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 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이후 북한과 미국은 협상 결렬 원인을 두고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결렬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완전한 제재 해제를 원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북한 리용호 외무상은 '일부' 해제를 원했다고 반박했다.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라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제재 결의 총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 중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 지장 주는 항목만 먼저 해제 하라는 것"이라는 게 리 외무상의 주장이다.
이러자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1일 "북한이 말장난하고 있다"며 재차 반박하고 나섰다. 이 당국자는 "우리는 북측에 그들의 조건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명확히 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는 기본적으로 무기를 제외한 모든 제재를 아우르는 것"이라면서 " 그들이 요구한 건 기본적으로 모든 제재의 해제"라고 설명했다.
양측 간 공방의 진위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양측간 '계산법'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에 제가 수뇌회담을 옆에서 보면서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김정은 국무위원장 - 글쓴이)께서 미국에서 하는 미국식 계산법에 대해서 이해하기 힘들어하지 않았나, 이해 가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최선희 부상의 말은 무척 시사적이다.
그런데 북미 양측간 진실공방의 진위여부와 별개로 몇 가지 대목은 눈길을 끈다.
첫째, 미국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결렬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을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나라'라며 추켜 세우는 한편, "김정은 국무위원장, 북한과 계속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며 외교적 노력을 이어나갈 방침임을 수차례 강조했다.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28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난 뒤 헤어지기 위해 마지막 악수를 나누는 사진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등을 돌리고 있어서 표정을 볼 수는 없었다. 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환하게 웃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악수를 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 그리고 샌더스 대변인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북미 양국 정상간 관계는 문제없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대동했다. 이는 양국간 외교협상이 이어질 것이란 '시그널'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둘째, 북한의 대응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 북한은 미국과 협상이 틀어지면 특유의 거친 언사로 미국을 맹비난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현지시간 1일 자정 기자회견을 갖고 입장을 냈다. 리 외무상은 차분한 어조로 준비한 입장문을 읽어 내려갔다. 입장문의 어조는 상당히 절제됐고, 해명도 무척 구체적이었다.
리 외무상 옆엔 최선희 부상이 앉아 있었다. 최 부상은 1~2일 사이 모두 3차례 기자들에게 북한의 입장을 밝혔다. 하노이에 몰려든 취재진을 상대로 여론전을 펼치는 모양새다.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북미 양측이 곧장 협상 테이블로 나올 공산은 적어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의 협상의지가 약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위기 몰린 트럼프, 국면전환 성공할까?
관건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2차 정상회담차 하노이에 머무르던 그 시각, CNN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류' 언론은 트럼프의 집사였던 마이클 코헨 변호사의 청문회 증언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코헨 변호사는 '인종주의자', '사기꾼' 등의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내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날을 세웠다. 그 뿐만 아니다. 2016년 대선 기간 트럼프가 자신에게 모스크바 '트럼프 타워 프로젝트'에 대해 거짓 증언을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엔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기자회견에서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먼저 코헨 변호사를 겨냥해 '맞지 않은 말로 마녀사냥' 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미국 정치권을 향해서도 "중요한 정상회담 중에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북한에 억류됐다 석방 후 숨진 오토 웜비어 관련 발언도 트럼프 대통령에겐 악재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오토 웜비어의 죽음을 '나중에 알았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말을 믿는다"고 말했다. 이러자 즉각 반발이 일었다. 미 정치권과 CNN 등 언론은 물론 웜비어의 부모까지 나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다른 세 명과 함께 웜비어를 데려왔다. 북한은 웜비어의 학대와 죽음에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하노이 정상회담 전후 미 민주당 등 정치권과 언론이 트럼프를 대하는 행태를 볼 때 전망이 밝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정치적 위기는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을 가져온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시간이 많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위기를 탈출한 뒤, 북한과 통 큰 합의에 이른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라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한반도의 명운이 걸린 문제가 초강대국 대통령의 국내정치 상황에 영향을 받는 건 불행하지만, 감당해야 할 현실이다.
끝으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해방 직후 한반도는 미·소 두 초강대국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이후 한반도의 명운을 좌우할 중요한 만남이 몇 번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모스크바 삼상회의, 그리고 덕수궁에서 열린 미·소 공동위원회였다.
해방을 맞은 한민족은 두 회의 결과에 시시각각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소식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웠듯이 말이다. 불행하게도 두 회담에서 미·소 양측의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한반도 분단은 기정사실이 되기에 이르렀다. 우리 스스로의 정치적 역량 부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날, 우리는 외세가 일방적으로 그어 놓은 분단선을 극복할 정치적 역량이 부족했다. 또 다시 역량부족을 드러낸다면, 한반도 평화의 기회는 또 다른 70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문재인 정부의 짐이 무겁다. 트럼프 대통령도 중재역할을 당부했다. 부디 역사의 십자가를 진다는 심정으로 중재자 역할을 감당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