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는 인간의 인간다움을 하나님이 인간에게 두신 희망에서 찾는다. "성서와 기독교는 휴머니즘처럼 사람에게 희망을" 두는데, 그 근거가 하나님이 "태초부터 무슨 희망을 가지고 사람을 만드"셨다는 믿음에서다.
인간의 인간다움을 중시하는 것을 휴머니즘이라고 할 때, 휴머니즘은 근대부터 두각을 크게 나타내기 시작했다. 데카르트와 칸트 이후에 인간의 주체성이 강화되었고, 강화된 주체는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지반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양명수 교수는 〈하나님의 희망인 사람-휴머니즘과 기독교〉 논문에서 근대의 인간중심주의적 휴머니즘과 기독교의 휴머니즘을 비교한다. 특히 칸트가 말하는 인간과 헤겔이 말하는 인간을 다룬다. 이들도 인간의 인격과 희망을 말하고 또 신을 말하지만, 그러나 인간에 대한 긍정의 출발점에 신과의 관계가 없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와의 차이점이다.
칸트가 말하는 인간도 낙관적이고 긍정적이다. 양명수 교수는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변증론을 소개한다. 칸트의 순수한 실천이성에서 사람이 사람다운 존재가 되려면 사람은 정언명령에 따라 오직 법칙에 대한 존중심에서 행위해야 한다. 그런데 이 의로운 행위는 개인의 행복이나 즐거움과는 별개의 문제이고, 정의로운 행위가 행복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착하게 산 사람의 인생의 인생이 반드시 행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은 우리도 실존에서 삶에서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기본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인데, 행복은 어디서 보상을 받는가?
칸트의 체계에서도 의로운 사람이 그만큼 인정받고 대접받는 세상은 언젠가는 반드시 온다. 그러나 그 언젠가를 사람이 알 수는 없다. 다만 행복이 목적이라고 할 때 그 목적은 "이 세상에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고 나중 세상에서나 실현된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실현될 것이라고 본다. 사실 이것도 이것대로의 '믿음'이다.
행복이 지금은 보장 불가하지만 "나중에"라도 가능하려면, 이것을 보증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이 존재는 도덕적으로도 완벽해야 하고, 또 인간사의 모든 인과와 우연을 다 뛰어넘을 전능함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존재는 사실상 신이다. 즉 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칸트의 체계에서도 신은 필연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칸트 체계에서의 신과 기독교가 말하는 신은 다르다. 양명수 교수는 이를 밝힌다. 양 교수는 칸트 체계에서의 신을 "실천이성이 낳는 신"이라고 밝힌다. 신이 실천이성을 낳은 것이 아니라 실천이성이 먼저 있었고 그것이 신을 있게 하였다는 말이다. 이때 신은 세상에 의로움을 보장하기 위해 "전제되는 신"이고, 또 인간이 의로운 보상을 받기 위해 "요청되는 신"이다.
이러한 신과 인간은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 양명수 교수는 칸트의 체계에서 요청된 신에 대하여 "하나님이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책임도 안진다. 책임의 근거는 오로지 주체인 인간의 자유에 있다"라고 밝힌다. 칸트가 저 하늘 위의 빛나는 별과 우리 마음 안의 도덕법칙을 노래하였고, 인간은 정언명령을 따르는 도덕적 희망이 있는 존재이지만, 이 기저에 신과 인간의 인격적 관계는 없다. 정언명령에 따라 행위하는 인간과 거기에 대하여 '보상하는' 신이 있을 뿐이다.
양명수 교수는 아울러 헤겔이 그의 <법철학>에서 다룬 인격도 소개한다. 헤겔은 인격을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다룬다. 자연은 보이는 것 그대로가 다이고 자연에는 속[내면]이 없다. 내면이 없는 자연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없다. 그러나 인격은 "자기 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인격은 무한성의 자유를 지닌다. 인격이 이 자유를 실현할 때 그 형태가 첫째로는 자연 세계에 대한 지배로 나타난다. 인간이 자연 세계 즉 바깥 세계로 자신을 확장하면서 나타나는 것이 "물건에 대한 권리"이다. 그러니 이 권리는 인간 자유의 실현인 것이다.
물건에 대한 권리를 다른 말로 하면 "소유권"이다. 헤겔의 체계에서 나오는 인간의 소유권은 단순히 점유권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가지고 자신의 의지를 자연 세계에 확대한 것이다. 그러니 소유권은 "개인이 자연에 대해 가지는 지배권이요 절대권"이면서 인간의 "자유의 실현"이다. 이 때 소유권은 욕망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인격만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 실현에 의한 것이다. 때문에 소유권은 인간의 절대 권리이다.
이와 같은 헤겔의 인격과 자연의 관계에서 신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하여 양명수 교수의 논문은 서술하지 않는다. 다만 칸트 논의와 관련하여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기독교는 자연에 대한 "책임"을 가진다고 밝힌다. 칸트는 도덕 악에 대하여 인간의 책임을 말하였고 헤겔은 자연 세계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말하였는데, 기독교의 관점에서는 사회적 재앙 뿐만이 아니라 자연 재앙에도 인간이 책임을 가진다고 밝힌다. 인간의 죄 때문에 자연재앙이 발생한다는 논리가 아니라 "악과 고통의 문제에서 기독교는 그만큼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인간다움 즉 인격은, 칸트에서는 도덕 능력으로 서술되고 헤겔에서는 권리 능력으로 서술된다. 이 인격적 특성들은 인간을 다른 종과 구별되게 하여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희망을 가진 존재가 되게 한다. 이에 반해 성서와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희망을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는다. 다음 글③에서 이를 더 자세히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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