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배제가 극심화되고 있는 혐오사회 속에서 환대를 실천하기 위한 기독교교육의 방안을 모색한 논문이 발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조미영 박사(연세대 외래교수)는 2024 「신학 실천」 가을호에 발표한 연구논문 <혐오사회 속에서 환대를 실천하는 기독교교육: 경계 긋기에서 경계 넘기로>에서 기독교의 환대 개념을 기초로 '포용적 환대'와 '정의로운 환대'를 제시하고 교육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앞서 우리사회에 팽배한 혐오의 정체에 대해서 논했다. 사전적 의미로 혐오는 미워하고 싫어하는 감정인데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에 따르면 혐오는 구토를 유발하는 본능적 감정에서 비롯되는데 그 양상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원초적 혐오이며 다른 하나는 투사적 혐오다.
원초적 혐오는 신체의 배설물이나 다른 체액들, 끈적함, 불결함, 악취 같은 특성을 공유하는 동물들에 대한 구토 반응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혐오 감정은 복잡한 문화 형태로 가지치기를 하면서 발전하는데 결국 "동물성과 죽음으로부터 도주"에서 비롯되는 투사적 혐오가 파생되기에 이른다.
투사적 혐오에 대해 조 박사는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데 혐오하고 복종시킬 대상 집단은 인종적 하위 집단으로 겉모습이나 피부색에 의해 규정된다"며 "무슬림과 유대인은 민족이나 종교에 대한 편견으로 목표 대상이 되고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하여 목표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혐오가 확장되는 법칙에 대해서도 부연했다. 조 박사에 따르면 혐오가 확장되는 첫 번째 법칙은 전염성이었다. 그는 "과거에 접촉했던 사물은 나중에도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혐오에 차용된 전염의 법칙은 잠재적으로 어떠한 대상을 무력화시키며, 모든 종류의 다른 대상도 잠재적 오염물이 되어버린다"고 했다. 두 번째로는 '유사성'을 들었다. 두 가지 사물이 서로 비슷하면 그중에 영향을 준 하나의 행위가 다른 것에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조 박사는 혐오의 핵심 관념인 전염성이 흔히 "경계 긋기 경향"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전염에 대한 공포는 자신의 몸과 몸 밖을 구분하고 몸 밖의 위험 물질이 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경계하고 방어하려는 동기를 일으키며 나아가 이것은 경계의 안쪽은 안전하지만 경계의 밖은 위험하다는 식의 사고로 이어진다.
조 박사는 "생물학적 혐오의 경우에는 몸을 경계로 삼겠지만 사회적 혐오는 일반적으로 사회 집단을 매개로 하여 경계가 정해진다"며 "사람들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거나 소속되기를 바라는 내집단은 너그럽게 대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외집단은 야멸차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이 혐오와 연결되면 내집단을 제외한 외집단들은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회 감정으로서의 혐오는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집단과 집단 사이의 경계선을 설정하고 배제와 차별을 통해 혐오를 작동시키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라며 "혐오는 사회적 상황에 따라 그 대상과 농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혐오에 맞서기 위해 환대에 대한 성서적 이해와 철학적 논의를 이어갔다. 조 박사는 특히 성서와 초대교회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환대에 대해 "나그네를 대접하는 단계를 넘어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관심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며 "과부, 고아, 병자, 이방인, 나그네, 가난한 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환대를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는 "환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환대적 존재로 지으셨고 그 분이 스스로 환대의 삶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가능하다"라며 "그래서 기독교적 인간은 환대적 존재이고 환대는 인간 존재의 자기 모습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환대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신앙 안에서 환대의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환대를 실천하는 기독교교육의 방향도 모색했다. 먼저 혐오에 맞서 포용적 환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포용의 과정에 관한 한 볼프의 포옹의 4단계를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 1단계는 '팔 벌리기'로, 타자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자신 안에 이미 마련해두고 타자에게 손을 내미는 손짓이다. 2단계는 '기다리기'로, 팔을 벌려 뻗은 후에 타자를 만지기 전에 멈추는 것이다. 3단계는 '팔 모으기'로, 상호성 없이 상상할 수 없는 포옹 그 자체다. 4단계는 '다시 팔 벌리기'로, 타자가 자아 안에 새겨져 있다 하더라도 타자의 타자성을 없애지 않는 것이다.
조 박사는 "기독교 전통으로서의 환대는 타인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뿐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처럼 고통스런 몸부림을 그대로 받아주고 머물 수 있게 우리 자신 안에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라며 "혐오와 배제를 넘어선 환대는 타인에게 자리(공간)를 내주는 행위이며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누군가의 자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부여된 권리 또한 인정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환대는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혐오에 맞서는 또 다른 환대로 정의로운 환대를 제시했다. 정의로운 환대에서의 질문과 상상력을 주목한 그는 "도덕적 상상력은 자기중심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타인의 입장에서 상황을 상상하는 능력, 현 상황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상상하는 능력, 어떤 특정한 미래의 가능한 결과를 상상하는 능력이기에 이분법적 사유를 넘어 도덕적 판단을 위한 필연적인 조건으로 상상력을 간주한다"며 "적극적으로 현실을 수용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그 방법을 찾아나가는 역량인 상상력을 통해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해볼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혐오에 맞서는 두 가지 환대의 방식으로 환대의 공간을 마련하는 '포용적 환대'와 질문하기와 상상하기를 통해 타인의 삶을 공감하는 '정의로운 환대'를 제시한 그는 "경계 긋기 즉, 배제와 혐오의 사회에서 환대를 실천하는 교육을 통해 경계 넘기 즉, 환대적 존재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환대에 참여하며 하나님의 환대를 드러내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라며 글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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