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던 민중신학자 고 안병무 선생의 '민중 메시아론'에 대해 서구신학자를 비롯해 민중신학자들 마저 민중을 실체화하는 우를 범했다며 안 선생의 민중은 "실체가 아닌 사건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가 최근 서울 광화문 소재 향린교회에서 열린 2023 안병무 학교 길목 인문강좌 강사로 나서 '안병무의 민중신학과 오늘의 목회 현장'이란 제목의 강연에서 이 같이 밝히며 사건의 신학으로서의 민중신학의 면모를 부각시켰다.
그는 먼저 민중신학의 독특성 중 하나로 사건의 신학을 꼽으며 이 사건의 신학이 서구 신학에 대결하는 동아시아 전통에 잇댄 한국신학이었음을 소개했다. 한 목사는 "신학이라고 할 때 신학은 붙여 쓸수가 없다. 신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학문적 언어로 가질 수 있는가?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사실은 서구 기독교 신학의 2천년 역사 속에서 상당히 근대에 이르기까지도 중세는 이루말할 수 없을 만큼,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을 펴내면서 자기가 신에 대해서 설명해 보겠다는 거 아닌가"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래서 하나님이 기다렸다는 거 아닌가? 아퀴나스가 오기만을. 나도 날 잘 모르겠는데 니가 날 뭐라고 하는지 듣고 싶다 이랬다는 거. 그렇게 고중세신학. 근대까지도 사실은 인간의 언어로 신을 설명할 수 있다라고 착각한 것이 신학의 역사다. 오늘날에 와서야 이 학의 언어로 신은 붙잡을 수 없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옛날에는 신학이 뭐냐고 물어보면은 신에 대한 학문. 말이 안된다. 어불성설이다"라고 했다.
또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신에 대하여 인간이 한 말을 한번 분석해 보자는 것이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 하여튼 그런 것 조차도 신의 존재 유무 이거는 신학이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은 인식적인 것으로 파악될 수도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완전 달라지는 현대 신학에서는 이해가 되는데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한 목사는 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신을 모른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실 신은, 신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솔직히 모른다는 것이고 현대철학의 비트겐슈타인의 말에 의하면 모르는 것은 말 안해야 된다. 근데 놀랍게 오랜세월 동안 말을 해왔다. 하나님을 불러왔고 뭔가 설명을 했고 실제적으로 신-인 관계. 어떤 종교 체험을 하면서 그것을 신이라고 불러온 너무나 오래된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러면 이제 무엇을 신으로 부를 것인가가 신학의 핵심이 된다"고 전했다.
민중신학의 독특성은 개인을 실체로 이해하는 서구신학에 도전하며 사건의 신학을 전개한 민중신학에 대해 "엄청난 사건"이었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사건의 신학이라는 거 자체가 민중 메시아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실체가 먼저 있고 그 실체가 활동하는 게 아니라 계속 벌어지는 사건 속에서 어떤 실체가 매순간 만들어진다라고 하는 것이 동아시아 전통의 가장 오래된 존재에 대한 이해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 같은 경우도 이제 서구신학을 공부할 때마다 이런 인격적, 특히 초자연적 유신론이 말하는 이 자연 위에 저 바깥에 어딘가 멀쩡이 살아계셔서 우리 인간 같은 느낌으로 우리와 상대하시는 분에 대한 이해를 하기가 어렵다. 저도 그렇다. 그런 하나님 안 만나진다. 아무리 기도해도. 그런 체험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신을 얘기할 것인가가 문제인데 거기에 대해서 안 선생님은 사건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사건의 신학이 민중 메시아론으로 이어지고 있음도 밝혔다. 그는 "민중들이 우리 한국 역사를 보면은 모여서 뭔가 억압이 극에 달핬을 때 그것을 극복해 내고 역사의 전환기를 이뤄내온 역사가 있다"며 "그런 사건들을 만들어 내는 담지자로서의 민중을 안 선생님이 만났다고 여기신 거다. 그런 종류의 사건 중 하나로 전태일 사건을 본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런 사건 중에 있는 것이 모든 기독교의 요소라는, 신이나 예수나 구원이나 모든 요소가 그런 거라면 그 사건일 이루어가는 그 자체가 구원이다. 그러면 민중이 구원자가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한 목사는 특히 고 안병무 선생 생전에 민중신학을 놓고 논쟁을 벌인 몰트만에 대해 "몰트만이 한 얘기 중 가장 큰 거는 그거다. 예수가 민중인 것은 이해하는데 민중이 예수는 받아들일 수 없다. 민중이 예수라면 민중은 누가 구원하는가? 이렇게 묻는다. 민중의 죄를 누가 구원할 것인가 말할 때 벌써 저는 그리고 그 이후에 많은 민중신학자들이 헷갈렸다고 생각하는데 그때 민중도 똑같이 예수를 실체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민중도 실체로 생각하니까 그런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저는 거기서 실수했다고 생각한다. 모든 학자들이. 저는 안 선생님이 생각하신 건 잘 모르겠지만 제가 받아들이는 민중 내지 동양 전통에서의 그 사건에서의 민중은 계속 구성되는 것이지 실체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실제로 계속 만들어져 가면서 구원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 오히려 민중이 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리고 그 질문에서 민중이 구원자냐고 물을 때 그 질문은 마치 그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에서 자기를 중심에 놓고 누가 내 이웃인가와 동일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 질문을 할 것이 아니라 나는 과연 민중 주체로서 구원 사건을 일으키는 자리에 참여하느냐라고 그렇게 성찰해야 된다라고 말했던 것으로 저는 안 선생님의 민중 메시아론을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민중신학에 대한 이러한 이해에 근거해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 현실도 돌아봤다. 그는 "한국교회 성서를 모른다. 대체적으로 복음주의, 보수주의 교회 다니는 분들은 성서를 잘못 읽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진보적인 교회 가서는 교인들이 성서를 안 읽는다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성서를 안 읽고 잘못 읽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게 하나의 저에게 중요한 문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안 선생님처럼 성서에서 그런 엄청난 예수의 구원 사건 또는 민중 예수의 구원 사건을 발견하는데 그거를 어디서도 오늘날 하지 못하고 있더라. 그게 허나 문제점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교회 안에 민중 예수도 없고 구원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실제로 교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교회 구성원들의 자기초월적 구원과 성숙이 발생하는가 물을 때 상당히 약하다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이 밖에 "70,80년대 우리 한국교회는 부흥기를 맞았는데 성장한 교회들을 보면은 미국 모델, 빨리 빨리 수입하는 것이다. 신학도 수입 신학이고 목회도 수입 목회를 해온 것이다. 이 땅에서 우리들이 정말 우리 민중들에게 또는 우리 삶에 가장 맞갖은 신학과 목회는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