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루터의 두 왕국론, 지배권력 합법화시키는 이데올로기 아냐"

김주한 한신대 교수, '신학사상' 최신호에 연구논문 게재

'신학사상' 최신호(202집)에 루터의 두 왕국론 구도에서 그의 자연법과 그리스도 법의 상관성을 연구한 논문이 게재됐다. '마르틴 루터 신학에서 'lex naturae'와 'lex Christi'의 상관성 고찰: 그의 두 왕국론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주한 교수(한신대)는 "루터의 법적 사상은 그의 두 왕국론을 통해 접근할 때 그 근본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루터의 두 왕국론을 둘러싼 비판도 조명했다. 그에 따르면 루터의 두 왕국론은 국가 권력을 합법화시키고 세속 권력에게 과도한 자율성을 부여해 세상 변혁을 위한 운동보다 현상 유지를 도모하며 결국 정치적인 억압이나 사회적 불의에 대해 윤리적 침묵을 강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루터에 대한 비판의 요지를 종합하며 김 교수는 "즉 루터는 공적 윤리와 사적 윤리의 구분을 신학적으로 합법화시킴으로써 공공의 영역에서 정치적으로 무비판적인 태도를 지향하게 만들었고 개인의 일방적인 헌신과 희생을 요구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루터의 사상 체계에서 자연법과 그리스도의 법은 하나이며 이 법의 원리는 사회적 입법의 근간"이라며 루터의 두 왕국론의 구조를 살피고 자연법과 그리스도법의 상관성을 논증했다.

먼저 루터의 두 왕국에 대해 "영적 왕국과 세속 왕국은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는 수단이요, 두 가지 방식이다"라며 "하나님은 이 세상과 관계하시기 위해 두 정부를 세우셨다. 하나님 오른쪽에 영적 정부, 왼쪽에 세속 정부가 있다"라고 김 교수는 밝혔다.

그에 따르면 영적 정부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고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관계한다. 이 정부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을 복음과 설교, 성령으로 다스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한 자들로 거듭나도록 이끄신다. 반면 세속 정부는 창조의 세계, 인간의 의지와 이성이 작동하는 영역으로, 이 정부는 인간의 사회적 삶의 모든 영역, 즉 결혼, 가족, 국가, 재산, 상업 활동 등을 모두 포함하는 제도와 규범이 총망라되어 있다. 이 정부의 목적은 시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며 평화를 교란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처벌하고 바로 잡는 일이다.

김 교수는 루터의 두 정부를 대표하는 교회와 국가가 "분리되지 않지만 구분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지배하거나 또 각자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며 "영적 정부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세상의 평화와 질서가 필요하며 세속 정부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 영적 정부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두 영역은 세상의 악과 무질서에 대항하여 상호 협력 관계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두 영역에 대한 구분 강조가 "그리스도인의 사회 윤리를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데 대해 김 교수는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은 철저하게 일체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며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세속 정부에 속한 한 시민으로서 그는 모든 만물에 충실한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되어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어 교회와 국가라는 두 영역 모두 "창조의 과정과 함께 부여된 법질서, 즉 자연법 정신의 지배를 받는다"며 "자연법의 핵심은 이웃 사랑이며 두 왕국론 구조는 그 목적을 위해 창출된 정치이론"이라고 강조했다. 자연법이 두 왕국론을 관통하는 근간이요,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자연법을 근거로 개인의 영역과 공인의 영역이 구분되지만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도 확인했다. 김 교수는 "얼핏 모순되어 보이지만 루터는 하나이고 단일한 법의 정신, 즉 이웃 사랑을 최고의 목표요 가치이자 규범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영적 정부나 세속 정부, 개인과 공인의 영역 모두 그 목적에 복무하도록 질서 지워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분리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루터가 구분한 자연법과 그리스도의 법의 상관성도 논했다. 김 교수는 "루터는 자기를 부인하고 희생하는 사랑의 법 관점에서 이성의 자연 법과 그리스도의 법을 구분하고 있다. 이 구분은 양자의 우열이나 상하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정신과 기능의측면에서다"라며 "불의와 억압에 저항하는 일은 자연법적인 규율이나 이성의 합리적 통찰에 근거하여서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원수를 갚는 일이나 불의를 견디고 인내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법, 즉 사랑의 동기 없이는 실천할 수 없다. 타자를 위한 온전한 희생, 자기 부인, 이타적인 사랑의 실천은 오직 그리스도의 법, 십자가 사랑만이 가능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루터의 두 왕국은 구조의 관점에서 볼 때 세속 사회에서 사회 윤리의 기준과 원리, 실정법의 배후에 자연법이 자리한다"며 "앞에서 지적했듯이 루터의 정치 신학이 지배 권력을 합법화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는 비판도 그의 자연법 사상을 통해 반박될 수 있다"고 전했다.

김진한 편집인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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