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민주적 회중주의(1)

김승진 목사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김승진
(Photo : ⓒ 침례교신학대학교)
▲김승진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편집자 주] 우리나라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충분히 민주적인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실제 교회생활에서 평등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가? 본고는 이 의문과 관련하여, 어떻게 교회가 보다 민주적으로 운영되며 교회구성원들도 보다 평등한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평신도들의 적극적이고 책임적인 참여가 현실화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제언하고 있다. 내용은 5회로 나누어 전재될 것이다.

I. 프롤로그

우리나라 프로테스탄트(개신교) 교회들은 충분히 민주적인가? 하나님의 백성들로 이루어진 교회들이 세상정치에 비해서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한 행정을 실천하고 있는가? 교회의 정치가 세상의 정치를 보다 민주적인 방향으로 선도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의 정치에 뒤쳐져서 비민주적인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가? 담임목사들이 협력을 전제로 한 건전한 개인주의와 평등한 민주주의 의식으로 그 인격이 성숙해 있는가? 교회들 내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평신도들과 여성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가? 신본주의라는 이름으로 교회의 행정과 정치가 목회자들에 의해 독점적으로 장악되어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실제 교회생활에서 평등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가?

우리나라의 개신교 기독교계에서는 소수의 교회지도자들인 장로들에 의해 운영되는 장로교회와 감독에 의한 수직하향적인 행정이 이루어지는 감리교회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들에게는 아직까지 회중주의적인 민주적 교회행정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인들의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인 정서에 걸맞지 않아 보이는 면도 없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주권재민 사상과 건전한 개인주의와 평등한 민주주의 사상이 국민들 사이에 편만하게 확산되어 가면서 우리나라의 세속정치가 민주주의로 성장하고 성숙해 가게 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동등하게 권익을 누리고 책임을 지는 체제로 점차 변화되어 왔다. 마찬가지로 지역교회(개교회, Local Church) 내의 정치와 행정도 그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여 그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실천하는 민주적 회중주의에 대한 관심도 점차 고조되고 있다.

침례교회는 영국의 분리주의자들(English Separatists)로부터 연유한 교회였다. 이들은 영국의 국가교회(State Church)였던 영국국교회(Anglican Church, 성공회, Episcopal Church)로부터 뛰쳐나와 독립된 교회를 이루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중도노선(Via Media)으로 인해서 영국국교회는 로마가톨릭교회와 대륙의 프로테스탄트교회들 간의 타협으로 말미암은 교회를 이루게 되었기 때문에, 성서로부터 참 교회의 모습을 발견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영국국교회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것이다. 분리주의자들의 교회들 가운데 침례교회의 모체가 되었던 교회들은 게인즈보로교회(Gainsborough Church, Gainsborough, Lincolnshire, 1609)와 제이엘제이교회(JLJ Church, Southwark, London, 1638)였다. 구원론에 있어서 전자는 일반속죄설(무제한속죄설, General Atonement)을 취했기 때문에 일반침례교회(General Baptist Church)라고 불리게 되었고(H. Leon McBeth, The Baptist Heritage: Four Centuries of Baptist Witness [Nashville, TN: Broadman Press, 1987], 32-9), 후자는 특수속죄설(제한속죄설, Particular Atonement)을 취했기 때문에 특수침례교회(Particular Baptist Church)라고 불리게 되었다(Ibid., 39-44).

최초의 영국 침례교인들은 1609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신자의 뱁티즘을 채택하여 새로운 교회를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영국 땅에서 회중주의자들(Congregationalists)이었다(Winthrop A. Hudson, "Who Were the Baptists?," Baptist Quarterly 16.7 [July 1956]: 305). 이들은 신자에게만 뱁티즘을 베풀고 뱁티즘을 받은 신자들로만 이루어진 교회를 이상으로 생각하였다. 그것은 바로 초대교회 즉 신약성서적 교회의 모습이었다. 이후 침례교회들은 지역과 나라와 문화에 따라 양상은 조금씩 달랐지만, 민주적 회중주의(Democratic Congregationalism)를 교회행정의 기본원리이자 이상으로 삼고 있는 교회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김승진, 『영·미·한 침례교회사』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2016], 127-8).

본고에서는 회중주의에 대한 정의, 신약성경에서 이루어졌던 회중주의적 행정의 예들, 침례교인들이 그러한 행정체제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신앙적인 특수성 등에 관해 살펴본 후에, 어떻게 하면 한국적인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보다 민주적이며 교회구성원들 간에 보다 평등한 교회를 이룰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평신도들의 적극적이고 책임적인 참여가 현실화되도록 할 것인가 하는 점에 관하여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II. 회중주의란 무엇인가?

흔히 교회는 인본주의(人本主義)가 아니라 신본주의(神本主義)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신본주의는 하나님 중심주의,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교회가 운영되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며 그 뜻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교회를 운영하기 위한 방법으로 세 가지 유형의 정치형태들이 존재해 왔다. 감독정치와 장로정치와 회중정치가 그것이다.

"감독정치"는 성직계급(hierarchy)을 전제로 하여 최상위의 지도자가 권위를 가지고 인사권, 행정권, 통치권을 갖는 정치이다. 로마가톨릭교회, 희랍 및 러시아 정교회, 루터교회, 영국국교회, 감리교회 등에서 행하는 정치형태이다. "장로정치"는 간접민주 주의 혹은 대의민주주의 정치인데, 지역교회에서는 장로들로 당회를 구성하여 교회의 주요 정책과 계획을 결정하고 집행한다. 과두적(寡頭的) 민주주의 정치라고 볼 수 있는데, 장로교회를 비롯한 개혁교회에서 주로 행하는 정치형태이다. "회중정치"는 지역교회를 구성하는 교회회원들이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치적(자율적)으로 하나 님의 뜻을 분별하여 결정하고 운영하는 정치인데, 대체로 침례교회를 비롯한 자유교회 전통 속에 있는 교회들에서 행하는 정치형태이다(Darrin Koehler, "Congregationalism vs Episcopalianism vs Presbyterianism," http://www.theologynotebook.com/congregationalism-vs-episcopalianism-vs-presbyterianism/, 2018년 9월 5일에 접속).

침례교회는 "회중주의," 부연하면 "민주적 회중주의," 조금 더 부연하면 "그리스도 중심적인 민주적 회중주의"(Christ-centered Democratic Congregationalism)에 의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따라 교회를 이끌어가는 교회이다.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원의 역사신학 교수였던 제임스 개럿(James Leo Garrett, Jr.) 박사는 회중주의적 정치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회중주의적 정치"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에서(Christocracy, 그리스도에 의한 통치), 성령님의 지도력을 따라(pneumatophoria, 성령님의 인도하심), 어떤 상위의 혹은 권력을 가진 교회기구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autonomy, 회중의 자치 혹은 자율), 회중을 구성하는 회원 각자가 교회의 일과 교회의 결정에 목소리를 내면서(democracy, 민주주의), 회중이 스스로 통치하는(the congregation governs itself) 정치를 말한다(James Leo Garrett, Jr., Systematic Theology: Biblical, Historical, and Evangelical, second ed. [North Richland Hills, Texas: BIBAL Press, 2001], 2:644).

다시 말해서 "회중주의 정치"란 지역교회를 구성하는 교회회원들이 외부 기관들, 즉 국가나 시나 다른 유력한 큰 교회나 기독교 단체나 심지어 교단 내의 지방회나 노회나 총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오직 그 교회의 머리와 주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자신의 지역교회 문제를 스스로 자율적으로 결정하고(self decision-making) 운영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교회 내의 인사문제, 예산과 결산 등 재정문제, 교회건물과 토지의 관리 및 처분, 새로운 담임목사의 청빙, 교회의 목회나 선교정책의 수립, 교회 내부의 갈등이나 도덕적인 문제의 해결 등 교회생활의 모든 양상들에 대해서, 각 지역교회를 구성하는 회중(Congregation, 신자의 뱁티즘을 받은 교회회원들, Baptized Believers)이 스스로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원리를 민주적 회중주의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는 "민주적 회중주의"라는 말 앞에 "그리스도 중심적인"(Christ-centered)이란 말을 붙였다. 교회는 사람들만의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세속정치와는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교회는 그리스도를 구주요 주님으로 모신 신자들의 영적인 공동체이다. 뱁티즘 받은 신자들은 그 교회를 구성하는 회원들이다(고전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들이라").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지체들과 몸은 생명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회에서 민주주의(Democraticism)를 말할 때에는 사람들만의 다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을 기꺼이 따르고자 하는" 신자들의 다수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민주주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신적인 민주주의"(Theo-democraticism)이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민주주의"(pneumatophoria)요,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정치"(Christocracy)이다.

III. 회중주의 행정의 신약성서적 실례들

사실 신약성경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모든 신자들의 공동체인 천상적인 개념인 "우주적 교회"(Universal Church)와 지상의 일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모이는 신자들의 공동체인 "지역교회들"이 있었다. 이 둘 이외에는 지방회나 노회나 총회나 연맹 등 지역교회들을 묶어주는 연합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각 지역교회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했고 필요하다면 상호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하였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교황이나 총대주교나 주교나, 총회 산하의 지역교회들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의미의 감독이나 총회장이나 노회장이나 지방회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교회들은 모두 지역교회들을 가리켰고 사역자들은 그 교회를 섬기는 일꾼들이었다. 신약성경에서 지역교회의 자치권(자율권)과 회중주의적 행정(Congregationalistic Administration)이 이루진 몇 가지 대표적인 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죄를 반복적으로 범한 형제에 대한 치리

(마태복음 18:15-20)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본문은 예수님께서 죄를 반복적으로 범한 형제에 대해서 그를 어떻게 죄로부터 돌이켜 다른 형제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것인가에 관하여 교훈하신 내용이다. 죄를 범한 형제가 발견되면 은밀하게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랑의 마음으로 권면을 할 것이고, 만약 권면을 듣지 않으면 두세 사람이 함께 찾아가서 그와의 대화를 통해 죄로부터 돌이키도록 도우라고 말씀하셨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그들의 말도 듣지 않는 경우에는 최종적으로 "교회에 말하라"고 말씀하셨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18장 17절의 "교회"는 에클레시아(ekklesia), 즉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자들"이라는 의미이며, 많은 주석가들은 지역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James Leo Garrett, Jr., "The Congregation-Led Church: Congregational Polity," in Perspectives on Church Government: Five Views of Church Polity, eds. Chad Owen Brand and R. Stanton Norman [Nashville: Broadman & Holman, 2004], 176.). 그 죄가 얼마나 무겁고 큰 죄인지는 모르지만 공동체에 상처를 줄만큼 심각한 죄를 범한 성도에 대하여, 우선은 비공식인 방법을 통하여 권면을 하고, 그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에는 공식적인 절차로서 "교회에 말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교회 공동체로부터의 교제금지(Ban) 혹은 출교(Excommunication)를 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심각한 죄를 범한 성도의 치리에 있어서 지역교회 회중(Local Congregation)이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고 교회 스스로 자체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Mark Dever, Nine Marks of a Healthy Church, rev. ed. [Wheaton, Ill.: Crossway Books, 2004], 221). 신약성서 시대에는 노회나 총회도 없었지만 그러한 기관들이 운영하는 재판국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역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그 지역교회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자체적으로 해결하였다. 이를 침례교회에서는 "지역교회 자치주의"(Autonomy of the Local Church, "개교회주의"라는 말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 말은 개교회이기주의라는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 혹은 "지역교회의 자치권(자율권)"이라고 부른다.

2. 교회일군들의 선택과 안수

(사도행전 6:1-6)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그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사도행전 6장 전반부에는 최초로 지역교회 내에서 평신도 지도자들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루살렘교회에서 행하던 구제사역에서 불평하는 소리가 나오게 되었고 성도들의 교제에 큰 균열이 발생하게 되었다. 히브리파 유대인 신자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헬라파 유대인 신자들의 과부들에게 구제의 혜택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때 사도들은 자신들이 우선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본업인 "기도하는 일과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제쳐 놓고 구제사역에 신경을 써야 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이 일을 감당할 평신도 지도자들을 세웠다. 예루살렘교회에서 최초로 일곱 명의 안수집사들이 평신도 지도자들로 세워진 것이다.

2절에서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들을 불러 이르되"라고 했고, 3절에서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했고, 5절에서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 일곱을 택했다고 했다. 6절에서는 "온 무리"가 일곱 사람들을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라고 하였다. 여기서 "모든 제자들," "너희," "온 무리" 등의 표현은 에루살렘교회 회중을 의미한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Lordship)에 따라 지역교회 회중이 주체가 되어 사도들로 하여금 구제사역을 위한 일군들을 선택하여 임명하도록 한 것이다. "온 무리," 즉 교회 회중이 일곱 사람들을 택했고, 그들을 안수하도록 사도들에게 그 권한을 위임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역교회 회중의 최종적인 권위에 따라서, 교회일군들의 선택과 안수와 임명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사도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Ibid., 222).

3. 세계선교사역의 결정과 선교사들의 파송

(사도행전 13:1-3)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그들이-필자 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그들이-필자 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본문은 안디옥교회에서 바울의 제1차 세계선교사역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잘 묘사해 주고 있다. 안디옥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바나바,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 구레네 사람 루기오,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사울)이 있었는데, 그들이 주를 섬기며 금식하는 중에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다.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2절)는 말씀은 안디옥교회의 전체 회중 가운데에서 특별히 두 사람을 성별하라는 것이었다(Garrett, "The Congregation-Led Church," 164). 성령님께서 안디옥교회를 향해 사명을 주셨는데, "내가 불러 시키는 일," 즉 그 당시의 세계선교 사역을 맡기시겠다는 것이었다.

3절에 "이에 (그들이-필자 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고 했는데, 여기서 "그들"은 문자적으로는 1절에서 언급한 "선지자들과 교사들" 다섯 명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그 배후에는 안디옥교회 회중의 위임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안디옥교회의 세계선교사역이 다섯 명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교회회중 전체의 선교를 위한 헌신과 공동체적인 기도와 "공적인 인정으로서의 안수"(Ordination as a Public Recognition)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바나바와 사울이 따로 세움을 받고 안수를 받고 "보냄을 받은" 것은 궁극적으로 안디옥교회 회중의 권위와 책임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R. Stanton Norman, The Baptist Way: Distinctives of a Baptist Church [Nashville: Broadman & Holman, 2005], 90.). 안디옥교회라고 하는 지역교회가 주체가 되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최초의 세계선교 사역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계속)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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