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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비판에서 신앙성찰로(6):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을 중심으로

글 · 파울로 연세대학교 신학박사(Ph. D.)

기도는 자기를 긍정하는 인간 자신의 심정인가?

"기도할 때 인간은 신에게 너(Du)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것은 인간이 큰 소리로 분명하게 신을 인간의 다른 자아(anderes Ich)로 선언한다는 의미다. 인간은 자기에게 가장 가깝고 가장 친밀한 본질로서의 신에게 다른 사람이 들을까 두려워하는 자기의 가장 은밀한 생각이나 가장 깊은 마음속의 소원을 고백한다. 인간은 이러한 소원들이 이루어질 것을 신뢰하고 확신하며 발설하는 것이다. 자기의 탄식에 대하여 조금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본질에 인간이 어떻게 의존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기도는 그것이 실현될 것이라는 신뢰 속에서 표현된 마음의 소원 이외의 무엇이겠는가? 이들 소원을 실현시켜주는 본질은 자기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자기 자신에 동의하며 어떤 이의나 항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자기를 긍정하는 인간의 심정 이외의 무엇이겠는가?"(포이어바흐, 『기독교의 본질』, 216)

표면적으로 기도는 자기와 다른 타자를 설정하고 타자에 대한 신뢰를 근거로 자기가 실현하고픈 소원을 아뢰는 행동 양식을 보이나 그 이면을 살펴보면 기도에서 설정한 타자는 자기와 분리된 타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결코 거스르지 않으며 언제나 변함없이 자기를 긍정하는 자기 자신의 심정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그의 지적처럼 인간의 배타적 자기긍정 욕구가 전제되지 않는 기도 행위라는 게 과연 가능할까? 내가 원하는 것을 나보다 더 잘 알고 내가 원하는 바를 끝내 이뤄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않는 기도는 기도의 본래성을 상실한 기도에 다름 아니다.

식전이나 식후 혹은 이기주의적인 기도가 아니더라도 고통으로 가득찬 기도, 위안을 찾는 기도조차 응답해 줄 의무가 신에게 있는 것이고 그런 인간의 고통에 참여하는 사랑의 신이야말로 내가 믿는 신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인간의 기도 행위에서는 이처럼 신의 자리 설정보다 인간 자신의 배타적 자기 긍정 욕구에 의한 소원의 실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기도란 내가 믿는 신이 누군가에 관심이 있기 보다는 내가 원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내 소원을 성취해 줄 내가 믿고 싶은 신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종교적 행위일 따름이다. 포이어바흐는 이러한 기도의 행위가 내재하고 있는 신에 대한 압력 행사를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심정을 빌미로 자식이 부모에게 떼를 쓰는 것에 빗대기도 한다.

"아버지는 아이의 평안과 행복 이외의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 살아 있는 수호신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목적으로 삼고 스스로를 아들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어떤 것을 아버지에게 간청하는 아이는 아버지를 자기와 구분되는 독자적인 본질, 주인 또는 일반적인 인격으로 간주하고 청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감정, 아들에 대한 사랑에 의존하고 규정되는 그런 아버지에게 청을 하는 것이다. 청원은 아이가 아버지에게 행사하는 압력의 한 형태-압력이라는 표현을 여기서 사용해도 된다면-일 뿐이다. 왜냐하면 아이의 압력은 아버지 마음 자체의 압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간청이나 명령에 해당하는 말은 똑같은 형식, 명령법을 사용한다. 청원은 사랑의 명령법이다.(『기독교의 본질』, 221)

이와 같이 감정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기도 행위 속에는 짙은 강제력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이 옳든지 그르든지 간에 아이가 원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아이의 기도는 강제성을 띠고 어느새 아버지의 마음을 집요하리만치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왜 이런 강제성을 띠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지성적 차원에서 투사가 합리주의의 표상인 확실성을 추구하는 반면 감정적 차원에서의 투사는 신비주의의 표상인 절대성을 향하게 되기 때문이다.(정재현, 『신학은 인간학이다』, 358)

이와 같이 기도 행위 속에 요구되는 신은 사유의 분별성에 터한 지성의 신도 도덕적 완전성에 기댄 의지의 신도 아닌 인간의 나약함을 끌어 안아주고 죄로부터 해방과 구원의 소망을 충족시켜 줄 감정의 신, 곧 사랑의 신이이어먄 하는 것이다. 사랑의 신 혹은 신의 사랑은 인간처럼 살과 피를 가진 사랑으로 다가오면서 지나친 인격성이 부여됐다. 감정적 차원에서 투사된 신은 불가피하게도 인격신으로 옹립될 수밖에 없었던 것 것이다.

인간에게 요구되는 인격신에 대해 포이어바흐는 "일반적으로 인격적인 인간은 인격성 안에서 비로소 스스로가 되며 스스로를 발견하는데 있다"고 간명하게 답한다.(『기독교의 본질』, 189). 인격성이 신의 본질로서 규정되기에 앞서 이미 인격성이 그 자체로 최고의 본질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점도 들었다. "인격이 아닌 것은 죽어 있고 무며 인격적인 존재만이 생명이며 진리"(『기독교의 본질』, 189)라는 것이다. 포이어바흐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지성에서 의지로 또 감정의 차원으로 이어지는 투사의 전 과정을 관통하고도 남을 그 근거는 다름 아닌 인간의 자기 확인 욕구였다. 지성에서 의지로 또 감정으로 투사의 준거가 옮겨지는 과정의 중심에 이 같이 인간의 배타적 자기 확인 욕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른 바, 투사의 불가피성이다.

"신의 관념을 매개하거나 기초 짓는 것이 인간에게는 신의 관념 외부에 있다. 신의 관념의 진리성은 인간이 신으로부터 배제하는 모든 것은 비신적인 의미를 가지고 비신적인 것은 무의 의미를 갖는다는 판단 안에 이미 들어 있다."(『기독교의 본질』, 188)

신의 관념 외부에 있는 것으로 신의 관념을 설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있는 것으로 신에게 있는 것을 상정할 수밖에 없는 투사의 불가피성을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이상과 같은 논의에서 우리는 인간과 신의 만남에 있어서 지성, 의지, 감정 등의 인간의 정신 요소를 매개로 한 투사의 불가피성을 확인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이 투사의 중심에는 인간의 자기 확인 욕구가 똬리를 틀어 인간의 요구와 기대에 가장 잘 부합하는 신관을 그려나가게 한다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욕망은 인간의 자기반성 결여 탓에 그간 원초적 종교성이란 이름으로 포장되고 은폐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신학은 인간학이다』, 359)

말하자면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 따 인간을 창조했지만 인간은 거꾸로 인간의 모습을 투영해 신을 그리는 신성 모독 행위를 서슴없이 범해 온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런 행위가 마치 신으로 하여금 신 되게 하는 것이란 착각 속에 빠져 살아왔던 것에 다름 아니다. 인간은 이처럼 생래적으로 자기를 확인하고 자기를 확장하는 본능에 충실한 반면 자기 이외에 혹은 자기를 벗어난 '다름'을 수용하는 능력은 현저히 부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중세에 이르기까지 인간사를 돌아보면 동일성으로 표현되는 소위 '같음'의 향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점은 이를 방증해 주고 있다. 시대마다 때로는 '본질'로 때로는 보편성을 담보하는 '진리'란 이름으로 그 형태를 바꿔가며 내용을 유지해 온 '같음'의 지배 아래 우리 인간의 삶의 '다름'은 억압을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재현은 종교적 차원에서 이러한 '같음' 혹은 '동일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지배적 욕망을 포이어바흐가 직시할 수 있었던 것이 그가 '있음과 앎의 같음으로서의 참'이란 자기 폐쇄성에 저항해 '삶믜 다름에 닿는 참'이라는 개방성을 향하는 현대의 시대정신에 선구적으로 충실하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신학은 인간학이다』, 349)

정말로 포이어바흐는 자기 확인 욕구에 충실한 종교적 인간의 원초적 종교성이야말로 신적 투사의 원천이었다고 선포하는 데서 선구자적 역할을 찾은 것이 아닐까? 인간은 이렇듯 원초적 종교성에 기인해 자기가 생겨 먹은 대로 신 이미지를 그려왔고 그렇게 그려온 신 이미지에 신이란 이름을 붙여 신을 길들여 왔던 것이다. 그러한 신이란 '있는 그대로의 신'과는 거리가 먼 '내가 믿고 싶은 신'에 불과할지라도 그와 같은 자기 대상화의 산물로서의 신, 자기를 우상화해 만들어 낸 신을 신 자체로 붙들고 거기에서 안정을 찾고자 한 것이다.

포이어바흐는 이를 두고 "인간이 자신을 압박하거나 방해하거나 불쾌하게 하는 것들은 종교 안에서 버린다"고 비판한다.(『기독교의 본질』, 188) 그에 의하면 인간이 신 안에서 만족을 얻게 되었다고 말은 인간이 자기 자신 안에서 만족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포이어바흐는 인간이 만족하며 행복해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 자기의 본질로 돌아왔을 때라고 강조한다.(『기독교의 본질』, 189) 인간이 종교 안에서 자기를 닮은, 아니 자기와 같은 인격신을 상정하고 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 안에서 자기를 발견할 때라야만 인간의 욕망의 원천인 자기 확인 욕구가 충족된다는 말이다. 이처럼 감춰진 종교의 비밀을 폭로한 포이어바흐는 이제 자연스럽게 종교의 비밀 안에 도사리고 있는 종교의 모순으로 눈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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