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7일 대한항공 대표이사 자리를 잃었다. 1999년 대표이사에 오른지 20년 만이다. 조 회장의 대한항공 이사직 상실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조 회장의 사례는 주주들이 재벌 총수를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첫 번째 사례다. 무엇보다 이는 무척 고무적이다. 재벌 회장과 일가는 그야말로 법 위에 군림하는 무소불위의 존재다.
조양호 일가하면 얼른 '갑질'이란 낱말이 떠오른다. 이들의 갑질은 신문 방송을 통해 수차례 그 실상이 드러난 바 있다. 조 회장의 부인 이명희 씨가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는 모습은 실로 경악스럽기 그지없다.
딸들의 갑질도 만만치 않았다. ‘땅콩'이 마음에 안들어 이륙하려는 비행기를 돌려세웠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할까. 그런데 조 회장 부인과 딸들이 갑질을 일삼을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무소불위의 권력 때문이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재벌 회장이 경영권을 잃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2대 주주인 국민연금과 외국인 투자가 반대가 결정적이었다. 여기에 소액주주들까지 가세했다.
조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유지하려면 66.7%의 지지를 확보해야 했다. 그런데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은 64.1%의 지지를 얻었다. '겨우' 2.6%p 지지를 얻지 못해 대표이사직을 잃은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해보자. 조 회장의 대한항공 대표이사직 상실이 교회와 아무 관련 없어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선 재벌총수나 교회, 특히 대형교회 담임목사 모두 무소불위의 권력자라는 점에서 매 한 가지다.
재벌총수 한 마디가 해당 기업의 경영지침이 된다면, 강단에서 하는 담임목사의 말 한 마디가 하나님의 명령이다. 재벌총수나 대형교회 담임목사 모두 중범죄를 저질렀어도 법망을 유유히 피해간다는 점도 똑같다.
그러나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비리를 저지르고, 교계는 물론 사회 언론까지 나서서 이를 대서 특필해도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쫓겨난 사례는 이제껏 없었다. 오히려 충성도 높은 신도들의 비호 속에, 그리고 자신이 속한 교단 총회의 암묵적인 지지 속에 담임목사는 죄를 짓고도 여전히 권력자다. (재벌기업 총수도 경영권을 놓지 않지만, 이따금씩 검찰 포토라인 앞에 서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선 감옥에 다녀오기도 한다. 잠깐이지만 말이다)
사회 법원에서 담임목사 자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도 소용없다. 사랑의교회는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자만 산다는 강남구 서초동에 있으며 신도 규모만 수 만에 이른다. 그러나 오정현 목사는 소속 교단인 예장합동 교단 목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단 2주만에 마쳤다.
사랑의교회는 규모만 따져도 어지간한 대기업 계열사에 버금간다. 아마 대기업에서 2주 속성 과정으로 경영자 코스를 밟은 지원자를 사장으로 뽑지 않을 것이다. 신입 사원 선발 과정도 엄격한데 임원 선발은 더 말해 무엇할까? 세상의 상식이 이러함에도, 오 목사는 이 같은 상식을 비웃듯 사랑의교회 담임목사로 복귀를 앞두고 있다.
성도가 담임목사 쫓아낼 날은 언제쯤일까?
주목할 점은 이 교회 성도 96.42%가 오 목사의 담임목사 복귀에 찬성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조양호 회장 사례를 들여다 보자.
조 회장이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을 잃은 결정적 요인은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반대와 소액주주의 표였다. 국민연금의 반대는 소액주주들의 표심을 결집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그리고 국민연금이 반대한 이유는 '국민의 투자금이 축나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뜻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따른 것이다.
조 회장 일가가 갑질을 일삼자 대한항공 직원들은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여기에 자사 항공기를 이용해 귀중품을 밀수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러자 대한항공의 기업이미지는 급전직하 했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시장에서는 '오너 리스크'라고 규정했다. 즉, 오너 일가의 일그러진 행동이 경영 전반마저 뒤흔드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의미다. 결국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로 '오너 리스크'에 제동을 건 셈이다.
교회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필요해 보인다. 대형교회 담임목사의 일탈로 인해 소속 교단은 물론 한국교회 전반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명성교회와 사랑의교회가 각자 속한 예장통합과 합동 교단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는 건 '좋은' 예다.
이제 재벌총수가 전횡을 일삼다 주주의 손에 경영권을 잃을 수 있다는 선례가 만들어졌다. (물론 조 회장은 경영권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교회, 특히 담임목사의 카리스마가 강한 보수 대형교회에도 이 같은 선례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 일어나야 한다. 90% 이상의 성도가 자질시비에 휩싸인 목사를 담임목사로 재청빙하는 교회에서 어찌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조 회장이 경영권을 잃은지 다음 날인 28일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이 그룹 경영 퇴진의사를 밝혔다.
참 부러운 일이다. 교회가 세상을 선도해야 하는데, 교회가 세상을 부러워 하니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한탄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어서 세상의 흐름에 발맞춰 나가자. 무엇보다 교회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자.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해 보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