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은 정부·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번 총선은 코로나19 탓인지 비교적 차분하게 치러졌다고 본다.
무엇보다 다행인 건 기독교, 특히 보수 개신교 세력의 결집이 예전만 못했다는 점이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지역구인 종로에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후보에게 패했다. 황 대표는 출마를 선언하면서 정권심판을 위한 행보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상대인 이 후보가 자신의 지역구는 물론 전국을 돌며 지원유세에 나선 것과 달리 황 대표는 종로에 머물렀다. 종로에 발이 묶였다고 보는 게 보다 사실에 부합한다는 판단이다. 결국 황 대표는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 와중에 보수 개신교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황 전 대표와 보수 개신교는 줄곧 밀월관계에 있었다. 지난 해 1월 황 전 대표가 통합당 전신인 자유한국당에 입당하자, 보수 개신교계가 세 결집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했었다. 황 전 대표는 사법연수원 시절 야간과정으로 신학을 공부한 뒤, 전도사로 성일침례교회에 시무한 경력이 있었다. 보수 개신교계도 이 점에 주목해 우군임을 자처해왔다.
황 전 대표는 한국당 대표에 오른 뒤 가장 먼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찾았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현재 구속 중인 전광훈 대표회장은 황 전 대표를 융숭히 맞이했다.
황 전 대표와 보수 개신교의 밀월은 10월과 11월 정점에 올랐다. 9월 말 서초동에서 검찰개혁 촛불집회가 열리자 개천절인 10월 3일 한국당은 광화문에서 맞불 장외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는 급조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보수 진영은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다.
마침 이날은 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 이재오 전 의원, 김문수 전 지사가 참여하는 '10·3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아래 범투본)가 대규모 집회를 예고한 날이기도 했다.
한국당과 범투본은 시차를 두고 집회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한국당 집회가 길어지자 범투본이 약속을 지키라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 세력은 자연스럽게 뒤섞였다. 한국당이 범투본에게 기댄 측면도 없지 않았다. 황 전 대표, 나경원 당시 원내대표는 전 목사 측이 9일 조직한 2차 국민대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당 차원의 참여는 아니었지만 3일 대규모 집회 조직에 대한 감사표시의 성격이 강했다.
11월 황 전 대표는 삭발과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청와대 앞에 마련된 황 전 대표 단식 농성장엔 아침부터 지지자들로 북적였다. 일부 지지자는 황 전 대표를 위해 무릎 꿇고 기도하기도 했다. 이때 가장 먼저 황 전 대표를 찾은 이는 전광훈 목사였다. 전 목사는 단식 8일차에 다시 한 번 황 전 대표를 찾았다.
하지만, 황 전 대표와 전 목사의 밀월은 올해 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사실 균열 조짐은 황 전 대표의 단식 때 이미 일기 시작했다.
단식 돌입 직후 전 목사가 찾았지만, 황 전 대표가 전 목사와 거리를 두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일부 한국당 관계자들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 시기 황 전 대표는 박찬주 전 제2작잔사령관 영입 논란, 지지부진한 보수통합으로 리더십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 와중에 전 목사는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선언하며 폭주 중이었다. 그러니 황 전 대표로서는 전 목사가 달가울 수만은 없었다.
황 전 대표로선 고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전 목사를 끌어안으면 중도층이 이탈하고, 거리를 두면 극보수 세력이 떨어져 나갔을 테니 말이다. (이 같은 태도는 세월호 막말 파문을 일으킨 차명진 후보의 제명을 두고서도 똑같이 드러났다)
구심점 잃은 보수 개신교
올해 1월 초 둘의 밀월관계는 급기야 파탄에 이르렀다. 전 목사는 황 전 대표가 먼저 결별을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이때는 전 목사가 구속 갈림길에 있던 시점이었다.
전 목사는 "내가 감옥가게 생겼으니까 함께 할 수 없다, 이런통보를 합니까"라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후 전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3분의 1도 못 갑니다, 황교안 체제를 가지고는"이라며 황 전 대표를 깎아 내렸다. 이어 기독자유통일당 창당을 주도하며 독자 노선을 걸었다.
한편 황 전 대표는 노골적으로 보수 개신교계의 지지를 호소하지는 않았다. 단, 설연휴 조계종에 '육포'를 선물했다가 이웃 종단에 배려가 부족하다는 질타에 시달렸다. 또 선거운동 과정에선 "문제는 신천지입니다. 신천지와 교회는 다릅니다. 교회 내에서 (코로나19) 감염이 발생된 사실도 거의 없다고 합니다"고 적은 페이스북 글이 논란을 일으켰다.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면 황 전 대표와 전 목사는 자중지란의 모습을 노출했다. 이 와중에 보수 개신교는 구심점을 잃었다. 2007년 대선 국면에서 결집해 소망교회 장로였던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가 하면, 2016년과 2017년 사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탄핵 반대 세력에 힘을 실어준 일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보수 개신교계는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에서 과도하게 정치에 개입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전 목사가 문재인 정부 하야를 촉구하는 등 폭주하며 신뢰위기를 자초했다.
보수 개신교의 정치 구호는 개신교 안에서도 먹히지 않고 있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지난 해 10월 발간한 '2019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개신교인의 인식조사 보고서'를 살펴보자.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 목사의 문 대통령 하야 발언에 대해 개신교인 중 71.9%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전 목사의 언행에 대해선 개신교인 64.4%가 "전광훈 목사는 한국교회를 대표하지도 않고 기독교의 위상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답했다.
황 전 대표는 물러났다. 물러나면서 "일선에서 물러나 국민 마음을 헤아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제 역할이 뭔지 성찰하겠다"며 여운을 남겼지만, 황 전 대표의 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편 기독자유통일당도 국회입성에 실패했다. 이 당의 투표율은 1.38%. 약 1천 만으로 추산하는 개신교 인구를 볼 때 초라한 성적이 아닐 수 없다.
황 전 대표의 퇴장과 기독자유통일당의 국회입성 실패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한 선거국면에서 보수 개신교의 프레임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다행스럽고 반갑다.
끝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느 정당·정파의 승리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정부 여당이 1987년 개헌 이래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고 개헌 빼곤 다 할 수 있는 힘을 거머쥔 만큼 그 권력을 국민을 위해 사용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