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토예프스키는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후 위기 시대 '코로나'로 대표되는 지금의 시간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막연한 말로 위로할 때가 아니라 그 (고통의)의미를 곱씹으면서 성찰의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장윤재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대 기독교학과, 이화여대 대학교회 담임목사)가 얼마 전 광주YMCA가 주최한 제15회 목회자 초청 강연회의 강연자로 나서 '기후위기와 생태적 회심'이라는 주제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장 교수는 '코로나19'를 위시한 기후위기에 대해 "이번 재난은 탐욕과 죽음의 길에서 절제와 생명의 길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경고다"라며 "인간의 끝도 없는 욕심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자연환경을 인간의 편익을 위해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폭력성이 재앙을 낳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인류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라는 욕망의 열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이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 닥칠 수 있음을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깨닫고 진정 회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회개는 단순히 회심이 아니라고도 했다. 마음으로 '뉘우치고' 삶을 '고치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회개는 '눈 뜨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먼저 눈 떠야 한다. 왜 눈 떠야 하는가? 첫째는 우리가 환경에 눈 감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것이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세계이기 때문이다"라고 역설했다.
장 교수는 그리스도인들이 좁은 의미의 환경이라는 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환경은 사전에 "인간이나 동식물 따위의 생존이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적 조건이나 상태"로 정의되어 있다"며 "사람들은 보통 그것을 '배경'처럼 생각한다. 마치 인간이 무대의 주인공이고 환경은 그 주인공을 빛나게 해주는 무대장치처럼 말이다"라며 "하지만 환경은 과학적으로 볼 때 '생태계'다. 산과 바다의 대지와 식물과 동물과 미생물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거대한 복합체계다. 인간은 이 커다란 생명 그물망의 한 부분이다"라고 전했다.
환경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지시하기도 한다. 장 교수에 따르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불행하게도 영지주의 그리스도인을 닮았다. 극단적인 영육 이원론에 빠져 구원은 구령, 즉 영혼 구원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장 교수는 "이런 지나친 이원론적 신앙의 결과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파기ㅗ되는 것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이 세계는 잠시 지나가는 세계에 불과하고 우리는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을 향해 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이렇듯 죽어서 가는 천당, 즉 육체가 소멸한 후 영혼이 들어가는 천당만 가르치니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숭해도, 매일 하나님께서 지으신 1백 가지의 생물 종이 멸종해도 그것을 신앙의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는 횟수에 비례하여 환경문제에 관한 교인들의 관심이 떨어진다는 조사 결과가 이를 반증한다"며 "잘못된 신학이, 잘못된 세계관이 그리스도인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과연 오늘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세계는 악하다'라는 영지주의 이단 교설로부터 자유로운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창조세계의 회복을 위해 자연의 소리에 경청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장 교수는 "경청은 그냥 듣는 게 아니다. 한자의 뜻처럼 '몸을 기울여' 듣는 것이다. 몸을 기울이고 눈을 맞추고 마음을 집중하여 든는 것이 경청이다"라며 자기의 소리를 내고 있는 자연에 경청할 것을 당부하며 시편 19편의 말씀을 인용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시편 19:1-4)
장 교수는 "생명은 소리를 내고 소리를 듣는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세계의 모든 생명은 활발한 바이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서로 대화한다"라며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정보와 대화와 의미로 가득 찬 세계인 것이다. 의사소통은 발명품이 아니라 온갖 생명이 간직한 능력이고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 전했다.
장 교수는 "일찍이 그리스도교의 교부들에게 자연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두 번째의 책'이었다"며 성서가 '듣는 말씀'이라면 자연은 '보는 말씀'을 가리키는데 그리스도인들이 그동안 '듣는 말씀'에만 집중한 나머지 '보는 말씀'을 간과했다논 지적도 빠트리지 않았다.
장 교수는 "두 권의 책 가운데 한 권만 읽고 다른 하나는 읽지 않았다. 내 몸을 기울여 온 존재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 이 땅의 모든 생명이 나와 함께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지으신 존엄한 존재요, 소중한 친구여, 자매와 형제임을 깨달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그리스도교
생명의 그물망의 한 구성원인 동물권 보호와 관련해서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그리스도교 성찰의 재료로 삼았다. 장 교수는 먼저 동물에게는 자의식이 없다는 주장의 허구성에 대해 폭로했다.
그에 따르면 1970년 <사이언스>에 한 세기적 실험이 발표된 바 있다. "침팬지: 자의식"이라는 동물의 거울실험 보고서였다. 장 교수는 "보통 두 살 즈음의 인간은 거울 속 이미지를 자신으로 인식한다"며 "그런데 둥물 거울실험에서 침팬지 역시 거울을 보고 이빨에 낀 먹이 찌꺼기를 찾아보거나 몸을 다듬는 등 분명한 '자기인식 행동'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실험 이후 침팬지만이 아니라 오랑우탄, 돌고래, 유럽 까치도 자기인식 행동을 한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이로써 인간만이 자의식을 가진 존재라는 선입견은 깨졌다. 동물은 감정과 의식과 마음이 없는 단순한 기계에 불과하다는 데카르트의 주장도 무너졌다. 또 동물은 자의식을 갖지 못해서 인간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칸트의 주장도 설 자리를 잃었다"고 덧붙였다.
이 대목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등장하는 영혜가 꿈을 통해 '고기'를 먹는다는 것이 다른 생명의 '살'을 씹는 것임을 생생하게 감각하면서 절대적인 '얼굴'을 만나는 장면을 인용한 장 교수는 "그것은 곧 '내 얼굴'이자 '내가 먹은 것들의 얼굴'이었다. 후에 영혜는 이 얼굴들이 '내 뱃속 얼굴,' '뱃속에서부터 올라온 얼굴'이라고 말한다"고 말했다.
육식주의 사회에 저항해 채식을 선택한 영혜는 그러나 육식주의 사회에서는 이해받을 수 없었다. 특히 식물이 되려하는 영혜의 태도는 더더욱 인정받을 수 없었다. 장 교수는 "영혜가 식물 되기를 욕망한 것은 '육'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 다른 생명을 앗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폭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죄책감 때문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영혜의 죄책감은 꿈속의 '얼굴'로 표현된다. 자신이 먹었던 그 많은 고기들, 그 목숨들, 그 얼굴들, 육식주의 사회에서 고기는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영해는 그 고기들에서 '얼굴'을 본다"라며 "'얼굴'은 그 자체로 인격이며 얼굴이 있기에 윤리가 성립한다. 그렇기에 영혜는 '고기'를 참을 수 없게 되고 결국 '고기'인 자신까지 참을 수 없게 된다"고 장 교수는 부연했다.
그러면서 그는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은 영혜를 통해 우리의 근원적인 폭력을 고발하고 있다"며 "주인집 딸을 물었다는 이유로 오토바이에 묶여 동네를 몇 바퀴 돌다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죽은 흰둥이의 몸으로 잔치를 벌여도, 아무렇지도 않아야 하는 육식주의 사회의 폭력을 고발한다. 영혜는 그런 폭력성을 못 견디게 되었고 거기에서 해방되고자 나무가 되려 하지만 식물도 몸된 존재라면 다른 생명에 빚지고 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영혜에게 남은 선택지는 몸의 소멸 뿐이다. 어쩌면 자기의 몸을 말려가며 나무가 되려는 영혜를 통해 작가는 온몸으로 예언자적 외침을 우리에게 토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도 전했다.
마지막으로 장 교수는 "사실 한강의 소설은 그리스도교 신학과 서구 이성의 폭력성에 대한 고발장이다"라며 "모든 생명이 하나님 창조세계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 일부임을 망각하고 인간은 예외적인 존재라는 오만으로 생명의 상호의존성과 상호관계성을 부정하는 그리스도교 신학과 서구 이성에 대한 기소장이다. 노벨문학상 작가를 배출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자신을 변호할 것인가"라며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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