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인간적인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49년 전인 1970년 11월 13일,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이고 숨진 노동자 고 전태일이 남긴 다짐이다.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노동현실에 눈뜬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악한 노동 현실을 세상에 알렸고,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를 수집해 감독관청에 시정을 요구했다.
전태일이 떠난 지 50년이 가까워 오지만 노동현실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자본은 오히려 국가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노동자의 피와 살을 갈아 마실 기세다. 노동청 근로감독관이 전태일을 홀대했듯이.
문재인 정부는 잠시 잠깐 동안은 희망을 줬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공약이 특히 그랬다. 불행하게도 임기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은 낙제점에 가깝다.
고용노동부는 7월 중앙부처 49곳, 자치단체 245곳은 직접 고용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이 100% 이뤄졌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자회사가 기존 용역업체나 다름 없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자의 경우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대법원은 8월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에 대해 파견근로관계를 인정했다. 앞서 1심과 2심은 도로공사가 요금수납원들에게 구체적이고 상세한 업무지시를 했다며 이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하급심 판단을 최종 확정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도 직접고용은 이뤄지지 않고 있고, 급기야 수납노동자는 경북 김천에 있는 도로공사 본사를 점거 농성 중이다. 지난 7일부터는 정부, 여당이 이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며 고양시 김현미 국토부장관 사무실과 세종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역구 사무실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앞서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천주교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 등 3대 종단 종교인들은 수납노동자 직접 고용을 촉구하며 거리에 몸을 던지는 오체투지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다. 집배원은 늘 죽음의 공포를 안고 일한다. 올해 들어 10명의 집배원이 목숨을 잃었다. 사인은 거의 예외 없이 과로사 혹은 안전사고였다. 7월 집배노동자가 인원 증원을 요구하며 파업을 예고했다가, 우정 업무의 특성을 감안해 철회했다.
당시 우정사업본부노조는 사측과 ▲ 집배원 주 5일 근무 ▲ 7월 중 소포위탁배달원 750명 증원 ▲ 직종 전환을 통한 집배원 238명 증원 등 총 988명을 증원하는 데 합의하며 파업을 철회했다. 문제는 늘 합의 이후다. 합의 사항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합의 이후 또 다른 희생자가 나왔다.
"그늘과 그늘로 옮겨 다니면서 자라온" 전태일은 늘 배가 고팠다. 그의 배고픔은 육체의 굶주림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의'에 굶주리고 목이 말랐다.
전태일의 배고픔과 목마름은 그가 떠난 지 반세기가 가까워 오는 오늘에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던 그의 외침이 더욱 구슬픈 건, 비단 그의 기일이어서가 아니라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은 노동현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