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박사(독일 튀빙엔대 명예교수)가 3.1운동은 '민중의 외침'이자 '한국민족 공동의 미래를 위한 정치적 약속'이라고 규정했다. 몰트만은 칼 바르트와 히틀러에 맞섰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를 계승한 에큐메니컬 신학운동의 선구자로 꼽힌다.
몰트만 박사는 25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 국제컨퍼런스 - 3.1운동의 의미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반도 미래구상'(아래 컨퍼런스)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몰트만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헝가리, 체코 등지에서 일었던 소비에트 제국주의 저항운동이 외견상 실패로 보였지만 의미가 없지 않았다며 3.1운동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 1919년 3월 1일 한국 민중들은 하나의 목소리로 외쳤고 ▲ 자신의 자긍심을 증명하고 자유와 연대를 위해 희생했으며 ▲ 한 민족의 문화적 기억에 있어 실패와 고난은 승리로서 각인되기에 의미가 있다는 게 몰트만 박사의 지적이다.
몰트만 박사는 비슷한 사례로 1956년 헝가리와 1968년 체코 ‘프라하의 봄'을 들었다. 몰트만 박사는 두 봉기 모두 옛 소련의 탄압으로 무산됐지만 헝가리 봉기는 '소련 침략에 맞선 국가적 저항'으로, '프라하의 봄'은 문화혁명으로 자리매김했다고 강조했다.
컨퍼런스에 참석한 서광선 본지 회장은 1974년 몰트만 박사가 처음 한국을 찾았을 때 일화를 소개했다.
몰트만 박사는 당시 시국사건인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던 그리스도인 학생과 민주화 운동을 벌이던 민중신학자 안병무, 문익환, 서남동 등을 위로하고자 방한했다. 이때 한신대 박봉랑 교수는 서 회장에게 몰트반 박사와 시내 관광을 해줄 것을 부탁했고, 이에 서 회장은 종로 2가 탑골공원으로 안내했다.
서 회장은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몰트만 박사는 탑골 공원에 있던 3.1운동 조형물을 세심하게 살펴봤다. 그리곤 ‘내가 정치신학을 말하기 훨씬 이전에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신학을 실천했다'라는 말 한 마디를 남겼다"고 당시를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