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신정호 총회장) 교단이 명성교회 수습안 철회 여부를 정치부에서 논의하기로 한 데 대해 후폭풍이 거세다.
예장통합 교단은 21일 온라인 비대면 방식으로 105회기 총회를 진행했다. 전주 동신교회 신정호 총회장이 새 총회장에 올랐다. 하지만 관심은 신임 지도부 인선에 있지 않았다. 교계 안팎의 관심은 김하나 목사 위임청빙을 2021년 가능케 한 명성교회 수습안 철회 여부였다.
총회 현장에선 제주노회가 나서 명성교회 수습안 철회를 본회의에서 무기명 비밀투표로 처리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전임 김태영 총회장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규칙부장 김성철 목사를 호출했다. 김 규칙부장은 "제기된 안건은 헌의위원회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며 제주노회 측 제안을 기각했다.
신임 신정호 총회장도 본회의 처리를 미루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의사진행 발언권을 얻은 제주노회 소속 제주성안교회 류정길 목사는 먼저 이번 총회를 총회임원회라고 규정했다. "총대들의 의견들이 반영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팻말을 들고 있는 총대들의 의견들이 완전히 묵살되는, 오직 총회 임원들이 모여 있는 교회에서만 진행되는 총회"라는 게 류 목사의 지적이었다.
류 목사의 지적은 날이 서 있었다. 류 목사의 발언을 그대로 옮긴다.
"연금재단 이사장직은 박수로 받으시고 신학교 총장 문제는 투표를 하시고.... 지금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가 모두가 바라보고 있는 명성교회 수습안 철회의 경우 12개 노회가 헌의했고 천명 이상의 목회자가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본 회의에서 꼭 다뤄 주실 것을 그토록 호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회 임원들은 이 12개 노회와 수많은 목회자들의 목소리와 호소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임원회로서 이 모든 총회를 마무리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문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신 총회장은 서로 소통이 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그러면서 "지금 말씀하신 총대(류정길 목사)께서는 지금 이건 헌의안으로 들어가서 정치부에서도 충분히 이것을 개진할 수 있고 협의 할 수 있다. 이건 꼭 이시간에 이렇게 할게 아니고 정치부 들어가서 거기에서 얼마든지 토론하고 얘기할 수 있다"고 답했다. 즉, 정치부에서 얼마든지 논의해 처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들만의 세상'에 갇힌 교단 수뇌부
신 총회장의 답변은 납득하기 어렵다. 예장통합 교단 회의규칙 3조는 "헌법 및 제 법규와 정관(명칭 불문) 등의 제(개)정과 임원 총대 선거, 수습전권위원회 구성, 인사문제 인준과 재산 문제의 결정과 처분, 이단사이비 결정이나 철회 건은 화상회의로 처리할 수 없고, 회원이 회의장소에 출석(재석)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105회기 총회가 코로나19로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돼 한계가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12개 노회가 명성교회 수습안 철회를 헌의했고, 회의규칙이 분명히 규정하고 있는 이상 본회의에서 안건이 처리됐어야 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교단 총회가 명성교회 세습에 우호적인 점을 감안해 볼 때, 정치부나 임원회가 밀실에서 명성교회 수습안 철회를 뭉갤(?)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7년 11월 불거지기 시작한 명성교회 세습 문제는 해수로만 4년 째 이어지는 중이다. 그런데 명성교회 관련, 예장통합 교단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이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교계는 물론 사회언론까지 총출동해 열띤 취재경쟁을 벌인다. 소셜 미디어 등 네티즌의 관심도 뜨겁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명성교회, 그리고 노회와 총회로 이어지는 교단 수뇌부는 그다지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105회기 총회에서 보여준 신정호 총회장의 태도 역시 미온적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예장통합 통계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12월 31일 기준 이 교단 성도수는 전년 대비 4만 7,242명이 줄어든 250만 6,985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아직 250여 만 명이어서 안심할 수 있을까?
예장통합 교인수가 2014년부터 꾸준히 감소해왔다는 점은 꽤 의미심장하다.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고 본다. 일반 여론과 괴리된 교단 수뇌부의 안이한 인식이 원인이다. 명성교회 수습안 철회를 둘러싼 논란은 이 같은 괴리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런데 이 같은 인식의 괴리가 어디 예장통합 교단만의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