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현 교수(연세대 신과대학/연합신학대학원 조직 문화신학 주임)가 17일 연세대 원두우 신학관 2층 예배실에서 '나는 창조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기독교 교양인을 위한 창조신학'이란 주제로 열린 2024 창조신학 컨퍼런스 첫 발제자로 나서 학교 당국으로부터 징계 위기에 놓인 서울신대 박영식 교수가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를 부정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손 교수는 특히 학교 당국이 징계 이유로 제시했던 박 교수 책 『창조의 신학』에 서술된 일부 표현이 앞뒤 문맥이 생략된 데에 "지극히 임의적인 취사선택일 뿐 아니라 학문적으로 정직하지 못하다"고도 질타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박 교수가 "무로부터의 창조가 갖는 교의학적 중요성"을 강조했다며 최초 학교 당국이 문제 삼았던 『창조의 신학』의 일부 내용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무로부터의 창조를 부정하면 하나님 없이도 존재하는 것들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처럼 무로부터의 창조는 하나님의 유일성, 자유와 전능 및 주재권을 담지하고 있다."(『창조의 신학』, 40)
이에 손 교수는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견해를 박 교수가 어떻게 더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본인은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가 지닌 역사와 그 의미에 대한 몇몇 오해를 정리하고자 한다"고 전하며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의 역사를 개괄했다.
먼저 구약신학자 김회권과 김윤정의 최근 연구를 살펴본 손 교수는 이들이 도달한 결론이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는 구약성서적 근거를 갖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임을 확인했다.
손 교수는 "결국 창세기 1:1~2는 선재(先在)하는 재료로부터 아직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든다는 제작의 의미에 가깝고, 절대적인 없음으로서의 무로부터 우주 창조를 지지하는 본문 안의 실마리는 없다는 뜻이다. 구약성서에 창조론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서의 창조론은 혼돈의 바다를 정복하는 하나님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무로부터의 창조론과 다르다는 게 그들은 지적이다"라고 설명했다.
개혁주의 전통의 조직신학자 김은수의 연구 역시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가 "문자적"으로는 성서 안에서 발견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었음을 확인한 그는 가톨릭 신학자 백운철의 입장도 보충하며 "우리는 무로부터 창조 교리의 성서 주석과 교리적 해석을 구분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성서학자들 심지어 조직신학자도 인정하기 어려운 무로부터의 창조를 최초로 주장한 기독교인이 2세기에 활동했던 영지주의 신학자 바실레이데스였음을 강조한 손 교수는 바실레이데스가 선재설이 유행이었던 당대 흐름에 반동을 꾀한 신학자였다고 했다.
손 교수에 따르면 바실레이데스는 기독교인 최초로 하나님이 선재하는 "물질"(ὕλη)에서 우주를 만든 것이 아니며, 하나님에게서 우주가 "유출"(προβολήν)된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오직 "무(無)로부터"(ἐξ οὐκ ὄντων 혹은ex nihilo) 우주를 만드셨다고 가르쳤다.
손 교수는 이어 "바실레이데스는 세계와 존재의 고통을 돌파하는 올바른 기독교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은 물질로부터의 창조나, 발렌티누스가 주장한 것처럼 신적 유출설이 아니라, 부정신학(不定神學, apophatic theology) 곧 "무(οὐκ ὢν)의 하나님"이 "무(οὐκ ὢν)의 우주"를 "무(οὐκ ὢν)로부터 창조"하셨다고 보는 것이다. 바실레이데스의 사유에서는, 오직 무의 하나님만이 무로부터의 창조를 하실 수 있다. 부정신학과 창조신학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밝혔다.
공의회 신조들에서의 '무로부터의 창조' 등장 시기도 살폈다. 손 교수는 "13세기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년)에서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는 공식화된다. 여기서도 무로부터의 창조는 이전의 공의회 고백들과 마찬가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 행위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의 핵심은 창조주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이라는 점을 뚜렷이 보여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의 의도와 핵심은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바로 무로부터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사실'(fact) 자체를 고백하는 것이며, 이른바 한꺼번에 혹은 진화론적으로 등등 '어떻게'(how) 무로부터 우주를 창조하셨는지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어느 하나의 견해를 유일하고 배타적인 신앙의 규범으로 정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영혼의 창조 과정의 다양한 입장에 대해 긍정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되짚으며 "마찬가지로, 영혼의 창조만큼이나 우주의 창조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신비'(主權的 神祕)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주권적 신비를 감히 인간의 언어와 방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본질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손 교수는 전했다.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가 가르치는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 의미가 무엇인지도 곱씹었다. 먼저 손 교수는 "빅뱅의 순간 우리가 이해하는 모든 물리적 법칙을 초월하는 시원적 특이점(Singularity)에서 우주가 탄생했으며, 그렇게 탄생한 우리 우주는 까마득하게 먼 미래의 어떤 시점에 가서는 다시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라며 "이처럼 현대 과학은 기독교의 무로부터의 창조 신앙을 표현할 수 있는 선교적(宣敎的) 가능성을 유용하게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또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는 만물의 시작과 끝, 영원한 운명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우리가 무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뜻이다"라며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왔기에 우리는 하나님에게로 되돌아갈 것이다. 거기에 단순히 물질로 환원될 수 없는 우리의 신앙적 고귀함이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되돌아갈 고향은 하나님뿐이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도 바뀔 수 있는지를 자문하며 손 교수는 "만약 교리가 절대 바뀔 수 없다면 개신교 종교개혁도 처음부터 가톨릭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과거에 교황이 승인했던 마녀사냥 핸드북인 『마녀들의 망치』(1486년)가 여성 기독교인을 구조적으로 결함이 있는 "불완전한 동물"(animal imperfectum)이라고 교리상으로 가르쳤지만 현대의 어떤 교회도 이러한 복음적이지 못한 교리를 수용하지는 않을 것과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오늘날 개신교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 역시 시대 정신에 따라 변화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답이었다.
한편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손호현 교수 외에도 김학철 교수(연세대), 정대경 교수(연세대) 등도 발제자로 나서 각각 △기독교교양학의 전망에서 창조 논란 이해하기 △과학신학의 창조이해 등을 주제로 발표했다. 사회는 박일준 박사(문화신학회 회장)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