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가 바벨탑 이야기에는 심각한 문명 비판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5일 주일예배 설교에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벨탑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성령강림 사건은 사도들이 방언으로 말하자 순례 차 예루살렘에 와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자기가 태어나 살던 지방의 말로 들었던 사건 등을 포함하고 있다. 반면 바벨탑 사건은 탑을 쌓는 이들의 이름을 날리고 흩어지지 않게 하자는 두 가지 동기에 의해서 전개된 것으로 김 목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연과의 투쟁을 통해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자구책이었다.
김 목사는 바벨탑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탑을 쌓을 때 돌이 아닌 단단히 구워낸 벽돌을 사용했고 흙 대신 역청을 사용했다. 벽돌은 도량형의 통일을 상징한다"며 "역청은 틈 없는 연결을 가리킨다. 벽돌과 역청은 하나의 목소리만이 허용될 뿐 다른 목소리는 허용하지 않는 제국주의를 달리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사불란, 총화단결이라는 말은 전체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흔히 듣던 표현들이다"라며 "벽돌과 역청의 세상은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진짜 평화는 없다. 차이가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신적인 존재가 되려는 인간의 오만함을 그냥 두고 보실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을 흩으시고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고 전했다.
바벨탑 사건을 전후에 나타난 언어의 혼잡에 대해서는 "징계이지만 은총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저마다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살 수 있게 하셨다"며 "다름을 용납하는 것이 하나님의 세계의 특색이다. 그 세계는 화이부동의 세계이다"라고 말했다.
바벨탑 사건이 남겨 놓은 숙제도 되새겼다. 김 목사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그 한계를 뛰어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사도들은 자기들의 언어로 말했지만 각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익숙한 언어로 알아들었다. 상호 소통이 일어난 것이다"라고 했다.
아울러 "차이는 존재하되 영적으로 깊이 연결됨을 느끼게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라며 "지금 같은 불통의 세상에 성령께서 임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성령강림절 사건은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다"라고 덧붙였다.
차이를 억압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자는 취지 아래 시편 시인이 하나님께 청하는 것 중 살인죄를 짓지 않게 지켜달라는 대목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 총기 규제 논의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다.
김 목사는 "나의 죄를 숨기기 위해 혹은 나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도구로 삼거나 해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푸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신정 국가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선전한다. 서방 세계의 가치관에 물든 우크라이나를 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명분 뒤에 숨은 추악한 욕망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미총기협회(NRA)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총기의 소유와 사용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들로부터 막대한 후원금을 받는 정치인들도 같은 논리로 총기 규제에 반대한다"며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그럴듯한 명분을 만든다. 우리는 생명과 평화를 저해하는 어떤 논리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