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과 누가는 두 가지 종류의 방언을 말하고 있는가?
III. 두 가지 종류의 방언?
방언(方言)이라는 말은 지방언어(地方言語)의 약자입니다. 각 지방에서 쓰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흔히 "사투리"라고도 불리지만, 성경이 말하는 방언은 사투리보다 훨씬 더 많이 다른 외국언어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경상도 사투리와 황해도 사투리는 서로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말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말과 일본말 그리고 중국말은 통역인의 도움이 없이는 의사소통이 전혀 가능하지 않은 언어인 외국어입니다.
1. 사람의 언어와 하늘의 언어?
흔히들 오순절 계통에 속한 목회자들이나 그 영향을 받고 있는 목회자들은 "방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말하고 있는 방언과 고린도전서에서 말하고 있는 방언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 두 가지 종류의 방언은 전혀 다른 것인데, 이 둘이 모두 성경적인 방언이라고 주장합니다. 전자의 방언은 의미와 메시지가 있는 언어(외국어)라고 대체로 인정합니다. 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 계통의 목사들과 방언기도를 옹호하며 권장하는 여타 교회들의 방언주창자 목회자들과 교수들조차도, 사도행전 2장에서 누가가 진술한 방언은 언어(language) 혹은 외국어(foreign language)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김동수, 「방언은 고귀한 하늘의 언어」, 개정증보판 (서울: 이레서원, 2012), 59-60; 김동찬, 「방언 바로 알기: 방언에 대한 바른 해답을 주는 안내서」 (서울: 베다니출판사, 2015), 142-4; 김신호, 「성령세례 받으면 방언하나요?」 (서울: 서로사랑, 2011), 42-4.].
그러나 이들은 고린도전서에서 언급된 또 다른 방언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적인 방언은 배우지 않은 외국어 형태로도 나타나며,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영적인 발성(unintelligible spiritual utterance)의 형태로도 나타난다"[김동찬, 「누가 방언을 금하는가?: 잘못된 방언 주장에 대한 반론」 (서울: 베다니출판사, 2016), 36.]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순절 교단들 가운데 하나인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의 홈페이지에 "성령세례의 처음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며 증거의 방언은 은사의 방언과 본질은 같으나 그 목적과 역사는 다르다(행 2:4)"[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The Assembly of God of Korea), <교리>, [온라인자료] http:// www.kihasung.org/. 2019년 3월 15일 접속.]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증거의 방언은 사도행전에 언급된 방언을 말하는 것 같고 은사의 방언은 고린도전서에 언급된 방언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일부 교인들이 했던,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리는 기도로서의 방언도 성서적인 방언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러한 방언에 대해서도 고린도전서에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 역시도 성서적인 방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러한 방언을 "하늘의 언어"(heavenly language, language of heaven)라고까지 주장합니다["하늘의 언어"라는 표현을 책 제목에 사용한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김우현, 「하늘의 언어: 하늘문을 여는 열쇠」 (서울: 규장, 2007); 김동수, 「방언은 고귀한 하늘의 언어」, 개정증보판 (서울: 이레서원, 2012); 옥성호,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12).]. 예수 믿어서 하늘나라의 시민권자가 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이러한 "하늘의 언어"를 말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그러한 "하늘의 언어"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서 예수님께서 유언으로 말씀하신 "새 방언"(new tongues)을, 사람들끼리 사용하는 지상(地上)의 언어가 아닌, "하늘의 언어" 혹은 "천국의 언어"로 해석을 하여, 천국의 시민권자들은 천상(天上)의 언어인 "새 방언"으로 기도해야 한다고까지 말합니다:
(막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그러나 고린도전서 14장에서만 언급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Unknown Tongue)이 성서가 말하는 참 방언일까요? 사도 바울은 자신이 쓴 고린도전·후서에서 고린도교회의 일부 교인들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던 그러한 방언에 대해서 인정을 했을까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그러한 방언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장을 하고 명령을 했을까요? 성경 어디에도 "하늘의 언어" 혹은 "천국의 언어"라는 말이 등장하는 곳은 없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서 언급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라는 구절에서,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이라는 표현으로부터 "하늘의 언어" 혹은 "천국의 언어"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고전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Ean tais glossais ton 'anthropon lalo kai ton 'aggelon, 'agapen de me 'exo, Though I speak with the tongues of men and angels, and have not charity-KJV, If I speak in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NIV)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위의 표현은 아가페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내가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한 미사여구(美辭麗句)를 써서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고 가정한다면('Ean),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가정법과 과장법을 사용하여 말한 문학적 표현이지, 성령의 은사로서의 방언을 지칭하는 문장이 아닙니다. 또 한글성경에는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이라고 번역되어 있고, 한글성경에는 "사람들의 언어들과 천사들의 언어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희랍어원어성경에 의하면 복수형 단어를 사용하여 "사람들과 천사들의 언어들"(tais glossais ton 'anthropon kai ton 'aggelon,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KJV)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구·신약 성경에서 천사들이 어떤 사람을 찾아와서 말을 할 때에는, 그 사람의 언어로 말을 하고 그 언어로 말을 들으면서 대화를 했지, 의미 없이 중얼거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소통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천사 가브리엘이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를 찾아 와서는, 마리아가 사용하고 있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intelligible language), 즉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말을 했습니다. 한글성경에서는 그러한 말을 한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눅 1:28, 30-33)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이러한 가브리엘 천사의 수태고지(受胎告知)를 듣고 마리아는 깜짝 놀라서, 자기가 사용하고 있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천사에게 이렇게 묻고 말했습니다:
(눅 1:34, 38)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천사가 인간에게 말을 할 때에도 "알아들을 수 있는"(intelligible) "소통이 가능한"(communicable) 사람의 언어로 말했습니다. 말하는 자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듣는 자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unintelligible voice)인 방언기도를 "하늘의 언어, 천사들의 말, 천국언어"라고 고상하게 표현하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넌센스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순진한 성도들을 속이는 사기성(詐欺性)이 농후한 표현입니다.
방언에 대해서 글을 쓰거나 설교를 하는 분들이 "의사소통이 되는 언어로서의 말"(language)과 "중얼거리는 기도로서의 소리"(voice)를 구별하지 않고 혼용하며 사용하는 경우들을 종종 봅니다. 소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뜻과 의미가 담겨 있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소리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일종의 문법이 있고 문맥이 있고 언어적인 질서가 있고 무엇보다도 내용 즉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것을 "언어"(language) 혹은 "말"(speech, wording)이라고 합니다. 다른 나라 말일 때는 "외국어"(foreign language)라고 합니다. 이런 방언은 통역이 가능합니다. 그 말의 의미와 메시지를 다른 나라의 말이나 다른 백성의 언어로 번역하여 발설(發說)하는 것이 방언통역인 것이지요.
그러나 아무런 뜻과 메시지가 없이 발성(發聲)하는 것은 그냥 소리(voice)일뿐입니다. 그 소리가 너무 크거나 반복되면 주위 사람들은 단지 시끄럽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기도할 때, 누군가 그러한 소리를 내면 다른 사람들의 기도에 여간 큰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중얼거리며 내는 소리"는 결코 말이나 언어가 아닙니다. 하늘나라에서도 그러한 의미 없는 소리로는 사람들 간에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들 간에 대화와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방언은 통역도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뜻과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참 방언은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언어라고 주장하는 노우호 목사는 "방언도 가짜고 통역도 가짜다"라고 주장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방언의 진위 여부를 가려 보는 방법 중에는 통역을 해 보는 것이다. 만약 성령께서 주신 은사로서 참된 방언이라면 일단 의미가 있어야 한다. 소리에 의미(意味)가 담겨 있어야만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소리는 있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이는 방언도 아니고 언어도 아니고 그냥 헛소리에 불과하다.....[노우호, 「방언을 검증하자」 (경남 산청: 에스라하우스, 2014), 286.].
뜻과 메시지가 없는 소리는 말이나 언어가 아닙니다.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방언기도를 악기소리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14:7-9)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 "허공에다 말하는"(speak into the air-KJV, speaking into the air-NIV) 소리는 그 속에 뜻과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에 말(speech)이나 언어(language)가 아닙니다. 말 혹은 언어는 "혀로써 알아듣기 쉬운 말"(by the tongue words easy to be understood-KJV, intelligible words with your tongue-NIV)이어야 합니다.
2. LT(Language Tongue) 방언과 UT(Unknown Tongue) 방언
그래서 필자는 앞으로 이 책에서 두 가지 종류의 방언을 이렇게 구분하며 사용하고자 합니다. LT방언과 UT방언입니다.
"LT방언"(Language Tongue, 언어로서의 방언)이란 뜻과 메시지가 내포된 말(speech, wording)이요, 언어(language)요, 외국어(foreign language)입니다. 이것은 의사소통의 수단이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intelligible). 따라서 통역도 가능합니다(interpretable). LT방언은 사도행전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방언은 사도행전뿐만 아니라 마가복음에서도, 고린도전서에서도, 더 나아가서는 요한계시록에서도 등장합니다.
"UT방언"(Unknown Tongue,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 뜻 모를 방언, 기도로서의 방언)이란 뜻과 메시지가 전혀 없는 중얼중얼하는 소리(voice, giberrish, babble, mutter, mumbo-jumbo)입니다. 흔히들 오늘날 교회에서는 이것을 "방언기도"라고 부릅니다. 방언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옆에서 듣는 사람들도 방언기도 소리에서 어떤 뜻이나 의미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의사전달의 메시지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unintelligible). 그렇기 때문에 UT방언은 통역 자체가 불가능합니다(uninterpretable). 메시지나 내용 자체가 없는데 무엇을 어떻게 통역한다는 말입니까? UT방언에 관한 언급은 오직 고린도전서 14장에만 부분적으로(16번 사용된 방언이라는 낱말들 가운데 단지 6번만 사용됨) 등장합니다. 고린도교회에 적지 않은 문제들로 인해 교회가 혼란과 무질서에 빠져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이유들 중의 하나가 바로 "알아들을 수 없는 UT방언"과 "통역되지 않고 행한 LT방언"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UT방언의 정체를 밝히고, 교회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러한 방언기도를 하는 자들을 비꼬면서 비판했으며 책망했습니다.
"방언"이라는 말을 영어로 "speaking in tongue"(단수) 혹은 "speaking in tongues"(복수)라고 합니다. 킹제임스버전(KJV, King James Version) 영어성경이나 신국제버전(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영어성경에서는 이 용어들을 단·복수로 구분하여 번역했습니다. 학술적인 용어로는 glossa(언어, 말, 방언)와 laleo(말하다, 발설하다)가 합성된 "글로쏠랄리아"(Glossolalia)라고 합니다. 대체로 이 단어는 UT방언을 뜻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unintelligible voice)이고 "무아경에서 내는 중얼거림"(ecstatic utterance)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에서만 이러한 UT방언을 일부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의사소통이 될 수 없는 소리이기 때문에 교회공동체에 덕이 될 수 없는 것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LT방언들 중에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외국어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을 텐데, 이러한 외국어도 통역이 되지 않으면 중얼거리는 UT방언처럼, 그 외국어를 전혀 모르는 불신자들이나 초신자들로부터 "너희가 미쳤구나"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고전 14:23). "통역될 수 없는 UT방언"과 "통역되지 않은 LT방언"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교인들에게 심각한 시험거리가 된다고 바울은 냉소적으로 비판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LT방언에 대해서는 통역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UT방언에 대해서는 그것을 성경적인 성령의 은사로 간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린도교회를 혼란과 무질서에 빠뜨리는 UT방언은 퇴출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제노글로씨아"(Xenoglossia) 혹은 "제노글로씨"(Xenoglossy)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 단어는 xeno(외국의, 외래의, 다른 종류의)와 glossa(언어, 말, 방언)의 합성어입니다. 이것은 LT방언을 뜻합니다. 해본 적도 없고 배워본 적도 없는 언어 혹은 외국어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기적적으로 발설하는 말입니다[Ron Graham, "What is Speaking in Tongues?-Xenoglossia versus Glossolalia," [온라인자료] https://www.simplybible. com/f466-mirac-speaking-in-tongues.htm, 2019년 5월 20일 접속.]. 이에 대해서 희랍어원어성경과 영어성경들(KJV과 NIV)에서는 모두 복수형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한글성경에서는 이 두 종류의 개념이 구분됨이 없이 번역되어 있고, 또한 단수형과 복수형 단어에 대한 치밀한 구별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성경해석 상 혼란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의 어떤 문장에서 언어로서의 LT방언(복수형)을 썼는데, 어떤 방언주창자들은 같은 문장에서 사용된 그 단어를 중얼거리는 UT방언으로 이해하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사도 바울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의미로 그 문장을 해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어성경들 가운데 킹제임스버전(KJV) 영어성경이 있습니다. 스콧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1566-1567-1603-1625)와 섭정을 하고 있던 모친 스튜어트의 메리(Mary of Stuart, 1542-1587) 당시에, 쟝 깔뱅의 개혁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은 존 낙스(John Knox, 1513-1572)에 의해 개혁이 성취(1560)되어 장로교회가 스콧틀랜드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국(England)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1533-1603)이 1603년에 세상을 떠나자, 외오촌(外五寸) 조카뻘이 되는 그를 영국 왕으로 모셔서 제임스 1세(James I, 1603-1625)라는 이름으로 즉위케 하였습니다. 튜더 왕조(Tudor dynasty)가 마감이 되고 스튜어트 왕조(Stuart dynasty)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아마 이때 가장 큰 기대를 했던 사람들이 장로교 지도자들과 교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영국(England)에서도 장로교회가 큰 힘을 얻어서 교세를 확장하게 되리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가 1603년에 영국의 왕으로 부임을 하자, 장로교도들을 포함하여 비국교도들(Non-conformists) 1,000여명이 서명을 하여 같은 해에 "천인의 청원서"(Millenary Petition)를 왕에게 제출을 하였습니다. 국가교회인 성공회 이외의 분파들에게도 신앙의 자유를 허락해 줄 것을 새로 부임한 왕에게 청원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임스 1세 왕은 영국 땅에서는 정치적인 기반이 매우 약했기 때문에 당시 영국의 국가교회였던 성공회(聖公會, 영국국교회, Anglican Church, Episcopal Church)의 지도자들과 손을 잡았고 성공회만을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했습니다. 그는 "천인의 청원서"를 수용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 대신에 그는 성공회 이외의 기독교 분파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목적으로 왕실 주도로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여 1611년에 출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KJV(King James Version) 영어성경입니다. 이것은 "권위역"(權威譯, Authorized Version) 성경이라고도 불리는데, 영어권 독자들에게 가장 오랜 세월 동안 가장 많은 사랑을 받으며 가장 광범하게 읽힌 권위 있는 영어성경이 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은 김승진 명예교수(침신대/철학박사)가 보내온 연재글 '성경이 말하는 방언'입니다. 이 글에서 김 교수는 '방언'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성도들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현실 속에서 성서를 근거로 심도 깊은 연구를 통해 '방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29차례에 걸쳐 연재글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