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 - 아스토르가(Astorga): 5시간 (24.7Km)

▲아스토르가(Astorga)로 가는 길의 풍경이다. 밀밭은 푸르고 하늘은 청명하다. 산티아고 간판에 붙은 세월호 리본이 참사의 아픔을 상기시킨다.
오늘은 아스토르가에 일찍 도착해야만 한다. 며칠 전, 잘못 인출된 돈을 되찾기 위해서다. 사정은 이러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현금이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오랜 순례 기간에 사용할 현금을 모두 뽑아 다닐 순 없기에 필요에 따라, 필요한 만큼 그때그때 찾아서 다닌다. 며칠 전, 바닥난 현금을 충당하기 위해 ATM기로 향했고, 돈을 찾으려는 과정이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스페인어 몇 마디가 뜨더니 인출에 실패했던 금액이 통장에서 빠져나가 버렸다. 가끔 유럽 여행자들이 겪게 되는 일이라고 하던데, 그 일이 내 눈앞에서 발생한 것이다.
사실 난 그 소식을 2-3일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됐고, 잘못 출금이 이뤄진 마을로부터 멀어 진지는 이미 오래다.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앞으로 거쳐 가게 될 마을에 같은 회사의 은행이 있는지 열심히 알아보았고 드디어 오늘 묵게 될 아스토르가에 그 은행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데 스페인 금융기관은 일 안 하나? 은행 근무시간은 오후 2시30분까지다. 오늘은 반드시 은행 문 닫기 전에 마을에 도착해야 한다.

▲아스토르가의 한 알베르게 뒷마당의 모습이다. 하루의 순례를 마친 순례자들은 손수 빤 빨래를 햇살 아래 널고 그 햇살 아래서 한없는 쉼을 취한다. 알베르게에서도 ‘따로 또 함께’가 선택 가능하다.
오늘도 마땅히 쉴 Bar를 찾지 못해 점심은 마을에 도착해 해결하기로 한다. 그런데 오늘따라 걷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휴식 없이 걸어 목적지에 도착해 쉴까, 했지만 배낭 멘 어깨가 어서 쉬라며 고통을 가한다. 그래서 그대로 길거리에 주저앉았다. 바나나 한 개를 단숨에 흡입하고 다시 일어나 걸음을 재촉한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알베르게를 찾아 방 배정을 받고 배낭을 침대에 내동댕이친 후에 곧장 은행으로 갔다. 낯선 동양인이 은행에 등장하자 다들 멀뚱멀뚱 쳐다본다. 물론 당시 내 몰골은 더 설명하지 않겠다.
번호표를 뽑고 현지인들 사이에 줄을 서 있던 나는 나의 요구사항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열심히 영어 문장을 만들고 있었다. 머지않아 내 순서가 왔지만, 곧 절망을 맛보았다. 영어를 할 줄 모른다는 은행 직원은 대화가 되지 않아 도움을 줄 수 없다며 나를 데스크 앞에 우두커니 세워뒀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은행 구석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러자 직급이 좀 높아 보이는 한 여성이 다가와 이야기를 건넨다. 이 처량한 동양인의 요구를 들어주고자 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 직원 역시 영어를 할 줄 몰랐고 나 역시 스페인어를 할 줄 몰랐다. 그래도 어렵게 온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의사전달을 해야 한다. 휴대 전화를 꺼내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꾸역꾸역 대화를 시도해본다.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았는데 벌써 지친다. 원활하지 않은 대화 때문에 오는 피로감과 한 끼도 먹지 못해서 오는 굶주림까지 더해져 모든 걸 포기하고만 싶어진다. 물론 베네딕토 성인은 이런 말을 했다지. "지혜로운 사람은 그의 적은 말수로 알아본다. 침묵을 위해 때때로 좋은 대화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페터 제발트, 『사랑하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 p.78) 하지만 지금은 서로가 그놈의 지혜롭기를 포기해야 할 때 아닌가? 왜 이렇게 서로 침묵(의사소통의 부재)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스토르가로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순례자 동상’이다. 이 동상은 타는 듯한 갈증을 해결하려는 듯 조롱박 모양의 물통에 물을 담아 마시고 있다. 그는 언제나 그곳에 머물며 순례자들과 함께 물을 마셔준다.
그래도 결국 해냈다. 상황 전달에 성공한 것이다. 그녀는 전산상 오류일 수 있으니 다시 입금될 때까지 기다려보라고 한다. 좋다, 그래도 희망이 생겼다. 그렇게 은행을 벗어나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모든 기력이 소진되었다.
어린 시절, 나는 누군가에게 요구하고 부탁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늘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에 익숙했기에 착하고 좋은 사람이란 말을 들으며 자랐다. 어릴 땐 착하다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기에 자랑스러운 일로 여겼는데, 조금씩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다 보니 착하다는 말 뒤엔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낯선 땅'과 '낯선 사람들', '낯선 언어'가 '낯선 하나의 사건'에 담겨 내게 왔고 소극적으로만 살아온 내가 그 '낯섦'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부딪쳤기 때문이다. 그렇다, 작은 자기 극복의 계기를 나누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내가 못 돼 졌음을 말하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나는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그 돈을 찾겠다는 절박함으로 가득했다. 간절함이 나를 움직였고 용기를 갖게 했다. 물론 금액의 크기도 한몫했지만, 그보다 그 돈에 담긴 스스로의 억울함과 답답함, 빨리 알아채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 등이 나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그 누구라도 절박한 일 앞에 머뭇거리진 못할 것이다.
안다. 길을 걷는 것이 무료하다고 느껴질 땐 절박함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알아야 한다. 현재의 삶이 무료하고 지루할 땐 절박함을 발견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누구든, 삶을 재정비해야 할 때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