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지적 생명체와 종교의 운명을 논하는 연구논문이 발표됐다. 김정현 교수(연세대 종교철학)는 최근 한국종교학회가 발간한 「종교연구」 제84집 2호에 실은 이 논문에서 외계인의 존재를 가정한 사고실험과 관련해 서구에서 이루어진 기존 연구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김 교수는 이 논문을 통해 외계인의 발견이 종교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면서 개별 종교 자체 논리에 근거해 외계인 가설에 응답하는 최근 신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외계인 발견이 종교에 미치는 부정적 여파는 상대적으로 미비하고 오히려 우주 시대의 도래를 맞아 종교 전통의 갱신에 긍정적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김 교수는 "만약 외계 지적 생명체의 존재가 입증된다면 그것은 세계 종교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라는 핵심적인 질문으로 돌아왔다.
김 교수는 "외계인의 존재는 물론이고 외계 생명체의 존재 역시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다"면서도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상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외계인의 존재를 가정한 하나의 사고실험이다. 다만 조만간 언제라도 외계 (지적)생명체 존재에 관한 경험적 근거가 발견되어 공포된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오늘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사고실험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이어 외계인의 존재를 가정한 서구의 상반된 입장을 소개했다. 먼저 외계의 존재로 전통 종교 붕괴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칼 세이건(Carl Sagan) 등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과학자들 역시 이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며 이런 주장의 밑바탕에는 "문명의 역사가 미성숙한 종교의 단계를 넘어 성숙하면서 세속화의 길을 걷게 된다는 세속화 논리가 전제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세속화 논리에 더해 또 다른 논리 중 하나가 "외계인 발견으로 인한 종교 붕괴 가설을 지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많은 세계 종교가 인간중심주의와 지구중심주의의 한계 속에 갇혀 있다는 가정이다"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종교인들의 설문조사 응답에 대해 분석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하면서 그는 "외계 문명과 접촉이 세계 종교의 붕괴를 가져올 것으로 보는 무종교인들의 일반적 예상과 상반되게 대다수 종교인은 외계 문명과의 접촉이 적어도 자신들이 속한 종교 전통을 크게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고 했다.
종교인들과 무종교인들의 상반된 응답에 대한 비판적 고찰도 이뤄졌다. 특히 김 교수는 무종교인들의 피상적 인식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세계 종교의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심각한 오류를 안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첫째로 "세계 종교들이 인간중심적이라는 주장은 보편타당성을 갖지 않는다"며 "힌두교와 불교의 일부 종파와 같이 인간 중심의 원리보다 우주적 원리를 강조하는 종교도 존재한다. 또한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 유신론 종교 안에도 인간중심주의 전통뿐 아니라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생태적, 우주적 전통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둘째로 "어떤 종교가 처음부터 지구상의 인류만을 위한 종교로 스스로 자리매김했다면, 설사 외계 지적 문명이 존재하더라도 그 종교의 진리 주장은 외계인의 존재와 무관하고 지구상에서 여전히 타당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셋째 "역사적으로 어떤 종교가 인간 중심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종교 자체의 근본적 결함을 의미하기보다 오히려 종교 전통의 발전 과정에서 역사적 문화적 한계를 보여줄 뿐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다분하다"며 "지금까지 세계 종교들이 역사적 문화적 한계 속에서 스스로 인간중심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할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는 비판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신학자들과 종교학자들의 견해도 소개했다. 이 대목에서 유대교 입장에서 외계 생명체의 존재는 창조자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강화하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며 유대교 학자 노버트 사무엘슨이 중세 유대교 학자 마이모니데스의 '부정신학'을 언급한 내용을 인용하기도 했다.
"부정신학의 방법은 우주 안에 존재하는 만물이, 지구인과 외계인을 모두 포함해서, 신이 아니라는 것을 내포한다. 이것이 유대교 우주 신학의 첫 번째 원리다. 우리 지구인과 우리의 외계 이웃은 함께 속해 있다. 신만이 참으로 낯선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입장에 대해 김 교수는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의 절대적 구분을 강조하는 유대교 관점에서 외계인 가설에 관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며 "지구인이든 외계인이든 모두 신의 피조물이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김 교수는 유대교나 이슬람교와는 다르게 그리스도교의 성육신 교리로 인해 "구속 교리를 인간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흐름이 지배적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며 "하지만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속에 대한 대안적 해석, 곧 우주적 지평의 해석이 신약성서 안에서 이미 발견되며(에베소서와 골로새서) 그러한 성서적 토대 위에서 고백자 막시무스와 둔스 스코투스를 비롯한 고대와 중세 교부들이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그리스도교 전통의 한 축으로 발전시켰다"고 했다.
논의를 종합하며 김 교수는 "외계인 가설과 종교 전통의 양립 가능성에 관한 질문은 열린 질문이다"라며 "만약 외계인이 발견된다면 새로운 발견을 적절하게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종교와 그렇지 않은 종교가 구분될 것이다. 그리고 전자만이 진정한 종교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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