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은 근대 한국민족운동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새로운 전기를 만들었다. 한말 이래 여러 갈래로 산만하게 흩어졌던 민족주의의 흐름을 3.1운동은 하나의 물줄기로 만들어 새로운 동력으로 민족주의 운동을 가능하게 했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1일 오전 충남 천안시 백석대학교(총장 장종현)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한 강연 내용이다.
이 명예교수는 '3.1운동과 세계평화'란 제하의 기조 강연에서 3.1운동을 민족운동과 세계사적 관점에서 조명했다.
이 명예교수는 먼저 3.1운동을 '일제의 강점을 거부하고 자주독립을 찾으려는 거족적인 민족 독립운동'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3.1운동은 완전 자주독립을 바라는 염원을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이 명예교수의 말이다.
"3.1운동은 강점 후 일제가 용훼하던 기만적인 선전의 허구성과 거짓된 '개혁정치'의 실상을 폭로했다. 아울러 일제가 강점 10년 동안에 행한 통치가 한민족의 자유와 인권을 무시하는 무단통치였고, 한민족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수탈통치였으며, 한민족의 민족적 정체성을 파괴하려는 민족말살통치였음도 아울러 폭로했다. 이 거족적인 몸부림은 한민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자유와 평등, 평화와 공존에 바탕한 완전한 자주독립이라는 것이다."
이 명예교수는 이어 3.1운동이 무장운동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다시 이 명예교수의 설명을 아래 인용한다.
"3.1운동으로 자신감을 얻은 민족주의 세력은 만주와 러시아령에서 무장독립투쟁을 강화하여 독립군 부대를 한·만, 한·러 국경지역에서부터 국내에 진공시켜 일본군을 공격, 승리하기도 했다. 3.1운동 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등은 3.1운동으로 역량이 강화된 무장독립군의 투쟁의 결과였다. 만주와 노령에서 독립군 단체가 40여개에 이르게 되었던 것은 바로 3.1운동이 거둔 성과였고 그런 투쟁을 지속하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볼 때도 3.1운동은 큰 의미를 갖는다. 이와 관련, 이 명예교수는 3.1운동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로 등장한 '베르사이유 체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당시 세계는 민족자결주의가 선포되는 것을 계기로 도의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침략·강권주의를 전승국 중심으로 더 강화시켰나갔다. 이럴 때에 한민족은 3.1운동을 통해 전승국의 하나로서 베르사이유 체제의 수혜국이라 할 일본에 저항했고, 그렇게 함으로서 전승국의 이익을 튼튼히 담보하기 위해 성립시켰던 베르사이유 체제에 도전했던 것이다.
이는 바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제국주의 질서에 도전한 것이다. (중략) 3.1운동은 이러한 베르사이유 체제에 최초로 도전했다는 점에서 그 세계사적인 의의가 적지 않다."
이 명예교수는 끝으로 2.8 독립선언과 3.1독립선언이 '조선의 독립이 동양평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에도 기여한다'는 동양평화론을 주창했다며, 이는 오늘날의 동북아 정세에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백석대 유관순연구소가 주최하고 천안시 등이 후원하는 이번 국제학술심포지엄은 1일과 2일 양일간 열리며, 이 기간 동안 3.1운동을 재조명하고 향후 100년을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