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종교가 그 어떤 정치설교보다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려면..."

NCCK 12월 '사건과신학'에 최경환 전도사 글 기고

choi
(Photo : ⓒ사건과신학)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2월 '사건과 신학'에서 '재난과 교회'라는 주제를 다룬 가운데 최경환 전도사(중앙루터교회, 인문학&신학연구소에라스무스)가 '애도를 넘어 새로운 헌신으로'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2월 '사건과 신학'에서 '재난과 교회'라는 주제를 다룬 가운데 최경환 전도사(중앙루터교회, 인문학&신학연구소에라스무스)가 '애도를 넘어 새로운 헌신으로'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죽음 앞에선 종교의 역할을 논하며 종교가 "어떤 정치설교보다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려면" 무엇보다 생명과 죽음을 수단화하지 않고 그 자체로 슬픔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전도사는 이 글에서 먼저 국가적 재난 앞에 드러난 정부의 무능에 대해 "재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 같이 살자는 의지는 조금만 버티면 국가가 구해줄 거라는 무언의 안정감이 있을 때나 가능하다. 정부가 우왕좌왕하거나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할 때, 시민들의 선한 의지와 협력은 고통의 상황을 극복하기는 커녕 각자도생의 잔혹함으로 쉽게 전환된다"고 운을 뗐다.

이어 "때론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게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고, 이들을 희생양 삼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도 있다. 위기 상황일수록 국가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 더 강조할 필요가 없다"며 "그럼에도 공공성은 단순히 소유 주체가 국가일 수 없다. 공적 가치를 구현하고 절차적 의사결정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노력과 연대가 필요하다. 문제는 점점 더 각자도생의 생존게임으로 내몰린 개인이 어떻게 시민적 연대와 강한 민주주의를 열망할 수 있냐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개인의 생존과 안녕을 넘어 함께 잘 사는 사회, 개인의 품위와 존엄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도시, 나아가 안전한 국가를 만들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최 전도사는 공적 슬픔으로 인해 주저않거나 죽음의 자리로 내몰리지 않고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역설적이게도 "부서진 마음"에서 찾았다. 이는 파머의 주장을 인용한 것인데 파머는 그의 책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서울: 글항아리, 2012)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운동하지 않은 마음은 좌절이나 분노로 폭발할 것이다. 특별히 긴장된 상황에서라면 폭발하는 마음은 그 고통의 원천을 향해 폭탄 파편처럼 던져질 수 있다. 그러나 고통에 의식적으로 맞닥뜨리면서 마음을 일관성 있게 운동시켜왔다면 부서져 흩어지는 대신 부서져 열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마음은 긴장을 잘 끌어안아 고통과 기쁨 모두가 확장되도록 근육을 사용할 줄 안다."

마음의 근육을 확장하는데 있어서 부서진 마음은 필수적인 과정인 셈이다. 최 전도사는 "여기서 말하는 '마음의 근육'은 평소 낯선 사람들과 생각을 조율하고 갈등을 기꺼이 끌어안으려고 하는 강인한 마음을 일컫는다. 또한 위험하고 위급한 상황에서도 시민들이 함께 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는 희망과 역량을 말한다"며 "서로를 의지하고 세워 줄 수 있다는 강한 시민의식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토대가 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과 함께 뒹굴고 부대끼며 사는 것은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초석이 되고, 결국에는 공공선을 형성하는 밑거름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자부심, 신뢰, 믿음의 근원은 바로 '마음'이다. 이 마음은 동의(agree)보다 공감(sympathy)을 요청하고, 합의(consensus)보다는 연대(solidarity)를 배양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비통한 사건이 고통이나 좌절, 분노로 이어지지 않고, 새로운 희망과 연대로 승화될 수 있을까?"라며 "그 전환의 고리를 마사 누스바움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정치적으로 전유할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최 전도사는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가 다음 단계로 한 단계 더 전진하고, 새로운 시스템이 구축되는 시점들은 대부분 사회적 참사가 휩쓸고 간 이후였다"며 "재난과 참사를 겪고 난 이후 시민들은 이전보다 더 안전한 사회와 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사랑하는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님을 통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위험한 건설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아버지로 인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고장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청년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부서진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다. 시민들의 애도가 새로운 헌신으로 전환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사회를 이루려는 열망으로 응집될 때 우리는 결과적으로 모두가 안전한 국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죽음 앞에선 종교의 역할에 대해서도 논했다. 최 전도사는 "개인의 사사로운 죽음뿐 아니라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참사가 일어날 때, 종교가 이들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의례는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며 "어떤 방식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위로하느냐에 따라 종교는 사람들의 부서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새로운 비전과 헌신으로 이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기독교는 생명과 죽음을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취급하는 집단이다. 정치적인 성향이나 당파적 입장을 떠나 국가적 참사나 재난의 희생자를 애도하고, 그들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는 행위는 종교 본연의 역할이자 기능이다. 설교자의 진심어린 설교가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며 "세월호의 희생자가가 되었든, 천안함 유공자가 되었든 정치인들이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 할 때, 종교는 진심어린 애도와 공감으로 희생자들과 그의 가족들을 위로할 수 있다. 또한 사회적 아픔을 치유할 수도 있다. 생명과 죽음을 수단화하지 않고 그 자체로 슬픔을 공유한다면 이는 그 어떤 정치설교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김진한 편집인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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