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가 홀로 만족하며 자기를 숭배하는 신앙은 '하나님 나라 시민'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고통과 결핍 속에 있는 이웃과 함께 아픔을 나누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지난 11일 주일예배 설교에서 포항 지하 주차장에서 꽃다운 나이에 숨진 15살 학생과 홍수로 다세대주택에 살다 숨진 세 모녀 사건을 기억하며 "풍요를 누리는 세상이지만 우리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이들이 많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인간은 이리도 슬픈데, 주여, 바다는 너무나 푸릅니다"라는 엔도 슈사쿠의 문학비에 새겨진 문구를 되새기며 "애상에 빠지기는 싫지만 가끔은 세상에 가득 찬 슬픔에 가슴이 미어지기도 한다. 아픔을 겪는 이들 곁에 조금씩이라도 눈길을 주고, 곁에 다가가고 그들을 고립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게 우리의 소명이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이날 신명기 26장 5~11절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를 전한 김 목사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다져가는 모습을 주목했다. 그는 "첫 열매를 제단 위에 바친 후 이스라엘은 한 목소리로 '내 조상은 떠돌아다니면서 사는 아람 사람으로서 몇 안 되는 사람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몸붙여 살면서, 거기에서 번성하여, 크고 강대한 민족이 되었습니다'(신 26:5)로 시작되는 고백문을 낭송했다"며 "의례화된 이 구절을 반복하면서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곤 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김 목사는 이어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과거를 통해 형성되었지만 미래에 실현해야 할 가치를 통해 완성된다는 것이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도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품고 산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의 정체성은 그렇기에 의무와 헌신과 충성을 내포한다. 예배는 그런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자리다"라고 했다.
애굽에서 탈출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선 이스라엘이 제국으로 성장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은혜였다는 평가도 내렸다. 김 목사는 "인간은 언제나 '네가 신처럼 되리라'라는 뱀의 유혹 앞에서 흔들린다. 우리 속에는 알게 모르게 다른 이들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사람들이 돈과 명예와 권력을 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라며 "지배의 욕망이 제도화된 것이 제국이다. 제국은 언제나 힘이 없는 이들을 수단으로 대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다. 하나님이 제국을 미워하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야훼 하나님은 제국의 그림자 밑에서 고통당하는 이들의 신음 소리를 기도로 들으시는 분이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기다려야 하는 이스라엘은 제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없는 땅이다. 어쩌면 그게 바로 은혜인지도 모르겠다"고 밝혔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로 함께 누리는 삶을 꼽기도 했다. 김 목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홀로 누리는 것은 진정한 예배가 아니"라며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를 헤아리고 그들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배의 표징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프랑스인들의 존경을 받는 아베 피에르 신부가 인간을 구분한 기준을 언급하며 공감을 표시했다. 김 목사에 따르면 아베 피에르 신부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구분이 ''믿는 자'와 '안 믿는 자'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홀로 만족하는 사람 즉 자신을 숭배하는 사람과 공감하는 사람 사이에, 다른 사람들의 고통 앞에서 등을 돌리는 사람과 고통을 나누려는 사람 사이에 있다고 말한다.
이에 김 목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았다. 그 말은 우리가 서로에게 책임적인 존재가 된다는 말이다. 다른 이들의 곤경을 해결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사랑과 신뢰 속에서 함께 살고 관심사를 서로 나누고 홀로 할 수 없는 일들 이루기 위해 협력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것을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세상으로 형상화한 바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김 목사는 "수해로 고통을 겪고 있는 파키스탄 사람들, 경주와 포항의 이재민들을 기억한다"며 "모든 고통을 다 해결할 수 없다 하여 세상에 만연한 고통을 외면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도 외면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선물이라면 우리 또한 누군가의 선물이 되어 살아야 한다. 뿌리를 돌아본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