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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실패와 더불어 머물 용기

코로나19와 종교(3): 박일준 박사(감신대)

"(성공)보다 나은 실패"(a failing 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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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이활 기자 )
▲신천지 이만희 교주가 지난 3월 2일 오후 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호자본주의 시대 모든 사람 및 사물과 초연결되는 접속의 시대에 우리는 우리와 동류의식을 공유하는 무리들 바깥으로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끼리끼리 고립되어 배타적으로 존재하는 "떼"의 사회구조를 경험한다. 수십 년이 지나도 만나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삶의 근본적 외로움은 가시질 않는다. 모든 것과 연결된 시대에 우리는 더욱 더 근본적으로 그리고 뼈저리게 외롭다. 신천지라는 사이비집단이 왜 급증했을까?

그들의 특별한 전도방식과 전략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그들의 사이비 교리에 빠지게 된 것은 이들의 종교생활이 바로 기호자본주의 시대 '호모 데우스'의 범주에서 탈락한 모든 이들의 삶의 양식에 근본적으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방식, 바로 '곁을 함께 해주는 방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정신이나 사고방식 혹은 감정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사이비 집단에 함께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이었고 그래서 자신의 문제와 결여를 잘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사이비 종교집단에 취약해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이는 역으로 한국 개신교 집단이 지닌 문제를 보여주는 거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공을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기를 요구하는 개신교 신앙은 적자생존과 무한경쟁 그리고 승자독식의 세계 구조를 순응하는 수준을 넘어, 경쟁의 구조에서 탈락하고 의존하고 싶은 심리로 교회를 찾은 이들에게 이 공정이라는 이름의 경쟁구조를 세뇌하고 있다. 승자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받은 것이라는 말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승자에게 임한다는 말로 들리기 마련이다. 개신교 신앙을 서술할 때, '기복주의' 혹은 '기복적 신앙'이란 말을 사용하는데, 바로 이 기복적 성향이 승자독식의 정신을 구조적으로 영혼에 각인시키고 있는 셈이다. 성직자들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말이다.

우리시대의 마음은 어째서 이렇게 '사이비'에 취약하게 된 것일까? 내가 힘들고 어렵고 무너졌을 때, 누군가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을 만큼 의존적으로 변하는 것은 잘 못이 아니다. 그건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실패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실패를 딛고 일어나 마지막 승리의 영광을 위해 달려가라는 메시지는 익숙하지만, 실패와 더불어 실패를 통해 살아가는 법을 배운 적은 없다. 하지만 기호자본주의의 도래는 우리의 노동자 혁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을 가리킨다.

기후변화는 우리의 생태환경을 위한 투쟁이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은 우리의 문명이 얼마나 위험한 과학지식 놀이에 몰입하고 있는지를 가리킨다. '바이러스' 조차도 우리 인간의 반응에 따라 대응한다. 그러한 대응할 수 있는 존재들을 우리는 '대상'(對象, object)으로 격하시켜 놓고, 그들을 연구하며 과학지식을 통해 이익을 추출해 낼 것을 낙관한다. 하지만 그들은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대응할 줄 아는 '객체'(客體, object)에 더 가깝다. 비록 우리가 그것들을 생물이나 무생물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오히려 우리의 '언어'는 실재로부터 추상된 기제라서 현실과 실재에서 언어는 늘 오류를 일으킨다.

캐서린 켈러는 암브로시우스 감독의 설교 예화 하나를 인용한다: "바다 위에 푹풍이 휘몰아치고, 바람이 비명을 지르며 난립하지만, 그러나 물고기는 헤엄친다. 바람과 파도와 물은 물고기를 집어삼키지 못한다"(『길 위의 신학』, 132). 파도와 바람으로부터 도망가려고 할 때, 배는 난파한다. 하지만 푹풍우와 파도와 바람 속을 물고기는 헤엄쳐 나아간다. 그래서 암브로시우스 감독은 이 물고기를 따라하라고 권면한다.

구원은 난국과 실패로부터 빠져 나오거나 우회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실패 가운데 구원이 있다. 이는 실패로부터 구원받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상처와 실패가 구원의 의미를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우리의 실패가 성공보다 나을 때가 있다.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성공이 이루어졌다면, 우리의 삶은 그 이면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양준일이라는 가수는 20대 때 활동하다 인기를 얻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그의 예전 음악영상들이 발굴되면서, 작년 말 '슈가맨을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30년 만에 복귀한다. 그 동안 그는 영어 과외와 미국 한인 레스토랑 웨이터로 일하면서 살고 있었다. 한 인터뷰에서 지난 날의 실패가 억울하거나 서운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나도 실패할 권리는 있잖아요!" 그렇게 그는 실패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느라 끊임없이 마음의 "쓰레기"를 버려야 했다고 말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 '성공과 실패'라는 기준을 통해 분류하려는 습성 자체가 '실패 보다 못한 실패'임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승자독식의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세뇌받은 우리는 늘 성공이라는 기준을 통해 우리의 삶을 자리매김하려는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성공하지 못한 나의 삶의 상처를 타인들의 격려와 위로로부터 얻으려는 무의식적인 의존성을 갖게 되고, 그 잘못된 의존관계가 우리에게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진정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거나 훼손당하게 만든다.

신학은 헤엄치는 법을 배우도록 돕는다. 이 혼돈의 세계 한복판에서 다가오는 난관과 역경들로부터 달아나거나 우회하는 법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해 헤엄쳐 나아가는 방법을 말이다. 헤엄칠 방법을 배울 용기를 갖도록 하기 위해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지만, 많은 경우 종교는 위로와 격려를 미끼로 경쟁주의적 세계관을 정당화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신격화 보다 정확히는 우상화를 정당화한다.

신천지 조직 구조가 다단계의 위계구조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은 이들의 위로와 격려가 경쟁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아니라, 자신들의 경쟁주의적 구조에 상처받고 좌절한 영혼들을 포섭해 착취하기 위한 것 이었음을 의미한다. 신학이 없는 신앙은 그렇게 취약하다. 신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신이 믿는 바를 신학이라고 허언하는 사이비 기독교 목사들이 드물지 않다는 한국 개신교의 현실은 신천지 바이러스의 극복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 실패들을 통해 또 헤엄쳐 나아갈 것이다. 모두가 버린 조선의 백성들에게 희망의 미래를 갖도록 한 것은 바로 기독교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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