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NCCK '사건과 신학'에서는 요즘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을 다뤘다. 필자로 참여한 이훈삼 목사(NCCK 신학위원회 부위원장, 주민교회)는 이번호에 '봄 길목에 도사린 한파를 넘어'란 제목이 글을 기고했다.
이 목사는 '서울의 봄'에 대해 "한 편의 영화가 40여 년 전 우리의 무거운 시대와 공기를 소환했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의 가슴에는 아쉬운 탄식이, 입술에는 분노의 욕설이 그리고 눈에는 슬픔이 흘러내린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시대를 짓밟은 군사반란이 아주 치밀하게 준비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얼마든지 반란을 막아낼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정부와 군은 우세한 조직과 명분과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반란군에게 무릎 꿇고 말았다"며 "그것이 가져온 역사의 후퇴와 그것 때문에 고통당하고 희생당한 수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아쉽다"고 덧붙였다.
이어 "아직도 역사의 죄인들은 아주 떳떳하며, 불의한 권력으로 강탈한 부는 자식들에게 대물림하고 있다. 불의한 자들의 득세에 분노한다. 불의한 영화(榮華)의 반대편에는 양심적 군인과 공무원의 고통과 희생 그리고 이후 그들의 가족이 겪은 비극적 삶이 초라하게 놓여 있어 슬프다. 정의가 불의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한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슬프다"고도 했다.
치밀하게 준비되지 못했던 군사반란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악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악은 언제 어디서나 튀어나오며 선은 그 악의 움직임에 대비하고 투쟁해야 할 운명이다"라며 "우리가 선이라면 선 자체인 것으로 악에 대한 승리를 보장받지는 못한다. 그래서 역사의 실패를 통해서도 교훈을 얻어야 한다. 악(전두환)은 어떻게 위기를 돌파했을까?"라고 반문하며 네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첫째로 "전두환은 목숨을 걸었다"고 밝혔다. 그는 "실제로 군사 반란에 실패하면 죽는다. 악은 우리 앞에 이런 자세로 돌진한다.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 그에 반해 악을 대항하는 선의 자세는 너무 안일하다"라며 "안일함과 느슨함은 우세한 법과 장비를 갖추고 있어도 악을 이길 수 없다. 악이 목숨을 걸듯이 선도 목숨을 거는 결연함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둘째로 "전두환은 중앙정보부장과 합동수사본부장의 권력을 이용해 군과 민의 모든 통신을 도청하여 상대방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며 선과 악의 투쟁은 "상대방의 대한 정보가 판가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선은 악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 선이 악을 피상적으로만 파악하고 대응하면 악을 극복하기 어렵다. 악은 우리를 치밀하게 연구해서 적절하게 대응하는데 우리는 악에 대해 대충 분석하면 이길 수 없다. 철저하고 깊게 연구하여 예측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셋째로 "객관적 판세는 반란군이 열세임에도 대세를 잡았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군사반란의 시기에 일반 군인이 어느 편에 서느냐는 이후 자기 앞길과 관련되고, 심하면 생사를 가름하기도 한다"며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선이 대세인 사회다. 선하게 사는 것이 자연스럽고 상식인 세상, 악하게 사는 삶이 부끄럽고 부자연스러운 세상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다. 악이 대세가 되면 우리는 너무 비참해진다. 하나님 나라는 선이 충만한 세상이다"라고 했다.
넷째로 그는 "전두환은 너무 악하고 밉지만, 악의 대장다운 인물이었다. 그는 전세가 위기에 몰리고, 반란군 지휘부조차 두려워하고 혼란에 빠질 때마다, 반란의 성공을 독려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과 인맥을 동원해서 위기를 돌파했다"면서 "때론 일대일 담판으로 상황을 반전시키고, 반란군을 결속시켰다. 악인이지만 전두환의 지도력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 나라'라는 선은 이것을 가로막는 악을 극복해야만 가능하다. 선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은 도덕적 명분이나 당위성만으로 성취되지 않는다"며 "선은 악을 이겨야만 한다. 삶과 역사는 그런 점에서 선과 악의 투쟁 장(場)이다. 목숨을 건 투쟁의 장에서 악도 이럴진대 선인 우리가 악인보다야 더 나아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글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