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거위의 꿈"

장윤재 목사 (이화대학교회)

- 예레미야 20:7-9, 고린도전서 11:23-26, 요한복음 8:3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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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1주년을 맞이합니다. 작년에 뜻 깊게 '500주년'을 기념했는데 어느새 1자가 하나 더 붙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루터를 넘어가야 합니다. 종교개혁의 더 깊은 근원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사실 루터의 신학에는 몇 가지 난제가 있습니다.

 

첫째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루터의 가르침은 많은 교회들 안에서, 특히 오늘의 한국교회 안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는 문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루터는 하나님의 호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인간의 모든 선행이 죄라고 가르쳤고, 행함을 강조하는 야고보서를 신약성서에서 아예 빼려고도 했습니다. 이 문제는 '예수는 잘 믿는다'고 주장하는데, 예수를 따라서는 살지 않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둘째로, 루터신학의 역사적 불철저성도 여전히 논쟁거리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루터는 독일의 농민들이 교회의 개혁뿐만이 아니라 봉건적 사회의 개혁도 요구하자 영주들에게 이들을 '미친개'처럼 "때리고, 죽이고, 찌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셋째로, 루터신학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반유대주의'의 문제입니다. 루터는 평생 동안 매우 공개적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적대감을 표명했습니다. 그들의 가옥과 회당을 불사르고, 재산과 돈을 몰수하며, 독일의 전 영토에서 그들을 추방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불행히도 루터의 이런 가르침은 1930년대와 40년대 독일에서 나치의 유대인 공격과 학살에 명분과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히틀러의 제3공화국에서 발행된 반유대인 선전책자 안에는 거의 모두 루터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나치는 가톨릭교도들보다 개신교도들, 즉 루터교도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큰 표를 받아 집권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넷째로, 루터의 '두 왕국 이론' 역시 문제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온 세상의 통치자이지만 법과 복음이라는 두 가지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즉 세속정부를 통해 칼과 법을 가지고 '땅의 왕국'을 다스리시고, 복음을 통해 '영적 왕국'을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지상의 왕국과 하늘의 왕국을 분리하고 나면 그리스도인들은 굳이 역사나 사회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여러 종교개혁들 중 하나였습니다. 종교개혁(The Reformation)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여러 종교개혁들(The Reformations)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루터를 넘어 종교개혁의 좀 더 깊은 근원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루터보다 100년을 앞서 공개적으로 교황의 면죄부 판매, 성직 매매, 그리고 교회의 부패에 맞선 '종교개혁의 선구자' 체코의 얀 후스(Jan Hus)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기독교 역사 2천 년 가운데 '가장 장엄하고 아름다운 순교자'로 꼽히는 그의 삶과 신앙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얀 후스는 1371년 체코의 남부 보헤미아 후시네츠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후스'(Hus)라는 이름은 '거위'(Goose)라는 뜻이고 후시네츠는 '거위를 키우는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그의 가정은 가난했고 부모는 검소했습니다. 후스는 어릴 적부터 사제가 되는 꿈을 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체코인들은 '흘레바'라는 호밀 식빵으로 숟가락을 만들어 콩 수프를 떠먹었는데, 수프를 다 먹으면 그 숟가락까지 먹어치울 정도로 굶주렸습니다. 그래서 후스는 빨리 사제가 되어 좋은 집에 살면서 화려한 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삶을 꿈 꿨습니다.

하지만 그는 카렐 대학, 즉 오늘의 프라하 대학에 들어가 인문학과 신학을 공부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카렐 대학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렐 4세가 설립한 대학으로, 중부 유럽 최초의 대학입니다. 거기서 성서와 신학을 공부하면서 후스는 부유한 사제가 되고자 했던 자신의 꿈이 얼마나 헛된 욕망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한 후스는 이후 이 대학의 교수가 되고 또 총장이 됩니다. 체코의 종교개혁은 바로 이 대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이 대학의 교회인 베들레헴 채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말은 체코종교개혁이 '비판적 기독교 지성'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뜻입니다.

얀 후스는 12년간 대학교회의 목사로 있으면서 베들레헴 채플 안에서 작지만 두 가지 매우 의미 있는 혁명을 이루어냈습니다. 하나는 '공간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혁명'입니다. 후스의 적대자들이 '창고'라 부른, 볼품없는 베들레헴 채플은 전통적인 성당 건물처럼 긴 직사각형이 아니라 정사각형에 가깝습니다. 직사각형의 전통적 성당 안에서는 제단의 앞쪽에서부터 뒤쪽으로 위계적인 질서가 만들어집니다. 맨 앞에는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앉고, 맨 뒤에는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멀찍이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라틴어 미사를 '구경'하다 돌아갑니다. 그런데 후스는 베들레헴 채플 안에 성화나 조각상을 다 치우고 건물 한 면의 정 가운데에 덩그러니 설교단 하나 갖다 놓았습니다. 그러자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든, 또 어디에 앉든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위계질서가 없어진 것입니다. 체코의 종교개혁은 바로 이러한 공간혁명에서 시작됐습니다.

후스는 이 혁명적인 공간 안에서 체코어로 체코인들에게 설교했습니다. '언어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당시 모든 예배는 라틴어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열정적인 체코어 설교는 평민들로부터 귀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청중을 열광시켰습니다. 그는 12년간 설교하면서 주옥같은 설교 3천 편을 남겼습니다. 그의 설교는 배우지 못한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쉽고 은혜로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해박한 성경지식을 바탕으로 본문의 본뜻을 재발견하여 그것을 단순하고 명쾌한 개혁의 메시지로 선포했습니다. 후스는 체코어로 성서를 번역하여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속적인 체코어 철자법 개발이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나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와 같은 체코의 천재적인 작가들은 모두 후스가 성서를 번역, 출간하면서 만든 체코어 철자법에 빚지고 있습니다. 체코어로 선포되는 설교와 체코어로 번역된 성경, 바로 이러한 '언어혁명' 속에서 체코 종교개혁의 불은 타올랐습니다.

후스는 음악을 사랑한 훌륭한 찬송가 작사자이기도 했습니다. 베들레헴 채플은 체코어 대중 찬송이 울려 퍼졌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체코 사람들의 정서에 잘 맞는 찬송 가사를 지어서 대중적인 보급에 앞장섰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기독교 교회의 역사에서 주후 360년 라오디게아 공의회 이후에 예배시간에 일반 회중이 직접 부르는 찬송, 즉 '회중찬송'(congregational hymn)이 완전히 금지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전문적으로 훈련된 찬양대만이 '찬송'(chanting)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후스 당시도 교회음악은 사제와 찬양대원들만의 음악이었습니다. 회중은 듣기만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음악이 라틴어로 되어 있었고, 게다가 대위법상으로 복잡하게 교차되는 가사로 인해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중세시대 예배에서 회중은 배제되었습니다. 방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천년 동안이나 금지되었던 회중찬송을 다시 복구시킨 이가 바로 후스입니다. 100년 후에 루터가 이런 후스를 닮아 '코랄'(Chorale)이라는 회중찬송을 개발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예배시간에 직접 찬양을 부르며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다 후스 덕분입니다.

많은 교회역사가들은 후스를 영국의 종교개혁가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의 뒤를 잇는 사람 정도로 평가하곤 합니다. 실제로 위클리프는 후스보다 한 세대 앞서 1382년에 최초로 성경을 영어로 번역해 자신의 백성들이 읽게 했습니다. 교회역사가들은 이런 위클리프를 '종교개혁의 새벽별'이라 부릅니다. 후스도 위클리프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는 '백성들의 언어'로 씌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었습니다. 후스는 또한 위클리프의 교회론에도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후스도 위클리프를 따라 교회를 '지상의 교회'와 '하나님의 교회'로 구별하고 지상의 교회도 그리스도의 최후의 심판대에 선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시 이는 충격적인 주장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중세교회는 자신을 심판자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후스는 교회도 심판의 대상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후스는 단순히 위클리프의 사상을 이어받아 루터에게 전달해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주로 영국의 교회역사가들이 펼쳐온 주장입니다. 이를 따라 일반적으로 교회역사가들은 위클리프를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긴 사람'으로, 후스를 '혁명 전야에 시끄럽게 운 거위'로, 그리고 루터를 '종교개혁의 완성자'로 봅니다. 하지만 이는 후스와 체코 종교개혁의 독창성을 잘못 평가한 것입니다.

후스의 뿌리는 위클리프가 아니라 체코의 토착적 종교개혁 사상가들입니다. 체코 종교개혁의 '아버지'는 얀 밀리치(Jan Milíč z Kroměříže)입니다. 그는 교회개혁의 초점을 성만찬의 개혁에 두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가톨릭교회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강조하는 성만찬(성체성사)입니다. 그런데 밀리치는 과감히 교회 밖으로 나아가 프라하 중심 홍등가에서 체코어로 성만찬을 베풀며 체코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겼습니다. 그 때가 후스가 태어나 갓 한 살이던 1372년의 일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자기말로 복음을 듣지 못했던 창녀들이 복음을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받아 마셨습니다. 서서히 프라하에서 악명 높던 홍등가 '베나트키'(Benatki, 작은 베니스)는 '새 예루살렘'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2백 여 명의 창녀들이 옛 직업을 버리고 밀리치의 열정적인 지지자로 변신했습니다. 그것이 체코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밀리치는 거기서 '수시로' 성만찬을 베풀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만찬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가난하고 배고픈 창녀들이 밀리치에게 와서 말합니다. '신부님, 배고파요.' 밀리치는 다시 말씀을 선포하고 성만찬을 베풉니다. 잠시 후 이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은 다시 와서 말합니다. '신부님, 또 배고파요.' 밀리치는 다시 말씀을 선포하고 성만찬을 베풉니다. 그랬습니다! 가난하고 배고픈 창녀들에게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는 단순한 종교적 예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영혼의 양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육신의 굶주림도 벗어나게 해주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요한 6:51)이었습니다. 이러한 밀리치의 성만찬을 우리는 '사회적 성만찬'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가 베푼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단지 상징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굶주린 사람들이 먹을 것을 나누는 열린 식탁운동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이 공동체를 삶 속에서 실천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님의 식탁'은 '교회의 제의'로 변모됩니다. 이것을 되돌려놓은 이가 바로 밀리치였습니다.

밀리치는 아비뇽으로 소환돼 이단으로 선고를 받았고 1374년에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제자인 야노보의 마테이(Matej z Janova)가 스승의 생각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는 파리대학 유학파여서 '파리선생'이라 불릴 정도의 지식인이었는데, 교회개혁을 넘어 봉건제도 자체의 타파를 주장했습니다. 그 역시 성만찬에 집중했습니다. 그가 보기에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성직자들의 호화로운 생활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직자들의 도덕적 타락은 오직 진정한 성만찬을 통해서만 고쳐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특히 '이종성찬'(utraquism)의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빵만이 아니라 포도주까지 두 가지를 모두 받는 성찬 말입니다. 성찬에서 빵과 잔을 받음으로써 교인들은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가 되고, 남녀노소와 계층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은총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찬에는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중세교회는 성직자들에게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주고 평신도들에게는 빵만 줬습니다. 이는 차별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테이는 평신도들에게도 포도주를 같이 주는 이종성찬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물론 가톨릭교회는 평신도들에게 성찬잔을 베푸는 것을 '이단'이라 공격했습니다. 당시 성만찬에서 성혈, 즉 포도주는 실수로도 절대 흘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소위 "우둔한 평신도들이" 그리스도의 피를 소홀히 하여 흘러넘치게 할지도 모른다며 포도주는 사제들에게만 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테이에게 있어서 일반 신자들도 주님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곧 사제와 평신도 사이의 차별이 철폐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즉 이종성찬은 그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질서의 세상이 열리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먼 훗날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즉 포도주를 받아 마시는 내 몸으로부터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잔의 개혁'이 이렇게 체코 종교개혁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물론 마테이는 '화체설'(化體說, transubstantiation)이라는 가톨릭 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사제가 기도할 때 떡과 포도주가 실제 예수의 살과 피로 바뀐다는 교리 말입니다. 영국의 위클리프와 달리 체코의 개혁자들은 이 교리를 가지고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마테이는 기적을 믿었습니다. 사제가 기도하면 떡과 포도주가 실제 예수의 살과 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왜 이 기적이 교회의 제단 위에서만 일어나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같은 기적은 세상 안에서도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래야 참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교회의 개혁은 곧 사회의 개혁이어야 했습니다. 차별 없는 교회는 차별 없는 세상이어야 했습니다. 그 둘은 둘이 아니어야 했습니다. 이 메시지가 바로 체코 종교개혁 신학의 핵심 중 핵심입니다. 이 점이 믿음에 대한 교리적 문제에 집중한 루터의 종교개혁과 가장 다른 체코 종교개혁의 독창성이며 고유한 정체성입니다.

후스의 뿌리는 밀리치와 마테이입니다. 체코의 종교개혁은 단순히 위클리프의 모사품도 아니며 루터 종교개혁의 전야제도 아닙니다. 체코의 종교개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온전한 종교개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힘없는 소수민족의 실패한 종교개혁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루터를 넘어서, 그보다 100년 앞서 종교개혁의 원형을 제시한 후스와 체코 종교개혁에서 지혜와 통찰을 얻어야 합니다.

하지만 후스는 위클리프의 사상을 "신조화하고, 변호하고, 설교하였다"는 이유로 사형을 언도 받았습니다. 화형 당일 교회의 감독들은 후스에 대한 '정죄의식'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그의 사제복을 벗기고 머리에는 악마의 그림이 그려진 종이 모자를 씌웠습니다. 거기에는 '이단들의 주동자'라는 모욕적인 글귀가 씌어 있었습니다. 장작이 그의 목까지 쌓였을 때 그는 사형 집행인에게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당신은 지금 거위 한 마리를 불사르려 하고 있지만 백년 후에는 불태울 수도 끓일 수도 없는 백조가 나타날 것이오." 후스가 죽으면서 예언한 백조는 바로 독일의 마르틴 루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루터는 자신의 글 곳곳에서 후스를 언급하고 추모합니다. 장작더미에 불이 붙자 후스는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죽는 순간까지 부른 찬송은 시편 31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교독문입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이내 심한 불길에 가려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후스의 유골은 라인 강에 뿌려졌습니다. 그렇게 그는 2천 년 교회역사에서 가장 장엄하고 아름답게 순교했습니다.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는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John Wesley)의 동생으로 우리가 아는 많은 찬송가의 작사자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 하늘로써 내리사> <천부여 의지 없어서> 그리고 <만 입이 내게 있으면> 등 현재 교회에서 많이 부르는 은혜로운 찬송가들을 그가 작사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오늘 개회찬송으로 부른 <만 입이 내게 있으면>을 작사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어느 날 찰스 웨슬리는 모라비안 교도의 한 평신도와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대화 중에 "만일 나에게 천 개의 입이 있으면 그 입을 다 가지고 오직 하나님만 찬양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그 자리에서 작사한 것이 이 찬송가입니다. 그런데 왜 그 모라비안 평신도는 그 말을 했을까요? 저는 그 뿌리가 후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아시지만 모라비안(Moravian) 교도들은 후스의 후예들로 오랫동안 가톨릭의 탄압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참혹한 사실이지만 후스부터 시작하여 체코의 종교개혁자들이 화형을 당할 때 그들이 모두 찬송을 부르면서 죽자 가톨릭교회는 사형을 집행하기 전에 먼저 철사로 그들의 입을 꿰매고 사형을 집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거기서부터 후스의 후예들에게는 만약 자신들에게 입이 천 개가 있다면 그 입을 다 가지고 오직 하나님만 찬양하겠다는 간증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앞으로 이 찬송가를 부를 때는 이런 의미를 알고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사람들은 루터가 작사한 찬송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종교개혁 찬송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루터의 종교개혁 찬송가뿐만 아니라 후스의 찬송가도 기억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거위의 꿈"입니다. 맞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 노래의 제목과 동일합니다. "난, 난 꿈이 있었죠"라고 시작하는 이 노래를 저도 참 좋아합니다. 단지 멋진 곡조 때문만이 아니라 가사와 제목이 거위라는 뜻의 이름인 후스가 꾸었던 아름다운 꿈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난, 난 꿈이 있었죠 /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 혹 때론 누군가가 /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 /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 날을 위해 / ...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 그 꿈을 믿어요 / 나를 지켜봐요." 교우 여러분, 오늘 종교개혁주일에 우리가 이 "거위의 꿈"을 함께 꾸어볼 수 있을까요?

후스가 화형당해 순교당한 지 500주년이 되는 1915년에 체코인들은 제1차 대전의 와중에도 불구하고 프라하 광장 한가운데 얀 후스의 청동상을 세웠습니다. 마치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걸어 나와 우뚝 서 있는 것 같은 후스의 뒤에는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 상이 있습니다. 이 아기는 희망을 상징합니다. 죽음의 불길 속에서도 새 생명이 태어나 후스의 정신과 신앙을 이어갈 것을 상징합니다. 이 청동상 주위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여, 진리를 찾으라. 진리를 들으라. 진리를 배우라. 진리를 사랑하라. 진리를 말하라. 진리를 지키라. 죽기까지 진리를 수호하라. 왜냐하면 진리가 너희를 죄와 악마와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복음서의 말씀, 즉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 8:32)를 생각나게 합니다. 실로 후스는 목숨을 위해 진리가 아닌 것과 일체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 후스의 문제였는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후스는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성서의 말씀에 나오는 그런 마음의 소유자가 분명할 것입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예레미야 20:7-9). 그는 정말이지 그 중심에 진리를 향한 뜨거운 불이 붙어 있었고 그 불이 너무 뜨거워서 육신을 불태우는 장작더미의 불길 정도는 두렵지 않았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도 진리를 향한 이 뜨거운 마음의 일부라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시대나 교회는 부패합니다. 어느 시대나 교회는 타락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아름다운 사람을 들어서 자신의 교회를 친히 개혁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공동기도문이 바로 그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문은 남미의 유명한 돔 헬더 까마라 주교의 기도시 <종교개혁주일 -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다시 한 번 그 시를 읽음으로써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연약한 인간의 손에 위탁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걸음마를 배우는 갓난아기처럼 교회는 늘 비틀거립니다. 죄의 유혹에 빠져듭니다. 때로는 그리스도를 배반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언제나 그리스도의 교회로 머물려 애쓰면서 신앙을 쌓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교회에 속한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우리가 몰아넣었던 모든 잘못에서 건져낼 수 있는 충분한 용기와 힘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의 영이 친히 교회를 해방시켰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며 비록 온갖 죄와 허물로 얼룩져 있지만 전보다 더 아름답게 됩니다." 아멘. (2018.10.28.)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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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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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