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태우 국가장 영결식 중 부적절한 기도로 사퇴 압력을 받아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이홍정 총무가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연임에 성공했다.
NCCK는 지난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구세군영등포영문에서 70회 총회를 열어 이 총무의 연임을 인준했다. 총회 현장은 시작 전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2030에큐메니칼 활동가'들은 이 총무의 사퇴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총회 본회의에서도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잇달아 나왔다.
이 총무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한껏 몸을 낮췄다. 결국 이 총무의 거취는 무기명 비밀투표에 부쳐졌고, 유효투표 127표 중 찬성 96표, 반대 31표를 얻어 이 총무는 연임에 성공했다. 총회 실행위원회에서 단일 후보로 추천 받은 총무 거취를 두고 비밀투표가 진행된 건 무척 이례적이다. 그만큼 이 총무의 고 노태우 영결식 기도가 일으킨 파문은 심각했다.
NCCK가 이 총무를 재신임했지만,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개신교, 특히 보수 개신교는 5.18광주에 큰 빚을 지고 있다.
광주 유혈진압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던 1980년 8월 한경직, 정진경, 김준곤 목사 등은 서울 시내 유명호텔에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 기도회>를 열었다.
행사는 기도회였지만, 이 자리는 전두환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축복하는 자리였다. 당시 영상을 들여다보면 전두환도 다소 격앙된 기색이 역력하다.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이에 반대하는 광주 민중을 유혈진압한 장본인 전두환을 불러 축복 기도한 일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의식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이 사건은 개신교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뿐만 아니다. 보수 개신교는 5.18광주를 폄하하는 데 자주 악역을 맡았다. 지만원이 주장하는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로 소비한 쪽은 보수 정치권과 보수 대형교회 목사들이었다.
한편 지난 2019년 9월 당시 자유한국당 이종명(비례)·김진태 전 의원(춘천) 등이 국회의원회관에서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아래 5.18 공청회)를 열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런데 공청회를 주도한 이종명 전 의원과 김진태 전 의원은 각각 대전 자운교회 장로와 춘천중앙교회 집사로 시무 중인 개신교인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 총무의 고 노태우 국가장 기도에 에큐메니컬 운동 진영 전반에서 비판 여론이 들끓고 총회 현장에 사퇴 목소리가 나온 건 단순한 실수에 따른 반발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런 이유로 "이 사건은 교단 협의체로서의 형식과 구조만 남고 NCCK가 그 역사성과 현장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다는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 하성웅 총무의 지적은 더욱 뼈아프다.
얄궂게도 NCCK 총회가 이 총무를 재신임한 다음 날인 23일 오전 전두환씨가 사망했다. 이 총무 본인이나 그에게 힘을 실어준 NCCK 총대의원이나 민망할법한 사태 전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