지하의 아티톤 성소에서 신성한 샘물이 흐르는 곳 위에 트리푸스(삼발이 의자)에 앉아서 받았다. 바위틈에서 나오는 증기를 마시고 월계수 잎을 씹어 먹고 몽롱한 상태가 되어 수수께끼 같은 말을 중얼거리면 신관이 적었고, 신탁 내용을 절대시했다고 한다. 수수께끼 같은 말은 지혜로운 방책이다. 신탁이 틀렸다고 하면, 해석이 틀린 거라고 받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 지질학자들은 흙 속 에틸렌이 환각효과를 일으켰을 것이라고 밝혔다. 무녀 역할은 원래 젊은 여성이 했다가, 여러 문제가 발생하여 후에는 50세 이상의 여성이 맡게 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폴론의 신탁을 받기 위해 원근 각처에서 몰려들었고, 먼저 신탁을 받으려고 다양한 연줄과 봉헌품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신전과 경기장까지 높은 산악지대에 지은 것은 그렇다 쳐도 교통 사정도 좋지 않은 고대에 많은 이들이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도 가이아의 정기에 취해서 신탁이 나오려고 했다. '한국은 5년 내로 통일이 될 거야. 내년에 평화조약을 맺거라.' '열심히 살지 마라.'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쓰지 말고 막 살아라.' 복채가 없으니 술술 나오진 않았다.

아폴론 신전 벽에는 노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기록된 법의 중요성을 존중하고 지키는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 벽에는 "너 자신을 알아라," "뭐든 적절하게 하라," "서로 달라도 조화를 이루어라"라는 말이 적혀 있다고 한다. 분명한 말이지만 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수께끼 같은 말이다.

델피에는 아폴론 신전만이 아니라, 청동 뱀기둥, 아테네 신전, 시장, 도시국가들이 신에게 바친 보물을 두는 보물창고들, 반원형 극장, 1km 더 위쪽에 있는 경기장도 있었다. 지진을 견뎌내기 위해 퍼즐 구조로 쌓은 돌담과 그 담벼락에 적혀 있는 오랜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신전 앞에서 열매 달린 아몬드 나무를 본 것도, 박물관에서 많은 유물 중에서도 잘 보존된 스핑크스, 젊은 여성 머리에 사자 몸에 날개가 달린 신화적 생물을 본 것도 수확이었다. 그리고 아기를 업고 혼자 여행 온 젊은 여성이 정말 좋아보였다.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스파게티로 끝날 줄 알았더니 메인으로 돼지고기 스테이크와 감자튀김이 나왔다. 그리스인들이 즐겨 마신다는 아이스커피, 프라페는 어찌나 쓴지 나도 그리스인들처럼 종일 물을 부어가며 마실 수 있겠다. 먹는 재미는 여행 동안 중요한 덤이었다. 또 다른 휴게소에서는 신선한 석류주스와 그리스 전통 과자, 하얀 크리스마스 쿠키를 단체로 먹었다. 그리스를 좀 아는 사람들이 전통과자 바클라바를 많이 먹고 오라고 한국에서 문자를 보내와서 좀 챙겼다.

그리스인들은 밀, 기름, 포도주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한다. 올리브가 46종이나 되고, 그리스는 75%가 엑스트라 버진오일이다. 스페인이 세계 최다 생산지이지만, 단위면적당 최다 생산과 일인당 최다 소비가 그리스이다. 유럽에서 성인병이 가장 적다는 게 올리브유 소비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올리브유로 볶고 튀기고 지지고 다 한다니 올리브유를 사지 않을 수 없다. 한국서 해외 직구하는 것보다 관광지인데도 여기서 사는 것이 30-40%는 싼 듯하다. 올리브 비누와 올리브나무로 만든 도마 등도 관광상품으로 유명하다. 공항에서 올리브유 같은 액체류는 짐 속에 넣어 부쳤어야 하는데, 기내 캐리어에 여러 병 가져온 사람 때문에 검색대에서 해프닝이 벌어졌다. 우리 일행은 아니었고, 웬 젊은이였는데 막무가내여서 결국 따로 사무실로 가야 했다.

우리 중 카메라 담당이자 신진학자로서 세계 30개국을 다닌 여행의 왕자, 보수적인 합동 교단 배경으로서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회원이 호주에서 겪은 일을 들려주었다. 공항에 내리는데 방송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더란다. 따로 불려가서 들으니, 부치는 짐에 생선을 넣어왔다고, 내장도 훤히 보인다고, 이건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야단이었단다. '거참 이상하다, 그런 거 없는데'하며 가방을 열었는데, 거기서 먹다 남아 넣어둔 붕어빵 3개가 나왔다. 내장까지 보였다고. 단팥 내장. 우하하.

메테오라에 가는 도중에 해발 1,000m 높이에 있는 아라호바 마을을 지나갔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중 송송 커플이 키스한 장면을 찍었다는 곳이다. 우리는 귀찮아서 들르지 않겠다고 했다. 막상 버스가 그 마을을 지나자 좀 후회가 되었다. 그리스의 전통 가옥들, 오래된 동네가 너무 근사했다. 연인과 관련된 뽕나무 신화 때문에 웬만한 카페는 꼭 뽕나무 아래 있다더니 정말 아름드리 뽕나무를 끼고 있는 카페도 보였다. 멀리 이 꿈같은 마을을 배경으로 인생샷 하나를 건졌다는 데서 위로를 받기로 했다.

메테오라의 거점 도시인 인구 만 2천명의 작은 도시, 칼람바카에 밤에 도착했다. 저녁식사 후 밤이 아쉬워 동네를 거닐었다. 카페, 식당, 선물의 집, 보석가게 등이 줄지어 있었고 관광객을 상대하는 작은 동네였다. 우리 몇은 카페에 앉아 노닥거리며 "여기선 밤하늘의 별도 이렇게 많이 볼 수 있구나" 했다. (계속)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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