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예루살렘에 신이 있다는 믿음이 모든 불행의 시작"

크리스챤아카데미 이상철 원장, NCCK 11월 '사건과신학'에서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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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NCCK)
▲우리도 공범이다: 시온에 새겨진 광기의 잔혹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1월 '사건과 신학'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라는 주제를 다룬 가운데 이상철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의 '우리도 공범이다: 시온에 새겨진 광기의 잔혹사'란 제목의 글이 실렸다. 이번 사태에서 '알 아크사'를 둘러싼 갈등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고 진단한 그는 종교들 사이 "신을 향한 진정성, 정통성 문제, 그것을 둘러싼 인정투쟁"의 문제를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 글에서 이상철 원장은 먼저 불행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분할과 지배의 역사를 복기했다. 그는 "이런 저런 중동전쟁의 역사를 거치면서 이스라엘은 미국의 비호아래, 국제적 약속을 어기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쫓거나 일정구획으로 몰아넣으면서 자신들의 영토를 넓혀왔다"며 "현재는 44%를 약속받은 아랍 민족이 10%에도 못 미치는 몇 개의 자치구역 영토에 살고 있다. 그렇게 자신들의 땅을 계속 잃어가면서 저항하고, 그러다가 죽고 다시 그 한과 원망으로 저항을 하고, 그때마다 이스라엘은 더 강하게 진압을 하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웨스트뱅크, 동예루살렘, 가자지구를 차지했으나 1987년 이스라엘에 맞선 민중봉기(인티파티)가 일어나면서 양국의 평화협상이 이뤄지고 팔레스타인은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에 자치정부를 수립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회담을 이끌었던 라빈 총리가 극우 유대교 근본주의 세력에게 암살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는 다시금 큰 위기에 빠진다.

이 원장은 "강경파인 네탄야후(1996-1999 재임)와 에후드 바라크(1999-2000 재임)가 점령지 반환을 거부하면서 팔레스틴의 평화무드는 깨지고 말았다. 2001년 총리로 선출된 아리엘 샤론은 자살테러가 증가한다는 핑계로 웨스트뱅크를 재점령하고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하였고, 2007년에 하마스가 가자지구의 패권을 장악하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동쪽과 북쪽에 8m 높이의 콘크리트와 철조망 장벽을 쌓아버렸다. 가자지구의 남쪽은 이집트 국경(라파), 서쪽은 지중해와 면해있어 사실상 거대한 감옥인셈이다"라고 전했다.

하마스가 유대교 안식일인 지난 10월 7일 새벽 수천발의 로켓포를 쏘면서 선전포고를 한 배경도 짚었다. 이 원장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발단은 하마스가 이슬람 성지를 침범하고 모욕했다고 여기는 일부 유대교 극단주의자들의 행동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이 원장은 "올해에도 일부 유대교 극단주의자들이 4월 5일부터 시작하는 유대교 축일을 기념해 (이슬람 성지인)'알 아크사'에 침범했고 저항하는 무슬림 350명을 이스라엘군이 모스크로 들어가 구금하는 일이 벌어졌다"며 "지난 5월에는 이스라엘의 극우 정치인들이 사원 경내에 기습적으로 들어가 도발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쌓이면서 하마스의 인내심은 한계치를 넘어서 버렸다. 10월 7일 공격 당시 공개된 음성녹음에서 하마스의 '알-카삼 여단'의 사령관 무함마드 알-데이프는 이번 폭력 사태는 이른바 "알-아크사 모스크 뜰 안에서 감히 우리 예언자를 모욕한" 이스라엘인들의 "알-아크사 모스크에 대한 일상적인 공격"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동안 쌓였던 것이 터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알 아크사'를 둘러싼 갈등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며 "문제의 본질은 꽤나 복잡하고 심오하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는 종교들 사이 신을 향한 진정성, 정통성 문제, 그것을 둘러싼 인정투쟁 성격이 거기에는 있다"고 이 원장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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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NCCK)
▲우리도 공범이다: 시온에 새겨진 광기의 잔혹사

이 원장은 그러면서 이슬람과 유대교, 그리스도교를 가리켜 "각 종단간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유일신, 종말론, 신념체계 등이 비슷하였고, 무엇보다 다른 종교들에 비해 그들 모두 호전적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었다"며 "사라센 제국의 확장, 십자군 원정, 현대의 중동분쟁에 이르기까지 서구에서 일어났던 전쟁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는, 예루살렘을 본인들의 성지라 주장하는 종교인들 사이 전쟁 아니었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유대인과 아랍인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예루살렘은 그들의 본향이다. 하지만 신의 축복을 받은 자가 누구냐를 두고 양자는 엇갈린 주장을 펼친다"며 "유대인은 아브라함과 정실부인인 사라에게서 태어난 적자 이삭의 후손이고, 아랍인은 아브라함과 하녀 하갈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 이스마엘의 후손인데, 축복권을 둘러싼 양자간의 인정투쟁이 시간이 흘러 오늘의 참극을 야기했다"고 전했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폭력의 잔혹사를 언급한 그는 그리스도교의 폭력성을 논하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다. 이 원장은 "십자군 원정은 인류역사상 가장 집요한 탐욕으로 예루살렘을 채웠던 시기다. 이교도에게 함락당한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전쟁이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허울에 불과했다"며 "십자군에 참여했던 각각의 주체들(사제, 봉건영주, 기사, 상인, 농노)은 자신들의 욕망과 결핍을 충족시킬 대상이 필요했고 모두의 니즈(needs)가 예루살렘을 향한 환상으로 수렴되었다. 십자군 원정은 교회중심의 중세 유럽이 지녔던 자기분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고 십자군 원정의 실패 후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중세는 서서히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고 했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신화의 시작도 되짚었다. 이 원장은 "오랜 권력투쟁 끝에 왕위에 오른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기고 백향목으로 지은 아름다운 성전에 하느님을 안치시키려 했다. 거기에는 본인의 취약했던 권력의 정통성을 쇄신시키려는 다윗의 노림수가 숨겨져 있었다. 다윗은 모세의 십계명이 보관되어 있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옴으로써 세겜, 실로, 베델 등 북쪽 지파의 힘을 무력화시키고, 동시에 통합의 명분까지 획득하려고 했다. 그래서 하느님의 법궤를 안치할 성전을 세우려 했던 것이다"고 했다.

이 원장은 그러나 "야훼는 출애굽 이후 법궤와 함께, 장막이나 성막과 함께 이동하신 분이다. 굳이 법궤를 둘 고정된 성소와 성전을 만들 의지와 필요성도 없는 신인데, 다윗은 굳이 예루살렘에 신을 안치시켜려 한 것이다"라며 "결국 다윗의 의도는 성사되었고, 그의 아들이었던 솔로몬을 거치면서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과 욕망은 완성되었다. 그 후 역사가 전개되면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하는 종교들끼리 예루살렘에 대한 저마다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2천년 동안 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야훼종교는 애초에 성전이데올로기, 자리에 대한 집착, 장소에 대한 욕망이 없었던 종교였다. 야훼는 철저히 물신을 배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솔로몬 시대를 지나면서 권력은 야훼의 임재와 현존을 공간화하고 성역화하는 데 성공하였고, 그 중심에 예루살렘이 있다. 그런 예루살렘의 장악을 둘러싸고 벌이는 전쟁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갖는 사람들끼리 수천 년간 이어져 오고 있고, 하마스-이스라엘 전쟁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면 맞다"고 그는 덧붙였다.

광기어린 폭력이 서려 있는 예루살렘을 폭파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이 원장은 "예루살렘에 신이 있다는 믿음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다면, 차라리 예루살렘을 폭파해 지구상에서 없애 버리든, 아니면 아브라함의 종교를 폐기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처방책이 아닐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본다"며 "그만큼 팔레스타인의 평화가 우리의 긴급한 기도제목으로 떠올랐다는 반증일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답이 안 나온다. 수천 년 동안 쌓여왔던 원한과 죽음의 바벨탑이 어떻게 한순간 사라질 수 있겠나. 우리에게는 전쟁의 시간만큼이나 오랜 사죄와 용서와 화해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이어갔다.

"신을 예루살렘에, '알-아크사'에, 자신들이 만든 성전 안에, 인간의 언어와 생각의 틀 안에 가두어왔던 종교와 자신들의 카테고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않는 존재들에게 대한 혐오와 적대의 오래된 관성이 이번 사태를 가능하게 했다. 신은 시온에 없다"며 "신은 당신이 임재할 그곳을 스스로 결정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신이 하늘에 계시다'는 그런 뜻으로 읽어야 한다. 또한 신은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하여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시분 분이다."(엡 4:6) 이 말은 인간의 마음대로 신을 가둘 수 없다는 선포임과 동시에 신을 인간의 카테고리 안으로 가두려는 욕망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다"

자기 확신이라는 종교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신을 이른 바, 예루살렘, 알-아크사 등 특정 공간에 가두고 자기 믿음을 우상화하는 우상숭배 행위를 배격해야 한다는 메시지로도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김진한 편집인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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